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전에도 여러 번 한 얘기지만 또 해본다.
술과 스포츠에만 관심이 있던 1997년,
난 테니스장에 있던 신문 쪼가리에서 계간 <인물과 사상> 3권의 책광고를 본다.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표제의 그 책광고를 보는 순간
난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단 생각에 사로잡혔고,
마법에 이끌리듯 서점으로 달려가 이 책을 산다.
책이라곤 관심도 없었던 난 단숨에 그 책을 읽어내려갔고,
내친김에 1, 2권도 사서 읽어버린다.
그 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고,
책은 스포츠와 술을 밀어내고 가장 중요한 취미가 됐다.
그리고 <인물과 사상>의 저자 강준만은 그날 이후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됐다.
내 책장에 있는 강준만 선생의 책만 해도 150권이 넘고,
나머지 책들 중에도 강선생이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 수두룩하니,
그분만큼 내 삶에 영향을 끼친 분도 없을 것이다.
월간 <인물과 사상>에 글을 쓰게 됐을 때,
그 잡지의 영향력에 무관하게 뛸 듯이 기뻐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엊그제, 문자 한통을 받았다.
강준만 교수께서 모친상을 당하셨다는 내용이었다.
내게 연락이 온 건, 아무래도 인물과 사상지에 글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유야 어찌되었건 난 십오년째 사상적 은사로 모시는 분을 처음 뵐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원래 계획은 선생님과 맞절을 하는 자리에서 “사실 저 선생님 제자입니다”라며 인사하는 거였는데,
토요일 아침 좀 이른 시각에 빈소를 찾았더니 신문에서 많이 보던 분이 접수대에 앉아 계셨다.
‘어머나! 강선생님이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
방명록에 이름을 쓰자 강선생님이 내게 아는 체를 해주셨다!
“눈이 크신데 왜 작다고 쓰셨어요?”
인사만 할 수 있어도 감사할 일인데, 날 알고 계신다니 영광 그 자체였다.
게다가 쥬스를 앞에 두고 선생님과 단둘이 대화까지 할 수 있었다니,
아마도 난 10월 1일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다.
“선생님 칼럼 팬입니다”라는 말을 내 은사한테서 들었으니 얼마나 기분이 째지겠는가?
엄청난 일을 겪으면 이게 꼭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예를 들어 중병을 선고받을 때 그게 내 일이라는 게 실감이 안나는 것처럼,
강준만 교수를 만난 것도 지금 생각하면 꿈같다.
그때는 꿈에 취해 말씀을 못드렸지만,
제 정신으로 돌아온 지금, 그때 했었어야 하는 인사를 드린다.
“제가 제대로 된 삶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