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살이 막 되었을 무렵, 홍콩영화의 인기는 최고였다. 유덕화, 성룡, 장국영을 비롯한 스타들이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그 시절, 그래도 최고의 스타는 단연 주윤발이었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난 주윤발의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본 건 <첩혈쌍웅>이었다. 거기서 주윤발은 킬러였고, 송자호는 그를 쫓는 형사. 송자호가 극중에서 범죄자인 주윤발을 설명하는 장면은 이렇다.

"걸음걸이는 나는 듯하고, 총쏘는 동작은 우아하고, 행동은 정의롭고 어쩌고 저쩌고..."

결국 송자호는 주윤발의 편에 서서 싸우게 되는데, 눈을 맞아 시력을 잃은 주윤발이 원래 장님인 여자와 손을 잡으려고 애쓰는 마지막 장면은 <천장지구>에서 내가 좋아하는 오천련이 웨딩 드레스를 입고 맨발로 도로를 달리는 장면과 더불어 '내 기억에 남는 명장면'에 등재되어 있다.

송자호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주윤발은 정말 멋있었다. <영웅본색 2>에서 계단을 미끄러지면서 총을 쏘는 장면이랄지, 위급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은 얼마나 멋진가. 긴 코트, 선글라스, 쌍권총과 담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우리 애들 중 주윤발 때문에 담배를 배운 사람도 꽤 있을텐데,그들이 몰랐던 건 원래 멋있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 더 멋있지만, 원래 아닌 애들에겐 역효과가 난다는 극히 평범한 진리였다. 절세미인 서시가 나오는 '효빈'이란 고사성어도 그 점을 말해주지 않는가. 그러고보면 내가 담배를 안피운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이 외모에 담배까지 피웠다면 누가 내 곁에서 술을 마셔주겠는가.

홍콩이 중국에 접수되면서, 주윤발도 다른 홍콩 스타들처럼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곤 <와호장룡>의 성공으로 헐리우드 내에서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난 그 영화를 봤는데, 많은 이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기대하던 주윤발의 이미지가 아니어서였을 게다. 거기서 실망을 한 탓에, 그가 나온 다른 영화-예를 들면 <리플레이스먼트 킬러>가 개봉되어도 별로 볼 생각이 없었고, <방탄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영화가 재미있단다. 어, 그래? 그럼 봐야지, 하고 비디오를 빌렸다. 뭐 그런대로 재미는 있었다. 줄거리상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정도면 재미 면에서는 준수하다고 봐주자. 그런데 주윤발은 왜 그렇게 살이 찐걸까? 예전의 그 멋있는 주윤발은 어디로 갔지? 55년생이니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 살 찌는 것도 노화를 말해주는 지표인지라 어쩔 수 없지만, 몸매 관리를 조금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예전의 주윤발은 거의 총만 쐈다. 어느 분이 네이버에 써놓은 대로 주윤발만큼 쌍권총이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듯 싶다. 날씬할 때는 그렇게 총으로 악의 무리들을 무찌르던 주윤발이, 나이가 들어 뚱뚱한 몸을 이끌고 왜 무술에 심취하는 걸까? 헐리우드에는 무지막지하게 총을 쏘아대는 사람이 부지기수라, 동양인인 주윤발이 그들과 차별화가 안되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그래도 아쉽다. 내가 원하는 건 주윤발이 다시 쌍권총을 들고 적을 무찌르는 건데. 그때의 주윤발이 훨씬 더 멋있었는데. 괜한 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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