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썼지만, 30위권 진입을 위해 다시 리바이벌을....

일이 있어 내 사이트에 들어왔다가, 아주 우연하게도 지난학기 강의평가를 클릭했다. 빈곤하기 짝이 없는 다른 항목-예컨대 논문점수라든지...-과 달리, 강의평가로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학교 평균이 5점 만점에 4.0 수준에서 맴도는 반면, 내 강의점수는 대부분 4.5를 넘는다. 강의의 질이 낮음에도 이렇게 점수를 잘받는 비결은 뭘까? 기타 의견에 그 해답이 있다.

"교수님 한학기 동안 즐겁고 유익한 수업 감사합니다"
하하, 이건 내가 수업 중에 애들을 웃겼다는 소리다. 처음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웃긴 얘기를 찾아 다니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지만, 유머가 진일보한 지금은 애드립으로 더 많은 웃음을 이끌어낸다. '유익'이란 말도 기생충에 대해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유머의 기술을 배워서 도움이 되었다든지, 아니면 덕담 차원일 것이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교수님의 유머스러운 강의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들었습니다"
글쎄다. 이게 과연 진실일까? 수업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학생들은 "그만해요!"나 "다음에 해요!"를 외치곤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게"라는 말도 그러니까 덕담일 것이다.
또다른 학생의 말,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많이 배려해주셔 감사했습니다"
이건 아마도 내가 그들의 휴강 요구, 그리고 빨리 끝내달라는 요구를 잘 들어준 데서 기인할 것이다. 진정한 배려는 질좋은 수업을 하는 것이건만, 피교육자의 심리는 그저 빨리만 끝내주면 최고인 그런 것이니.

또다른 학생의 멘트, "수업시간에 눈 좀 마주쳐주세요^^" 
이 말이 왜 안나오나 했다. 한학기 내내 땅만 보고 수업을 한 소치다. 여학교에서는 남자 선생이 한 학생을 오래 보면 대번에 스캔들이 나곤 한다는데, 남자든 여자든 거의 보지도 않는 난 그럴 소지는 없다. 하지만 그게 좋은 건 아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내가 아래만 쳐다보는 게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을 무시하거나, 보기가 싫어서 그런 줄 오해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난 사람들을 똑바로 보는 게 너무 힘들다. 아니, 겁이 난다. 언젠가 잠깐잠깐 방송에 나갔을 때 좋은 평가를 못받았던 게 카메라와 방청객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는 거였다. 실제로 한 방청객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자네 시선이 그게 뭔가?"

언제부터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충 추측을 해보면 중학교 입학 이후부터 그런 증상이 벌어진 것 같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나는 교복을 입고 머리까지 빡빡 깎자 내 모습을 너무도 부끄럽게 여겼었다. 그래서 난 나를 다른 여학생에게 보이기 싫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길거리를 다녔고, 길거리에서 여학생을 만나면 과도하게 피해 갔었다. 이런 증상은 갈수록 심해져, 고2 때 독서실을 다닐 때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까지 했다. 계단에서 여학생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벌레가 나무에 붙듯이 벽에 몸을 밀착시킨 채 여학생이 지나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거기 다니는 여학생들은 "걔 왜그러냐?"며 자기들끼리 내 흉을 봤단다.

여학생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는데 난 왜 그렇게 과도한 반응을 보였을까. 내 얼굴을 보이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함으로써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음모가 숨어 있었던 건 아닐까? 누구랑 잘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여학생들이 내 이름은 다들 알고 있었으니, 그게 전략이었다면 꽤 성공적이었을 거다. 나같은 애가 여학생을 따라다니며 껄떡거리기라도 했으면 누가 관심이나 가졌겠는가. 하지만 그게 지금까지도, 심지어 학생들에게도 계속되는 걸 보면 그게 관심을 끌고자 하는 전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업할 때도 그렇지만, 일대일로 여자를 만날 때도 그건 결코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남들은 내가 못생기지 않았다고 위로를 하고, 실제로 나보다 못생긴 남자들을 여럿 봤지만, 시선처리의 어려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낯선 사람이나 대규모 군중을 만나면 증세가 더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하기사, 지금까지 이십년이 지나도록 내게 박혀있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는 없지 않는가. 그냥 보면 안되냐고 할지 몰라도, 내겐 그게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마음 속의 난 분명히, 당신의 눈을 똑바로 보고 싶다.

*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내 순위가 34위로 떨어졌다. 이런이런... 11주 연속이 위험하군. 오전에 괜히 일 열심히 했다. 글이나 쓸 걸... 곧 술마시러 떠야 하는데 어쩌나...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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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06-1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다닐 때 선생님들한테 혼날때도 시선을 피하지 않아서 더 맞고 다녔던 기억이- .-;;

2004-06-11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06-1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큰일났어요. 시사저널에서 제 실명을 실었군요. 으..망했다. 그리고 의과대학 소리는 안하고 "대학에서 애들 가르쳐요. 일종의 교수죠"라고 썼는데, 의과대학교수라고 하고 나이까지 났어요. 이를 어쩌면 좋죠? 모교 선생님들이 보는 날엔 저 끝장입니다. 선생님들 욕도 있는데... 이거 혹시, 서재 감추기 기능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좀 가르쳐 주세요. 한 일주일만 닫아놓고 있을께요.

갈대 2004-06-1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마태우스님도 수즙음족이시네요.
제 특기가 사람 눈 안 쳐다보고 앞만 보고 얘기하기거든요(특히 여자와..-_-;;)
그래서 한 번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오해도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와눈을 안 마주쳤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좋아해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묻더군요. 난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