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7시부터 8시 반까지, 어머님은 컴퓨터를 배우신다.
처음에는 내게 컴퓨터를 배우려고 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을 가르쳐 줄만큼의 실력이 되지 못하는데다, 선생의 자질마저 없다. 자기가 아는 걸 남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난 유감스럽게도 그런 능력이 없다. 내가 공부를 제법 잘했던 고등학교 때도 내게 뭔가를 물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 내가 받은 질문이라야 "오늘 야구 선발투수 누구냐?" 따위가 전부다.

그래도 난 어머님께 몇가지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 드렸다. 사이트에 회원으로 등록하기, 메일 보내기, 한글을 열고 저장하는 법, 기차표 예약하는 법. 이걸 가르쳐 드리고 나니 더 가르칠 게 없었다. 그래서 난 어머님께 "하산하세요"라고 했지만, 어머님은 뭔가 더를 요구하셨다. "아니 배울 게 더 뭐가 있어요? 이제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마음껏 누비세요"
컴맹이면서도 인생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는 게 당연했다 (가끔 불편하다. 중간고사 본 거, 엑셀에 저장했는데 아직까지 평균을 못냈다 T.T)

어머니도 특정 사이트에 가입한 뒤 거기다 글을 쓰고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잡지나 신문을 볼 수도 있고, 인터넷으로 쇼핑도 할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람? 게다가 내가 가르쳐드린 몇 안되는 것마저 어머님은 까먹으셨다.
"민아, 메일 확인을 어떻게 하더라?"
내가 인내심이 워낙 없다보니, 다시 가르쳐드릴 때 짜증이 묻어났나보다.
툭하면 "왜 구박을 하고 그러지?"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은 결국 학원을 등록했다.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는 곳으로 한달 수강료는 겨우 2만원.
"나도 이제 너한테 가르쳐달라고 안할거야!"라고 날 놀리시는 어머님을 보니, 평소 좀 잘해드릴걸 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하지만.... 학원이라고 해서 어머님께 마냥 관대한 건 아니었다. 서른살에 미혼인 남자 강사는 60을 넘긴 어머님보다는 20대 여성들에게 더 관심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어머님은 컴퓨터에 기초가 너무 없었다. 강사와 어머니 모두, 수난시대에 접어들었다.

강사: 엑셀을 여세요
엄마: 인터넷에 들어가서 하는 거에요?
강사: 아이 참, 미치겠네


강사: 잠깐 비껴봐요. 제가 해드릴께요.
엄마: 제가 해봐야 늘지요.
강사: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엄마: 선생님, 여기 좀 봐주세요.
강사: 혼자만 그렇게 질문을 하니 진도를 못나가잖아요.
엄마: 오늘은 아직 한번도 안물어봤잖아요.
강사: 평소에 그렇다는 얘기에요!

나중에는 어머님이 SOS를 쳐도 아예 외면해 버렸단다. "엄마, 엄마가 그 중에서 나이 제일 많아?"
"50대가 한명 있고, 나머진 다 20대야. 근데 그 50대, 참 컴퓨터 잘하더라"
내가 다녔어도 구박받았을 환경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어머니가 멋져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강사가 안되어 보였다. 엄마가 한달 더 다닐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그가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래도 어머니가 딱 하나 잘하는 게 있다. 바로 워드실력. 아버님의 간병을 하실 때, 어머니는 틈나는대로 노트북을 펴놓고 병상일지를 쓰셨다. 양이 제법 되고, 지금 그걸 보면 눈물이 나지만, 그 덕에 어머니가 워드 하나는 잘 치신다. 1분에 200타 정도니 대단한 건 아니지만, 학원선생이 엄마가 워드치는 걸 보고는 "제법이네"라고 했단다.
새로운 걸 배우길 싫어하는 나에 비해, 어머님은 뭐든지 열심이시다. 내 또래 중에도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못쓰는 사람이 있지만, 어머님은 곧잘 내게 문자를 날리신다.
"민아, 오늘은 술먹지 말고 일찍와라"라고 보내서 탈이지만....

나에 대한 어머님의 헌신에 늘 감사드리지만, 가끔은 어머님의 삶이 너무 재미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젊었을 때 연애도 한번 못해보셨고, 세번 만나고 아버님과 결혼하신 뒤부턴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마음고생이 심하셨다. 우리 넷을 낳아 기르느라 아무것도 못하셨고, 우리가 다 컸을 때부턴 아버님이 편찮으셨다. 아버님이 입원해 계시는 몇년간, 어머님은 병원에서 안주무신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인 간병을 하셨다. 그래도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자식들은 이제 컸다고 말도 잘 안듣는다. 과거를 아무리 뒤져봐도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는 어머님을 보면서, 우리 세대부터는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헌신하기보다는 자신의 삶도 좀 즐길 줄 아는 그런 어머니가 되었으면 한다.
한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아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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