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물과 사상 30 - 탄핵받는 '탄핵' 그 이후
고종석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탄핵사태가 일어난 것은 3월 12일, 금요일이다. 다음날은 토요일이고, 일요일은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월간지는 3월 20일에 나오며, 그러기 위해서는 3월 13-4일 정도까지 원고가 마감된다. <한겨레21>같은 주간지는 목요일에 새 잡지가 나온다. 3월 12일날 탄핵안이 가결된 것은 이런 사정과 전혀 무관한, 돌발적인 일이었을까?
아무튼 내가 본 월간지나 주간지는 원래의 원고를 빼고 탄핵사태에 관해 급하게 쓴 글을 몇편 채워넣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탄핵이 일주일만 더 빨랐다면 대부분의 시사잡지들이 탄핵 얘기로 도배되었을텐데 말이다. 3월 22일에 나올 예정이었던 계간 <인물과 사상> 역시, 탄핵에 관해 쓴 3편의 글이 추가되어 있다. 그 바람에, <인물과 사상> 창간 30호을 자축하는 글도 나와있지 않다.
머리말에서 고종석은 이렇게 말한다. [..두려운 것은...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유권자 네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이 일을 잘된 일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탄핵소추안이...가결된 일 못지않게 놀라운 일이다. '네 사람 가운데 하나'는 어느 사회에고 있게 마련인 습관적 반사회분자들의 비율치고는 너무 높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 문화가 그만큼 불건강하다는 뜻이다]
내 주위에도 그 '넷 중 하나'가 여럿 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그들과 난 너무도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다. 노무현이 암살되었다 하더라도 저들은, 탄핵 가결 때 그랬던 것처럼, 축제분위기에 빠져들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좀 두려워진다.
이 글들 외에 외국인에 대한 글 세편이 실려있는데, 그 중 복거일의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유전자와 문화가 외부에 대한 배타성을 증대시키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인물과 사상>이라는 옷이 복 선생님께는 썩 불편했을 테고"라고 한 고종석의 말처럼, 개혁을 지향하는 이 책의 지향과 복거일의 좌표는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좋은 글을 보내준 복거일의 아량에 나 역시 감사드린다. 언제나 탁월한 글로 날 감동시키는 고종석은 이번에도 <섞임과 스밈>으로 날 깊은 성찰로 이끌었고, 김귀옥이 쓴 '실향민은 왜 반공수구세력이 되었을까' 역시 그들의 처지에 대해 무시보다는 이해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소중한 글이다. 6월에 나올 31권을 기다리며,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