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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비과학대전 2
야나기타 리카오 지음, 이남훈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과학콘서트>를 쓴 정재승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멋진 책도 썼었다. 영화에 나오는 비과학적인 얘기들을 과학도의 눈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그 책은 내 안에 숨어있는 과학에 대한 열망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좀 야박하다는 생각도 했다. 어차피 영화라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건데, 뭘 그렇게 따진담? 일본 작가가 쓴 <공상비과학대전 1, 2>는 한발 더 나아가 만화에 나오는 얘기들을 물고늘어진다. 영화도 말이 안되는 게 많은데 만화는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 책에 매료되었던 것은, 이 책의 저자가 단순히 "말이 안된다"고 일침을 가하는 데 그친 게 아니라 만화의 얘기들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는 데 있다. 예컨대 고도 25미터의 점프력을 과시하는 가면라이더에 관한 대목을 보자. 만화의 설정은 라이더가 메뚜기와 인간의 융합, 저자는 진화상으로 너무도 동떨어진 둘의 융합은 말이 안된다고 단정한 뒤, 그 정도의 점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리의 근육을 메뚜기로부터 이식해야 할 것이다...모아야 하는 메뚜기의 수는 30만마리! 자연파괴가 진행된 일본에서 이만한 메뚜기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신경이다. 가면라이더가 아무리 전투의욕이 있어도, 적이 가까이 오면 다리가 제멋대로 반응하여 도망가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메뚜기를 포기한 채 25미터의 점프가 가능하도록 다리근육을 개조한다. 그건 쉬울까? [...이건 엄청난 일이다...5명이 붙어서 8시간 일해도 570만년이 걸린다...1년 정도로 끝내기 위해 필요한 과학자는 4천만명. 전 세계의 협력이 필요하다. 맨몸의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 큰 사업인 것이다]
이제 끝일까. 아니다. 문제는 개조 후 라이더의 다리길이가 4미터 50센티라는 점. 책에는 긴 다리를 한 라이더가 앉아있는 모습,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이 나와있는데, 그걸 보고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다.
시속 3천킬로로 달리는 바리어스 7호, 저자는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그 정도의 시속을 낼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든다. 그 후유증은 어떨까? [..주변 주민의 고막은 물론, 유리창이나 셔터까지도 펑펑 터져 나가고, 거리에 따라서는 건물째로 파열되며...지면에는 충격파가 남기는 깊은 흠이 남을 것이다. 게다가 그 앞을 선도하는 제트 전투기가 1초에 17만발의 기총소사를 하며 날아간다]
저자의 다음 설명이 난 너무 웃겼다. [이래서는 쫓기는 악인이 무서워 죽을 지경일 것이다. 자신이 도망치는 탓에 거리가 파괴당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너무도 큰 죄악감에 사로잡혀 반성하고 자수해 버리는 게 아닐까...시속 3천킬로로 달리는 머신에서 정의의 히어로는 이렇게 소리지를 것이다. "거기 서라! 계속 도망치고 있으면 죄 없는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거야!]
과학을 하는 사람은 대개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지라 이렇게 재기발랄한 과학자를 만나면 즐거워진다. 저자의 유쾌한 상상력에 감탄하며 책을 읽다가, 신문에 난 다음 기사를 보고 상상력이라는 게 늘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기춘 소추위원은 "대통령이 다시 복귀하면 대한민국은 법이 지배하는 민주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의 저자보다 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 김기춘에게 경의를 표한다.
* 울트라맨이나 액션가면 같은 만화를 본 분이면 더더욱 재미있을 겁니다. 전 우주전함 야마토도 잘 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