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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시민혁명중
조기숙 지음 / 여성신문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독서습관에 관한 책을 보니 한번에 두가지 책을 보지 말란다. 장정일은 지하철을 탔을 때처럼 짜투리 시간에 하는 독서는 눈만 나빠질 뿐, 과히 좋은 습관이 아니란다. 난 좋지 않다는 그 두가지를 모두 하는 편이다. <한국은 시민혁명중>이라는 책도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을 읽는 틈틈이 펼치다보니, 먼저 다 읽어 버렸다. 내 생각에도 책은 가부좌를 틀고앉아 단숨에 읽는 게 더 좋아 보이지만, 여건이 그리 안되는데 어쩐단 말인가. 읽던 책을 바꾸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읽을 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을산님의 말씀이다. "옷을 입을 때도 때와 장소에 따라 옷을 입으라 하는데, 책에도 분명 이런 것이 있을거라 생각된다...혹시 잠을 자고싶은데 잠이 안올 경우를 위한 책도 필요하다. 그런 경우 필요한 것이 들뢰즈 등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의 책이나 의학 저널집이다! 5분도 안되어 졸음이 오기 시작하니, 수면제보다도 효과 직방이다"
하루에 여러 권의 책을 들쳐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래서다.
이 책의 저자인 조기숙은 매우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지식인이다. 메이져 언론의 만행에 모두 침묵할 때, 조기숙은 그들이 자행하는 왜곡을 질타했고, 조선일보에 기고를 거절하기도 했다. 또한 예측력도 뛰어나, 정말 조 교수의 말대로 상황이 진행되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그렇긴 해도 이런 말을 스스로 할 필요가 있을까?
[...전개과정을 미리 예견하기도 했다. 노풍이 불 것이라는 점...단일화가 성공할 것이라는 점...이회창이 당선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점을 주장했었다. 그래서 족집게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154쪽)]
"뭐야, 잘난체를 하다니"라는 반응을 감수하고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조기숙의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난 대선에 관한 나의 설명에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 교수의 말은, 자신은 정확히 앞날을 내다봤는데, 언론과 다른 학자들은 지난 대선을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는 것이다. 부연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긴 하지만, 자화자찬이 환영받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강준만 같은 사람은 노풍을 불러일으킨 숨은 실력자지만,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하지는 않잖아? 그리고 '족집게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으면 최소한 주위에서는 인정받은 터, 책에서까지 그런 얘기를 듣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모르겠다. 내가 워낙 삐딱해서, 실제로 잘난 사람이 잘난 체를 하는 것조차 용납을 못하는 건지.
조 교수는 아직도 많은 사람-특히 수구 애들-이 헷갈려하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에 관해 명료하게 해설을 한 뒤, 이런 말을 한다.
[그러면 노무현은 좌파정권인가?....내 눈에 노대통령은 투명한 시장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자일 따름이다. 젊은 시절의 노무현은 분명히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보수주의자다. 그럼 노대통령이 변절했냐고? 이런 말도 못들어 봤나.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40대에도 사회주의자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104쪽)]
젊은 시절 노무현이 진보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는 극우가 보수를 자처했기 때문이라고 한참 설명을 해 놓고선, 사회주의자 운운하는 마지막 문장은 도대체 왜 집어넣은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노무현은 보수인데 말이다.
책 말미에서 조 교수는 남성 중심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한 뒤 이렇게 주장한다. "용감한 한국 여성들이 언론을 주도해야 비로소 언론개혁이 시작될 것이다. 언론개혁을 위해서도 여성이 나서야 한다"(260쪽))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구절을 읽고나니 갑자기 전여옥 여사가 생각난다. 여성한테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했던, 그러다 자신이 테러분자로 돌변해 노무현에게 무지막지한 테러를 일삼았던 그 여자. 치마만 둘렀다고 다 여자는 아닌 것같다. 이 책을 한마디로 평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정치에 관해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이 담긴 귀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