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 사건이 일어난 건 95년이다. 조교 때였는데,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그 뉴스를 봤다. 반공정신이 투철했던 난 간첩에 의한 테러인 줄 알았고, 백화점이 저절로 무너진 거라는 걸 나중에 알고는 어이없어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다. 서해페리호가 침몰해 삼백몇십명이 죽고, 대구 지하철이 폭파되어 1백명이 죽었다. 하지만 삼풍 참사는 그 어이없음이나 사망자 수를 보나 사건사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했다.

삼풍 앞을 우연히 지나갔다. 그때의 상처는 이미 씻어진 듯, 거대한 타워 팰리스가 우뚝 솟아 있다. 순간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 금싸라기 같은 땅이니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수많은 원혼들이 묻힌 땅에 꼭 그런 게 세워져야 할까. 졸속으로, 압축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진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추모공원 같은 것을 세우면 안됐을까. 각종 사건, 사고로 어이없게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는 곳 말이다. 꼭 그분들의 시신을 묻지 않더라도, 추모비나 탑 같은 것을 세워서 우리의 비인간적인 경제개발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았을까.

뉴스를 보니 광화문 땅도 그렇게 될 모양이다. 붉은 악마의 진원지였고, 촛불시위 등 각종 시위의 메카였던 광화문에 고밀도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집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파트를 계속 지어야겠지만, 아파트가 숲을 이룬 서울은 너무 삭막해 보인다. 안그래도 시민들의 쉴곳이 부족한 곳이니 월드컵을 기념하는 광장 같은 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김민수 전 서울대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한강 하면 자살하는 사람 얘기밖에 없잖아요.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다리란 보는 것 이전에 본질적으로는 건너면서 느끼는 구조물입니다. 시각적 감상의 대상이기 전에 온몸으로 교감되어야 할 게 다리지요. 한데 한강의 다리는 거의가 차를 타고 60-70킬로의 속도로 횡하니 빨리 건너야 할 군사용 다리처럼 느껴져요. 6.25 당시 다리가 끊어졌을 때의 아픈 추억이 있으니까 다리는 무조건 빨리 건너야만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성수대교 생각하면 무너지기 전에 빨리 건너고 싶은 생각도... 천천히 걸어서 건너면서 정말 절로 노래가 나오는 다리가 있으면 좋겠어요(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지승호 저, 306쪽)]

이미 기형적인 모습이 되어버린 서울이지만, 우리가 대대로 살아갈 곳이니만큼 아쉬운 대로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서울의 모습이 조금씩이나마 바뀐다면, 우리의 마음에 각인된 각박함도 조금씩 씻겨지리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유감스럽게도 서울은 아직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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