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관 약전(略傳)
성석제 지음 / 강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조폭마누라2'가 나쁜 영화인 이유가 뭘까. 코메디 영화를 표방해 놓고선 관객을 전혀 웃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이터를 켜라', '신라의 달밤'의 성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내러티브야 어떻든 웃겨만 주면 된다는 관객은 의외로 많다. 성석제의 소설을 집어들 때마다 난 맘껏 웃을 준비를 한다.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유머작가이며, 지금까지 매번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줬으니까. 그의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일상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기에, 난 늘 그에게 고마움을 느껴왔다.

하지만 이번 책은 그런 점에서 실망스럽다. 전혀 웃기지 않을뿐더러, 쉼표를 빈번히 사용하는 특유의 문체도 없다. 책날개에 실린 사진이 아니었다면 난 동명이인이 쓴 책인 줄 알았을 거다. 동인문학상을 받았던 소설집 <황만근은...>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석제의 단편들은 언제나 끝이 허무하다. 그게 용서되는 건 내용이 워낙 웃기기 때문인데, 이번 소설들은 끝이 허무한 건 예전과 똑같지만 도무지 재미있질 않으니, 영 속은 기분이다.

'경두'나 '오 불쌍한 우리 아빠'를 보면 그의 소설관이 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상에 선 작가가 변신의 노력을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기대를 충족 못시켜 실망하는 독자도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 이 소설집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한번쯤 읽어볼 소설이라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이 책을 읽으려면 유머에 대한 기대는 미리 접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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