SBS 피디로 일하는 김형민이란 사람이 책을 한권 냈다. <섬데이 서울>이란 책인데, 어찌나

재미있는지 무서운 속도로 읽고 있는 중이다. 책에 나온 얘기 중 하나다.

 

놀이터 앞에서 실종된 정종훈이란 아이에 대한 다큐를 4회 연속 방영하던 때, 확실해 보이는

제보가 들어왔다.
"미아삼거리 대한제일증권 빌딩 옆 제일교회...정신지체아들이 수용되어 있는 시설이 있는데,

그 가운데 6살 정도 되는 아이가 있다, 이름을 물어 봤더니 종훈이라고 한다"
피디도 흥분한 나머지 카메라를 들고 그쪽으로 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대한제일증권이란

증권사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 여자가 불러줬다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했다.

"이 번호는 사용하지 않는 번호..."라는 멘트가 나온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아버지의 휴대폰은 경찰, 전화국의 협조를 통해 발신제한번호도 알아낼 수

있었던 것.

아버지: 임원애 씨죠?
여자: 누구세요?
아버지: 아들 잃어버린 아빱니다. 아까 제보 주셨죠?
여자: 이 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거의 고함 수준이었단다)

그랬다. 그건 장난전화였다. 여자는 동생이 전화한 것 같다고 했다가, 언니가 했다가 횡설수설한다.

"하나만 물읍시다. 종훈이를 진짜 본거요?"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아버지는 결국 절망감에 빠진

채 전화를 끊었다.

 

이걸 읽는 나도 화가 나는데, 당사자인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들을 잃은 절박한 마음을

십분의 1만 이해한다해도, 그따위 장난은 하지 않았을텐데. 제보를 확실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여자는 이런 짓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 옆에 있는데 바꿔 드릴까요?" 하고 묻고, 잠시 뒤 "아이가 안받겠다네요" 하고 걱정스럽게

얘기했단다. 아이의 특징과 입고 있는 옷 색깔까지 이야기해 주었고, "이름이 종훈이니?"라며

누군가에게 묻는 시늉까지 했단다.

 

흥분한 PD가 다시 전화를 했다.
피디: 아까 하신 말씀, 다 거짓말입니까?
여자: 네? 아니, 동생이... 언니가....
욕을 퍼붓고 끊으려는데, 그 여자가 이러더란다.
"종훈이 아버지, 종훈이 꼭 찾게 해달라고 기도할께요"

글쎄다. 꼴을 보아하니 기도를 할 것 같지도 않지만, 기도를 한다해도 그게 얼마나 진실된

기도일지? 아마도 그여자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호들갑을 떨면서 자랑할거다.
"글세 내가 직통으로 걸렸잖아? 얼마나 쫄았는데... 앞으로는 공중전화로 해야겠어"라면서.

 

나 역시 장난전화를 해본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중국집에 전화해 가짜 주소로 요리를 시킨다든지, 119에 전화해 불이 났다고

거짓말을 하는 건, 나쁘긴 해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어떻게 아이를 잃은

아버지에게 장난을 칠 생각이 날까? 지하철에 불이 나서 수많은 인명이 피해를 당한 날,

"지하철역에 불지르겠다"며 장난전화를 걸었던 사람들 역시 인간이 아니긴 마찬가지다. 공자와

맹자는 인간은 원래 착하다고 주장했지만, 이런 작태를 보고도 계속 그런 주장을 고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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