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승>은 엄청난 파워와 불로장생을 가능케 하는 두루마기를 빼앗으려는 악당들의 음모를 주윤발과 그의 제자가 물리친다는 얘기다. 그 제자는 우연히 발탁되는데, 무공을 배우는데 무슨 특별한 신체조건이 필요한 건 아닌 듯했다. <매트릭스>에서 저항군들은 오라클의 예언에 따라 매트릭스로부터 지구를 구해낼 '그'를 찾아다닌다. 네오가 과연 '그'인지 아닌지 관심이 집중되지만, 관객들은 이미 안다. 네오가 '그'라는 걸. 네오가 점점 엄청난 일들을 해내면서 자신이 '그'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그런대로 재미있다. 내가 읽다가 만 <슬램덩크>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강백호가 훌륭한 농구선수로 성장하는 얘기다. 가끔씩 놀라운 묘기를 보이긴 하지만, 어이없는 플레이를 더 많이 하는 게 웃음을 유발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흔해서,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위에서 열거된 작품들과 동일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경찰인 류승범이 마루치라는 건 영화 속 인물들만 모를 뿐, 관객들은 다 안다. 다만 그가 어떤 계기로 마루치가 될지, 그 과정이 말이 되는가가 궁금할 따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보고나서 재미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류승범의 개인기가 구성의 엉성함을 상당부분 커버했기 때문이었다. 류승범 말고 어느 누구도 그 역을 대신하지 못했으리라. 그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예술이었고, 몸도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그렇긴 해도, 배우 하나에 의존하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무술 영화인 것을 감안한다 해도, "으아아아"라는 대사가 너무 많이 나와 멀미가 날 지경이었고, 한자를 동반한 고리타분한 설교가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는 것도 짜증이 났다.

영화에서 윤소이는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좀도둑 같은 애가 있으면 쫓아가서 혼내준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털이범을 쫓기 위해 그녀는 빌딩과 빌딩을 가로지르며 활약을 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느려서야 범죄를 다 소탕할 수 없다는 것. 내가 지금 읽고있는 책에 나온 얘기를 하나 해본다. 울트라맨이라는 만화에서 울트라맨은 컬러 타이머가 꺼지는 3분 이내에 적을 물리쳐야 하는데, 싸우는 시간이 1분은 되어야 하니, 마하5의 속도로 적이 있는데까지 2분에 가려면 반경 200킬로가 고작이다. 그러니 일본 전체를 적의 위협에서 지키려면 6,000명의 울트라맨이 있어야 한다나? 윤소이와 류승범도 범죄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축지법같이 대단한 뭔가가 있어야 할 듯 싶다. 자기 앞에서 일어나는 범죄만 소탕한다면-그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그게 무슨 소용인가? 더구나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 앞에서는 범죄자들이 얼씬도 안할 텐데. 그리고 윤소이 얘기나 나왔으니 말인데, 이왕이면 좀 따뜻한 미소도 짓고 그러지 왜 시종일관 짜증만 내는걸까. 난 영화 이미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놈이라, 송혜교도 싫어한다. <순풍산부인과>에서 화만 내는 역으로 나왔으니까. 이쁘게 생겼다는 데는 동의해도, 그녀를 불과 27명의 여인만 등재되어 있는 '내가 좋아하는 여인 리스트'에 올릴 것같지는 않다.
곧 <트로이>가 개봉될 모양이다. 예고편을 보니까 돈은 무지하게 쓴 것 같다. 수많은 병사들이 진군하는 모습이나 트로이의 목마같은 걸 보니 원없이 돈을 썼나보다. 뭐, 내돈이 아니니까 그렇다치고, 아킬레스 역을 맡은 이는 브래드 피트다. 책을 보면 아킬레스는 여자처럼 생겨서, 전쟁에 안나가려고 여장한 채 도망다녔다. 잘생기긴 했지만, 브래드 피트는 아무리 꾸며도 여자같진 않던데, 차라리 올란도 블롬(구 레골라스)이 아킬레스 역에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