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팬클럽에 들었다. 오래 전부터 그녀의 팬이었으니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앞으로 열심히 할 생각이다. 팬클럽 사이트를 보니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써놓았다. [<오 브라더스>가 1위고, <불어라 봄바람>은 <조폭마누라2>보다도 뒤지는 흥행성적을 기록 중입니다. 전 벌써 네 번 봤지만, 오늘 한번 더 볼 생각입니다]
매우 감동적이긴 한데, 이걸 읽으면서 팬이란 게 뭔지 생각해 본다. 팬이라면, 아무리 후진 영화를 찍어도 수십번씩 봐주는 존재일까? 모르겠다. 그것도 스타 사랑의 한 방법이긴 하겠지만, 후진 앨범을 내놓는 모 가수가 주류로 행세하는 것도 판만 냈다하면 수십만장씩 팔아주는 열성 팬들 덕분인 걸 보면, 몰가치적인 스타사랑은 스타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정은.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건, 그녀가 누구보다도 유머 연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평단에선 싸늘했을지언정 난 <재밌는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내가 김정은의 팬이 된 건 그때부터인데, "이등변 삼각형을 만들어"라든지, "대가리 박어!"를 외치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무지 웃겼고,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불어라 봄바람>은 많이 실망스러웠다. 오래 전부터 대대적인 광고를 했음에도 흥행이 부진한 게, 영화를 보고나니 당연하게 느껴졌다. 김정은만이 할 수 있는 코믹성을 이 영화는 전혀 살려주지 못했다. 웃음을 유발하는 건 그리 쉬운 건 아니다. 관객의 상상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그저 썰렁할 뿐이다. <불어라>에 나온 대부분의 유머는 아쉽게도 예측 가능한 것들이었다.
예컨대 이 장면을 보자.
김정은: 그 아저씨(김승우)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조수: 글쎄요.
김정은: 글써요? 와, 멋있다.
조수: 어떻게 알았어요?
김정은: 방금 '글써요'라고 했잖아요.

이런 말장난으로 몇 명이나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지금 몇시냐고 물었을 때, "서울시 여러분 내가 왕초"라고 답하는 게 최고의 유머였던 60, 70년대로 되돌아가자는 것일까. 상황의 재구성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려는 게 아니라, 오직 김정은의 개인기에만 의존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너무 안이한 게 아닐까. 김정은의 소쩍새 연기를 보면서, 그 재능을 썩혀버린 감독이 너무도 미웠다.

또하나. 난 <귀여운 여인>이란 영화를 봤을 때, 좀 불편했다. 줄리아 로버츠가 몸파는 여자니까, 돈많고 잘생긴 리차드 기어가 자신을 선택해 주면 더없는 영광이다, 라는 발상이 말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구도가 똑같이 재현된다. 다방 레지인 김정은은 그저 김승우가 자신을 찾아와 주기만을 기다렸고, 그가 "니가 좋다"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나도 좋다"고 화답한다. 그가 가했던 모욕-"넌 남자들에게 꼬리치면서 돈이나 받는 여자"-을 어쩜 그리 쉽게 잊었을까. 결코 적지 않은 전세금 3천만원을 팽개치고 갈만큼 큰 충격을 받아놓고선. 김승우가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는 한, 둘이서 결혼한다 해도 걸핏하면 "다방 레지하던 여자가!"라면서 모욕을 주지 않을까?

영화의 모든 행동은 그럴듯한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게 내가 아는 영화의 상식, 하지만 김승우가 왜 교회 앞에다가 쓰레기를 버리는지, 술에 취해 김승우를 "개새끼!"라고 표현했던 조수가 왜 갑자기 게이가 되어 김승우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해할 길이 없었다. 사랑이란 게 아무리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거라고 해도. 영화도 아니라는 평을 듣는 <조폭마누라2>보다 관객이 적은 건 의외지만, 이번 영화가 크게 흥행하긴 이미 글러버린 것 같다. 작년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던 <가문의 영광>에서처럼, 김정은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영화로 우리 곁에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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