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안 레인을 안 건 꽤 오래 전이다. 그러니까 내가 중학생 쯤 됐을 때, 누나가 빌려온 <스크린>이란 잡지를 뒤적이다 보니, 그녀의 이름이 여러번 나왔다. 이쁘긴 했지만, 내 타입은 아니었다. 그당시 내가 좋아했던 여자는 피비 캐츠. 그래서 그런지 다이안 레인이 나온 영화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아니다. 하나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녀의 출연작 중 <저지 드래드>라는 게 있는데, 난 그걸 극장에서 봤다. "재미있다"는 친구의 말에 속아서. 하지만 그 영화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영화, 다이안 레인이 나왔던 걸 모르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아무튼 다이안 레인은 내가 어릴적 대표적인 아이돌 스타였다. 하지만 그 당시 떴던 애들 중 제대로 큰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연기력을 인정 못받은 브룩 실즈는 아가시와 염문을 일으킨 걸 제외하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고, 소피 마르소도 뭐 그리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진 않다. 내가 좋아하던 피비 캐츠는 뭐하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 하지만 다이안 레인은 좀 다르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필모그래피를 보니 해마다 한편씩 영화에 출연 중이다.

그런 그녀를 <언페이스풀>에서 다시 만났는데, 얼마나 이쁜지 기절할 뻔했다. '언페이스풀'은 성실하지 못하다는, 다시말해서 바람을 피운다는 뜻인데, 다이안 레인은 숨막힐 듯한 미모를 과시하며 젊은이와 불륜에 빠진 아내 역을 잘 소화해 낸다. 늘씬한 다리, 분위기 있는 미소, 그런 유부녀가 곁에 있다면 누가 감히 거부할 수 있겠는가. 어릴 적엔 내 타입이 아니었는지 몰라도, 지금의 그녀는 내 타입 그 자체다. (안젤리나 졸리는 어떡하고?)

리차드 기어를 알게 된 건, 중3 때 봤던 <사관과 신사>에서였다. 데브라 윙거도 참 이뻤지만, 리처드 기어가 어찌나 멋있는지,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면서 실의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1981년이니 무려 22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리처드 기어는 여전히 멋있어 날 주눅들게 한다. 1949년생, 우리 나이로 55세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지, 아니면 화장빨인지? <사관과 신사>에서도 그랬지만, 인자한 그의 미소는 남자인 내 가슴마저 뛰게 만든다 (내가 원래...좀 그렇다). 그렇게 멋진 남편을 두고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이 영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화 속 한장면. 다이안 레인이 욕조에 앉아 바람피는 남자가 아랫배에 새겨준 하트를 열나게 지우는데, 리처드 기어가 불쑥 들어온다. 당황하는 다이안 레인에게 리처드가 한 말, "자리 있어?" 그 대사를 보면서 리처드 기어는 실제로도 저렇게 멋진 말을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뭐라고 했을까?
"미자, 우리 같이 목욕할까? 으흐흐흐흐"라거나, "미자, 등 밀어줄까? 음하하하"라고 했을지도?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온다면 앞으론 무조건 말해야겠다. "자리 있어?"라고.

두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말은 영 미적지근했지만, 매력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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