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신장이 갑자기 나빠진 적이 있다. 크레아티닌이라는 물질의 혈중농도가 무 넘는단다. 선생님은 당장 입원을 하라고 하셨고, 난 입원결정서를 들고 원무과를 찾아갔다. 원무과에서는 당장은 방이 없으니, 집에서 기다리면 전화를 해주겠단다. 집에 가서 전화를 기다렸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을 기다리다, 원무과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방이 없으니 더 기다리란다. 하루를 더 기다린 후, 어머님은 결국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방만 구해 주시면 꼭 사례하겠습니다"

난 어머님이 건네주신 돈 20만원을 들고 원무과를 찾았다. 원무과장의 책상에 "저희 어머님의 작은 성의"라며 흰 봉투를 올려놓자, 과장은 독수리가 먹이를 채듯이 봉투를 숨겼다. 그리고는 말했다. "미스김, 104병동 방 하나 내줘!"
미스김: 104병동은 방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과장: 하나 있었어!
탐욕으로 얼룩진 과장이란 놈의 추악한 얼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원무과의 힘은 정말이지 막강하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의대 교수가 제일인 줄 알지만, 예약과 입원, 그러니까 진료에 필수적인 두가지 권한은 몽땅 원무과가 쥐고 있다. 그 권한을 이용해 챙기는 게 많은지, 삼성병원 기획팀에서 진료예약의 기능을 다른 부서로 넘기려고 했을 때 얼마나 반발이 심했는지 모른다 (결국 실패했다).

물론 그들도 나름의 고충은 있을 것이다. 딸린 식구도 많을테고, 여기저기 돈 쓸때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환자 보호자라는 어려운 입장을 이용해 돈을 챙긴다는 것이다. 병의 경중에 관계없이 누구나 빨리 치료받기를 원하며, 나처럼 돈을 써서 새치기를 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내가 했던 새치기도 그래서 옳은 일이 아니었지만, 방이 있는데도 부수입을 위해 꼬불쳐 둔 원무과장은 몇배나 더 나쁜 놈이 아닐까 싶다. 의사 촌지는 많이 없어졌지만, S대병원 원무과에서는 아직도 돈세는 소리가 들린다. 사각-사각...(이건 칼가는 소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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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1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참. 할 말이 없습니다.

paviana 2004-03-13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s대학 병원장의 기사님을 잘 알구 있었습니다. 정말 병원장은 바뀌어두 기사는 안 바뀌는지라 그때는 s병원의 입원,예약 이런 것이 정말 아무일도 아닌적이 있었습니다...

마냐 2004-03-1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 살아가는데, 의사, 판검사 한둘은 알아야 편하다고 했는데...흠..더 빠른 길이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