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등 -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성찰의 거울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홍세화님이 한겨레에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칼럼의 생명은 시의성, 읽었던 기억이 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책으로 엮어진 칼럼들을 읽는 건 묵은 신문을 보는 것처럼 긴장도가 떨어진다. 더군다나 칼럼을 쓴 날짜도 적혀 있지 않고, 주제별로 편집한 것도 아닌지라 다소 성의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메시지가 여전히 마음에 와닿는 것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후진성을 면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존재에 걸맞는 의식을 가지라는 명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스스로 노동자임을 부인하며, '중산층'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어 있다. '노조를 만들려면 공장에나 가라'는 송복의 궤변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유효하다. 그래서 우리는 생존권을 건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의식을 갖지 못하며, 수구언론이 설파하는대로 파업 노동자들을 욕하기 바쁘다. 현대차 연봉에 관한 수구언론의 뻥튀기에 속아 '현대차 불매운동'같은 한심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반공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우리의 제도교육 탓도 있지만, 수구 신문에 의해 끊임없이 받는 세뇌도 커다란 이유가 된다.

친일과 독재정권에 부역한 과거를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공익보다는 사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수구언론들의 행태는 충분히 부도덕하다. 하지만 그들의 세뇌는 워낙 집요해, 그들이 뿜어내는 악취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대해 '독자가 바보냐'며 신경질적으로만 대응할 게 아니라, 왜 그런 운동이 벌어지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 안될까.

사소한 예에 불과하지만, 월드컵 석달전 히딩크를 '말바꾸기의 명수'라며 비난하던 조선일보는 월드컵 16강에 오르자마자 그를 극찬했다. 98년 월드컵서 자케 감독을 비난하다가 프랑스가 우승한 뒤 큼지막한 사과기사를 낸 프랑스 신문과 대조적인데, 한국 언론이 말 바꾸기나 오보에 늠름, 뻔뻔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무지와 망각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며, 수구세력은 그런 무지와 망각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란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공부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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