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크르의 시대 - 들뢰즈와 사건의 철학, 소운 이정우교수 강의록
이정우 지음 / 거름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이란 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철학을 잘 알아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터, 철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어려울 거라는 이유로 철학책을 읽는 걸 몇 년째 피해왔다. "내공을 갖추면 읽을래!"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어느 분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추천해준 게 바로 <시뮬라크르의 시대>인데, 사고 난 지 일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대학교수직을 초개처럼 던지고 나와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정우의 강의를 책으로 옮긴 책으로, 나처럼 무지한 중생을 철학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최대한 쉽게 개념들을 설명해 놓은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 강좌를 듣는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인 듯, 토론 때 질문하는 걸 보니 장난이 아니고, 저자의 말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여러번 나와 날 기죽게 한다.
-이 개념은 다들 알고 계시겠죠?--> 처음...듣는데?
-이 책은 모두 읽어 보셨을 겁니다--> 제목도 몰랐다...
-언어학에서 이건 필수니까...--> 언어학이 뭐지?

그래서 난 열흘 정도를 이 책에 매달려야 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래도 뿌듯하긴 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구조주의에 시간 개념을 덧붙인 것이 후기 구조주의고,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이 다르다는 것, 서양 철학은 합리주의와 반합리주의가 패권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학문이라는 것 등등을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오늘 만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라이프니쯔가 그랬는데, 너에게 일어날 모든 일은 사실은 너 안에 내재된 거래" 친구의 대답이다.
"그게...무슨 말이야?"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물었다.
나: 너, 혹시 들뢰즈 알아?
친구: 누군데?
나: 그럼 미셀 푸코는? 판옵티콘이랑 권력에 대해 말한 사람 말야
친구: 몰라. 알아야 해?

흠.. 그렇단 말이지. 난 내가 철학에 문외한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꼭 그런 건 아닌가보다.  그러니 맨날 "난 철학 몰라몰라!"라고 자학만 하지 말고, 본격적으로 철학에 대해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정도의 내공에 무슨 대단한 철학책을 읽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 이정우가 읽으라고 추천해준 책들은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쑥쑥 자라지 않겠는가?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도 마음에 든다. "이제 단순 소개나 번역이 아니라, 이들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우리 특수성과 관련되는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서구에서 탈근대는 그들 자신의 근대에 대한 탈이지만, 우리에게 탈근대는 또 다르죠. 하나는...보편적인 의미에서 근대성의 극복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난 100년간 진행되어 온 서구화에 대한 반성이라는 것이죠"
가까운 장래에 철학 아카데미에서 그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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