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3월 27일 (토)
누구와?: 같이 광화문에 나갔던 사람들과. 그날 집회가 마지막 집회인지라 쫑파티였던 셈이다.
마신 양: 소주 한병 플러스 알파
좋았던 점: 시키는 안주마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나빴던 점
-밥을 안먹고 바로 술을 마셨더니 다들 안주발을 엄청 세웠다.
-요즘 계속되는 술로 심신이 피곤하다. 어젠 영화보다 졸기까지...

부제: 광화문에서 느낀 세가지

1. 김어준
광화문에 간 김에 내책을 몇권 사재기를 했다. 사재기를 담당했던 브로커가 내게 김어준을 봤단다. "그 친구, 뚱뚱하지?"
그렇다고 했다. "안에서 책 읽고 있던데?"
그와 술을 두 번 같이 마셔본 경험밖에 없지만, 그런 유명인과 친분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을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자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난 서둘러 교보 안으로 들어가서 그를 찾았는데, 그는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

광화문에 나갔다. 서두른 탓에 무대가 보이는 앞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브로커가 날 친다. "김어준 저기 있다!" 보니까 정말 김어준이었다. 우리 뒤에 앉은 여자들도 이렇게 말한다.
"얘, 저기 김어준이야!"
너무나도 반가웠던 난 그의 어깨를 퍽 하고 쳤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왜그러냐고 묻는 그는, 김어준이 아니었다! 죄송하다고 한 뒤 이분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각을 해보니 김어준의 머리는 노랗게 염색된 게 아니었고, 조금 살이 찌긴 했어도 그정도까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그가 광화문에 있다면 취재를 하러 왔지, 우리처럼 아스팔트에 자리를 잡고 있지는 않았을 터였다. 난 날 이렇게 만든 브로커에게 원망의 화살을 쐈지만, 브로커는 "내가 언제 김어준이랬어? 비슷하다고 했지!"라며 되레 소리를 친다.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다 성숙한 민주시민은 아닌가보다.

2. 황상익
연단에 황상익 서울의대 교수가 올라왔다. 그가 한겨레에 쓰는 글만큼 연설도 잘해주길 바랐지만, 그건 너무 무리한 바램이었던 것 같다. 그 전에 발언했던, 스스로를 무식하다고 말한 농부 아저씨의 말이 훨씬 더 큰 울림을 우리에게 준 걸 보면, 지식이 많다고 대중연설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황상익 교수를 존경한다. 87년 시국선언이 잇따를 때, 의대 내에서 서명에 동참한 몇 안되는 사람이었던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래서 노무현을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서울의대 교수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다. 탄핵 이후 축제분위기로 변한 서울의대에서, 광화문에 나가 탄핵반대를 외친 그가 없었다면 후배들이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을까?

이젠 기회가 없어졌지만, 나도 무대 위에 오르고 싶은 충동을 잠깐 느꼈었다. 그랬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
나: 여러분, 물은 어떻게 먹죠?
사람들: 셀프요!

3. 누나
집회 중간에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냥 심심해서 전화했다며, 나더러 뭐하냔다.
"응, 여기 광화문이야!"
누나의 말이다. "아니 너 거기서 뭐해? 또 술마시냐?"
윽, 우리 누나는 지금 광화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몰랐던 거다. 그렇긴 해도, 탄핵에 열광하고, 광화문에 있다는 나에게 "거기서 뭐해? 빨리 집에 가!"라고 말한 여동생보다는 세상사에 무관심한 우리 누나가 더 낫지 않을까? 아니다. 우리 누나의 평소 언행으로 보건대, 광화문에서 탄핵반대 집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야, 너 미쳤니? 탄핵 되서 더 잘된 거 아냐?"

형제자매는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배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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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2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이 인간 찍어내는 인간공장은 아니니까요....ㅎㅎㅎ

2004-03-29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3-29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3-29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탄핵이후로 주위에서도 찬반의견이 분분했는데..아마 다들 총선때, 가슴에 갈고 있는 칼하나씩 보여주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