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척 매뉴얼 - 명작을 읽지 않은 이들을 위한
김용석 지음 / 홍익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대한민국에도 이미 수십년 전부터 마술적 사실주의를 극대화한 구비문학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좃도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백년의 고독>의 읽은 척 중)”

이 대목에서 난 소리를 내서 웃고 말았다.

한참 웃다가 주위를 보니 사람들이 날 보고 있기에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칸으로 옮겼다.

그러다 다음 대목을 만났다.

“조만간 전지현은 나와 결혼을 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으로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필자야 <시크릿>은 진짜 위대한 책이라고 인정하면 그만이지만,

전지현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미 한번 웃어서 그런지 봇물 터지듯 웃음이 나왔다.

난 지하철을 내려 의자 앉아 정신을 추슬렀다.


<읽은 척 매뉴얼>(이하 매뉴얼)은 이런 책이다.

코드만 좀 맞으면 읽는 내내 정신없이 웃을 수 있고,

코드가 맞지 않아도 세계 명작들의 엑기스를 건질 수 있는 그런 책.

누군가가 “고전이란 다들 읽은 것 같으면서도 정작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책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저자는 <매뉴얼>을 통해 우리가 귀가 따갑게 들어온 명작들의 핵심을 친절하게 짚어준다.

여기 나오는 책들 중 몇권을 읽은 바 있고,

그래서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모르겠어요”란 한심한 리뷰를 쓰기도 했는데,

<매뉴얼>을 읽고 나니 머리가 확 뚫리는 기분이다.

워낙 정리를 잘해 주는지라 정말이지 <매뉴얼>만 읽으면

어디 가서 읽은 척을 해도 탄로나지 않을 것 같다.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이 책이 빛나는 대목은 저자의 탁월한 비유였다.

책 곳곳에 다이아몬드처럼 박혀 있는 이 비유들을 읽으며

인간의 비유력에는 한계가 없는 게 아닌가,는 탄식을 하게 됐다.

<백년의 고독>이 “문어발적 플롯이 얽혀 있”다는 걸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는 동안 토끼가 낮잠을 자자

거북이가 몰래 토끼 간을 꺼내 용왕님께 가져갔다더라 식“이라 표현하는 저자를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올해 5월에 나온 책인데 이제 2쇄에 머물고 있다는 건

저자가 몸담고 있는 딴지일보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이란 모름지기 진지해야 한다는 교조적 생각을 많이들 하는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감히 말씀드리건데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여느 진지한 책들보다 훨씬 더 크다.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난 2009년이지만, 

올해의 마지막 날 잠자리에 들 때 

이 책을 읽은 게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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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2009-10-10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재밌네요. ~척이라니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