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바람이 앞 이마를 스쳐간다. 발 밑으로는 저 넘어 저수지도 보이고, 아파트촌도 보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저 밑 아파트 촌 어딘가인데 나는 지금 아카시아를 머금은 바람이 부는 숲 어딘가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고작 책 한권 편히 읽어 보겠다고 나선 길이다. 그렇게 읽은 책을 다시 이야기 해보겠다고 넷북까지 챙겨들고 산사를 끼고 있는 산중턱 어딘가에 나는 지금 앉아 있다. 잠시 나의 세상이 나눠지는 시간이다.
유안의 세계가 그렇다. 유안은 극단 명우의 희곡 작가이자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는 홍보담당이다. 그녀에게는 위장이혼후에 결국 다른 가정을 가진 아버지, 다친 동성친구와 살기위에 짐을 싼 어머니, 남자친구를 두고도 동호회의 동성회원과 동거에 들어간 언니, 만나면 먹고, 모텔을 가는일이 전부인 남자친구, 그리고 어느날 자신의 자리를 훌쩍 비우고 떠난 극단 명우의 실장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또다른 삶에는 <로맨틱 세계>가 있다. 그녀가 쓴, 곧 극단 명우에서 무대에 올릴 작품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세 쌍의 남녀의 사랑을 다룬 연극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또다른 세상인셈이다. 두가지 세상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등장인물들의 지독한 소통의 부제와 주인공이면서도 목적어가 될 수 없는 유안이다.
유안에게 아버지는 미완의 시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나면 더 쓸 말이 없다. 그런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는 친구인 한주아줌마와의 전화통화가 삶에 대부분이다.
엄마가 한주 아줌마와 통화하지 않는 틈을 타 준희 오빠가 유학을 떠나고 윤희가 아이를 낳았으며 재영이 자기 가족을 만들고 내가 승원과 연애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 질 때도 있다. 엄마들이 통화를 멈춘 사이 우리들의 생이 흐른다.35p
이런 엄마에게는 유안말고 딸이 하나 더 있다. 동호회의 이혼한 동성친구와 동거를 하겠다고 집을 나가버린 재영이다. 재영과 엄마는 마트에서 어묵을 하나 고를 때도 언성을 높어여 하는 사이다. 하지만 그런 재영에게도 불편과 긴장을 감수하고도 잘 해 주려고 노력하는 동거인 유미연이 있고, 재영을 엄마2라고 부르는 그녀의 딸이 있다. 한쪽으로 죽었다 깨어나도 통하지 않을 소통이 한쪽으로 어의없을만큼 쉽게 흐르고 있다. 엄마에게는 재영이 지아빠 닮아 나쁜년이고, 재영에겐 엄마가 딸에게 눈꼽만큼도 이해심없는 이기적인 엄마일 뿐이다.
이런 가족을 가진 유안에게는 사랑하는 승원이 있다. 만나면 먹는것과 모텔을 가는 일을 빼고 나면 별로 할 일이 없는, 없으면 허전하니까, 남들 다 하니까 하는 연애를 유안은 승원과 하고 있다. 연애를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에는 유안을 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승원을 보면서 유안은 지쳐간다.
승원과 나, 우리의 미래를 생각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승원이라는 한 남자를 생각할 때 이상한 새소리가 들렸다. 행인의 휴대전화 벨소리였다. 승원만 생각할 수는 없는 밤, 한순도 나지 않는 밤이였다. 120p
유안이 가진 또 다른 세상인 연극<로맨택 세계>도 평탄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갑자기 극장임대료를 선불로 달라는 박사장, 역활에 불만이 많은 여주인공,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단원들. 로맨틱 세계라는 유안의 세상을 밖으로 보여주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페이지가 뒤를 향해 갈수록, 이야기가 클라이막스로 흐를 수록 나는 책 제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생각해"
난 이제 누구를 도와주고 누구를 위해 살고 이런거 싫어, 나만 생각하며 살아보려고 81p
글중에 엄마의 친구인 한주 아줌마의 말이다.
모두 나만 생각하는 세상에서 유안은 살고 있다. 그 세상에서 유안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나는 유안에게 필요한 말은 한주 아줌마가 내뱉은 나만 생각하며 살아보려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결국은 나를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를 위해 움직인 일이 결국은 나의 일이 되어서 돌아온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고, 유안이 속한 세상도 그런 세상일 것이다. 그렇기에 유안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과 함께 지낸 시간들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를 생각하는 일이다. 그들과의 시간이 나를 있게 하고 소통되지 않는 그들의 삶의 방법이 나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문잔장에서 온전한 목적어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건 슬픈 일이였다. 모든 것의 주어가 되었을 때 기쁘지만은 않은것 처럼.276p
내 삶을 살면서도 내가 항상 목적어일 수 없을 때가 있다. 항상 내가 주어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론 부사인 나도, 형용사인 나도 나다. 괜찮다.그때는 목적어인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면 되니까. 그럼 언제가 그사람이 부사일 때 나를 생각해 줄테니까..
이 산 어딘가에 있는 산사에서 공양종이 울린다. 내려가야겠다. 나는 나를 생각해 주는 내 세상으로 다시 내려간다.아카시아 바람이 앞이마를 여전히 스쳐간다. 책을 덮는다. 책 제목앞에 가로를 하나 그려넣는다. (너를 생각하는)나를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