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대학동창 사이트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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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날 안쓰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 사이트를 살리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2년 전만 해도 활황세를 유지하던 우리 사이트가, 이젠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같이 글 한편에 의존해서 주황색의 불을 켜곤 한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끌어갈 수 있을까 우려하는 친구도 있겠지만, 내 특기가 원래 무에서 유를 만들고, 별거 아닌 것도 긴 글 한편으로 우려먹는 것인지라 마음만 독하게 먹는다면 몇년이고 주황색 불이 켜있게 할 수는 있다 (게다가 다른 친구들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이 사이트에 불이 꺼진 걸 보고도 글을 안쓸 때가 있다면, 그건 글을 쓸 소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회의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맞을거다. 너무 극단적인 비유 같지만, 우리 사이트의 현재 모습은 산소호흡기를 단 환자같은 생각이 든다. 소생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해, 호흡기를 떼는 동시에 숨을 거두는 그런 환자.

난 지금, 다른 이들이 글을 안쓴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이트에 가입하고 있는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게시판들이 황무지가 되어가는 판에, 우리 게시판은 그래도 꽤 잘나간, 그리고 오래 버틴 곳이다. 내가 거기에 보탬이 된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그건 내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난 그들에게 고맙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했다. "세일이가 만든 건데, 왜 내가 (이곳의) 책임을 져야 하는거야!"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뿐이고, 난 이곳을 개설해 준 세일이에게 감사하는 편이다. 이 사이트 덕분에 학생 때 마이너리티에 속해 있던 내가 친구들로 하여금 "쟤도 잘하는 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고, 학생 때 말도 한마디 나누어 보지 않았던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여기서의 만남이 없었던들, 난 권정혜나 이란, 김지영 등과 말 한마디 못해본 체로 일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이 사이트가 없었다면, 비록 동창이라 하더라도,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내 친구의 이름이 박힌 병원에 감히 놀러갈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포항은 동준이와 준태, 상호, 윤근이 등-한명이 빠졌는데...누구더라?-이 근무하는 반가운 곳이지만, 이곳이 없었다면 포항은 그저 포항제철과 포항공대만이 존재하는 삭막한 도시였을 거다. 이곳은 그러니까 내게 커다란 혜택을 준 고마운 곳, 내가 여기다 열심히 글을 쓰는 건 그 은혜를 갚고자 함이다.

예전 얘기를 잠깐만 한다. 몇몇 친구들끼리 사이트를 만든 적이 있다. 지금 그곳은 일주에 한편 정도의 글이 올라오는 곳이 되었는데, 모든 사이트가 그렇듯이 초창기에는 꽤 잘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두달이 채 못지나서 보니까 나 혼자만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썼다.
"니들끼리 잘해봐!"
그리고 거의 한달간 글을 안쓰고, 들어가보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화 풀어"라고. 놀랍게도 그 한달간, 친구들은 정말 많은 글을 올려 놓았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계속 삐질 수 있나 싶어서 다시금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달도 안되어 친구들은 다시 빠져나가고,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나였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아까 말했듯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별 말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도 긴 글을 쓰는 재주는 아무나 갖는 게 아니라고. 남이 쓰든 안쓰든, 힘이 닿는 데까지 이 사이트를 지킴으로써 내가 받은 은혜를 갚겠다고. 결심은 이럴지언정, 이 글을 보고나면 단 몇명이라도 이곳을 가꾸는 걸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한다. 너무 얍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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