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대개 드러난 사실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곤 한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친일파는 나쁘다고 욕하기만 할 뿐,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노자는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배경을 밝힘으로써 그들을 이해하려 시도한다. 그렇다면, 보수언론이나 이문열, 복거일 씨처럼 박노자 역시 친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변하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다음과 같다.

[글이나 말로는 친일파에게 엄격한 필주를 가하곤 하는 우리지만, 친일파와 결부된 현실에 대해선 놀라울 만큼 너그럽다. 물론 역사 인물들의 훼절을 엄정하게 밝히는 작업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의 사성적 광기가 '어떤 구조적인 이유에 의해 형성됐는가' 그리고 '현재까지 어떻게 계승되는가?'라는 부분에 대해서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나 싶다. 친일파들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정확한 대중적 의식이 있어야 '전 국민적 공동체의 미덕'을 기리는 어용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사람이 사라질 것이다(75쪽)]

'국기에 대한 맹세'로 대표되는 소름끼치는 우리의 국가주의가 군사독재 정권 때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박노자는 지금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국가주의적 세계관이 근대 초기의 지식인들에게서 배태된 것이라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우리의 민족주의가 피지배국의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하지만, 팽창적 민족주의가 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 그는 ''파업이 국민경제를 좀먹는다'는 보수 신문의 말을 '글쎄, 그런가보다'고 그대로 믿'는, 순치되버린 우리의 의식을 질타하며, 개인주의를 빙자하여 현실과 타협하는 우리의 나약함을 꾸짖는다.

[현대인들이 직장에서 상사에게 무조건 고분고분하고, 집에서는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권위주의 질서의 보루인 족벌신문들을 읽으며, 소비 생활에서 자신의 취향을 내세우는 것만으로 개인주의를 자처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아니'라고 한다. 개인주의자는 자기 혼자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게 아니란다. 진정한 개인주의자라면 '사립학교 재단이 자기가 낸 등록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들 중 왜 시간강사들이 유독 많은지'에 관해서도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박노자의 말이다.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자신의 자유가 침탈당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싸우는 사람이니까. 요즘 대학의 일부 신세대들처럼 정치적 무관심을 빙자해 권위주의적 극우와도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는 개인주의는 개인주의가 아닌 거다. 그는 말한다. '그들에게 개인주의의 참뜻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은 진보 진영의 급선무다'

그의 책은 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아무런 의식없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혼자만의 안일에 젖어 소수자들을 외면하는 나의 행태를 반성해 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런 반성을 하는 건 책을 읽는 그 순간 뿐이고, 책을 덮고나면 난 다시금 원래의 나로 돌아간다. 방법은 없을까. 있다. 박노자가 책을 많이 써서 나로 하여금 늘 그의 책을 들고 있게 하는 것, 그것만이 날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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