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가 끝났다. 끝난지가 언젠데 이제와서 그러느냐고 하겠지만, 시상이란 건 원래 갑자기, 문득, suddenly 떠오르는 법, 오늘 아침 오지않는 기차를 기다리다보니 다모에 관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한 얘기겠지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도대체 어떤 글이 가능하겠는가. 혹시 모르는 일이다. 지루하더라도 참고 읽어주면 복 받을지.

<다모>는 방영 첫회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찌나 반응이 뜨거웠는지,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하지원이 자신의 홈피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감격에 겨운 인사말을 남겼을 정도. 이서진, 김민준 등 다모 출연진들은 하나같이 스타덤에 올랐ㄱ소, 시청자게시판에 오른 글의 수가 무려 2만개, 한때 게시판이 다운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어찌보면 평범한 무협극에 불과한 다모가 이렇게 인기를 끈 이유가 뭘까. <홍국영>의 실패에서 보듯, 어설픈 무협극은 이제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대가 됐고, <다모>의 액션 또한 그리 대단한 게 아닌데 말이다. 딴지일보 기자인 노바리님은 <다모>의 액션을 이렇게 혹평했다.

[나뭇잎 하나 디딤돌로 삼지 않아도
수평으로 붕 날아다니는 중력 예외의 법칙은 뭐며,
공중 부딪힘 씬에서 각도가 전혀 안 나옴에도
쿵 떨어지자 어깨에 칼 맞고 피 흘리는 건 또 뭐며,
<와호장룡>에서도 장즈이와 양자경의 무술 스타일은
명확히 대조된 바
황보윤과 장성백과 장채옥 사이에
전혀 차이 없는 무협 안무는 또 무엇이었는가 말이다....(9/21, 나도 한때 다모폐인이었소)]

과히 웃기지 않은 <조폭마누라>가 조폭영화 중 최초로 여자인 신은경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공전의 히트를 했듯, <다모>의 주인공이 여자, 그것도 걸출한 매력을 지닌 하지원이라는 게 드라마의 인기에 결정적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그 드라마의 배경은 조선시대. 요즘이야 성공한 직장여성들이 많지만, 그 시대는 그야말로 남성들의 시대였다. 여성은 능력이 있어도 사장시켜야 했고, 그저 남편 잘 모시고, 자식 잘 기르면 족했다. 행여 남편이 죽은 후 따라죽으면 열녀비를 세워주며 칭송했고, 현대의 대표적 마초 이문열은 <선택>이라는 책을 통해 조선시대를 본받으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니 조선시대에 기억할만한 여성이 없는 건 당연하다. 이상적 여인상으로 회자되는 신사임당은 사실 이율곡의 어머니라서 유명한 것일진대, 요즘 여성들이 "신사임당을 존경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안타깝다. 오죽 인물이 없으면 여성단체에서 "신사임당 대신 허난설헌을 기리자"는 운동을 하는가. 허난설헌이 훌륭한 누나라는 건 동의하지만, 그녀도 사실 시나 읊을 줄 알았지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게 없지 않은가. 그 시대 여자들 중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남자를 홀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켰던 장희빈 류다. 그런데, 그 조선시대에 다모라는 여형사가 있었다니. 쌀 한가마니를 우습게 들고, 막걸리 세사발을 숨도 안쉬고 원샷하며, 공중을 날아다니며 무술을 하는 여성이 있었다니, 여성들로서는 난데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일이다. 남성들의 상당수가 하지원을 보기 위해 그 드라마를 봤다면, 여성들은 바로 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다모>를 봤다.

소위 다모폐인 중 여성들이 많은 건 이해하겠는데, 왜 패기발랄한 20대가 아닌, 30대 여성이 주를 이룰까? 미국의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지적한 것처럼 20대 여성은 페미니즘의 불모지다. 20대 여성이 갖고 있는 싱그러움은 남성 욕망의 대상이자 마케팅의 타겟으로 칭송된다. 하지만 남성과의 경쟁에서 일상적 차별을 당하고, 성적 매력마저 시나브로 잃어가는 30대가 되면 그제서야 여성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페미니스트가 되어간다. 30대 여성들은 <다모>를 보면서 그들의 한을 발산하지 않았을까?

두터운 매니아층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다모>의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20대는 좀더 밝은 트렌디 드라마를, 여성이 설치는 게 못내 불편한 40, 50대는 또 다른 드라마에 채널을 고정시켰을테니, 열광적인 반응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건 당연해 보인다. 게시판에 글이 2만개 올랐다 하더라도, '일인당 100개씩 올렸으니 실제 매니아는 200명 뿐'이라는 어떤 '반다모이스트'의 지적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

아쉬웠던 점은 8회까지 "탄탄하게 짜인 스토리를 자랑하"던 이 드라마가 9회부터 점점 변질되었다는 것. 다시 노바리님의 기사를 인용한다.

[9회부터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대략
스토리의 난
플롯의 난
캐릭터의 난
을 겪으며
삼천포로 빠져나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늘어짐과 엇박자를 자랑하다가
사미, 즉 뱀꼬리는커녕
토룡미, 즉 지렁이꼬리가 되고 만
기막힌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8회까지 다모에 열광하던 다모폐인들은 할수없이, 분에 떨면서, 짜증을 내면서, 허탈한 맘으로 나머지 부분을 봤을거다. 한국축구의 고질병이 문전처리 미숙이듯, 우리나라 드라마들의 약점도 끝이 안좋다는 것인데, 이 점에서 <다모>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혹자는 내게 물을 거다. "근데 너 이 드라마 봤어? 봤냐고?" 안봤다. 내가 안봤으니 드라마 내용 얘기할 때 노바리님 기사를 인용했던 거 아닌가. 그리고 <앞집여자>를 보느라 <다모>에 눈울 돌릴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 혹자는 다시 물을 거다. "보지도 않고 어떻게 글을 써? 그게 말이 돼?" 난 이렇게 대답하련다. "넌 꼭 애를 낳아봐야 애 낳는 게 아픈지 아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