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영화와 시선 6
이성욱 외 지음, 연세대미디어아트연구소 엮음 / 삼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서울관객만이 아닌, 전국관객을 집계하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꿈도 못꿨던 '500만 관중돌파'가 심심치 않게 이루어진다. 영화 '친구'는 그 와중에도 우뚝 솟은 별로, '실미도'에 의해 기록이 깨지기까지 3년간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800만, 대한민국 사람 여섯명 중 한명이 그 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떠들썩한 소문에 밀려서, 난 거의 마지막으로 800만 대열에 합류했다. 어두컴컴한 극장에 혼자 앉아 그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 비결이 뭔지를 연구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난 도대체 뭐가 그토록 많은 관객을 끌어들였는지 알 수 없었다. 유오성의 연기가 일품이긴 했어도, 줄거리로 보면 그저그런 조폭얘기, 의리얘기가 아니던가.

연세 미디어아트연구소에서 펴낸 <친구>를 읽은 이유는 풀지 못했던 그 궁굼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보고자 한 까닭이었다. 그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왜 800만 관객이 그 영화를 선택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 책을 통해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저자 중 한명인 김정선의 말이다.

[고전적 갱스터는 애당초 목표가 자기 세계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에게서 보스에 대한 충성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1990년대 중반 한국의 삼류깡패는..자기파괴적인 일인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그가 꿈꾸는 미래는...보스로부터 예쁨을 받아 출세하는 것이고, 보스에게 온 힘을 다해 충성을 바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하지만 '넘버3'의 태주(한석규 분)는..두목의 의중을 간파하고 배신을 선택함으로써...살아남는다...]

그렇다면, 깡패영화의 계보 속에서 '친구'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친구'는 두 인물을 통해 구축하는 성공의 욕망(장동건)과 인간됨을 향한 욕망(유오성)의 충동에 있어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데 반해 1990년대 중반의 한국 갱스터 영화는 성공이 인간성을 어느 정도 희생해서라도 성취해야 할 절대과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정리하면 다른 갱스터 영화들과 달리 '친구'에서는 일종의 전복이 이루어지고 있다(128-130쪽)]

유오성은 친구를 잔인하게 죽였는데 무슨 인간성이냐, 하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상택처럼 '삶의 색이 완전히 다른 친구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삶의 색이 비슷한 친구는 친구이기 전에 경쟁자(100쪽)'임므로 둘 중 하나는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인 것이다. '내는 니 시다바리가?'라는 유명한 대사는 둘 사이의 사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실린 글들이 대체로 다 유익했지만, 상택과 유오성, 장동건을 '욕망의 삼각형'이란 이론을 통해 분석한 대목은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사랑의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능케 하는 경쟁자를 사랑한다!' 내용이 어려워 멀미가 나기도 했지만, 남자들간의 의리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동성애라는 말은 맞지 않는가? 이제 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내리련다. 800만 중 절반 가량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친구'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못해서 극장을 찾은 건 아닐까? 뭐가 좋다면 우 하고 달려가는 우리의 성향이 800만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리라.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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