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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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1세기를...'로 시작하는 한겨레 특강 시리즈의 팬이다. 직접 가서 듣진 못하지만, 책이 나오면 꼬박꼬박 사보는 편이다. 강사진이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고, 거기 걸맞게 강의도 재미있으니까. 근데 <배신>을 주제로 한 이번 책은 평소보다 더 흥미로웠다. 3회 연속 사회를 본 오지혜의 풍부한 교양과 언변에 매번 놀라게 되고, 정태인의 강의는 FTA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섭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다른 강사들도 다 배신에 대해 각자의 전공을 살린 좋은 얘기들을 해줬지만, 특히 감탄한 건 정혜신의 강의였다.


"우리가 흔히 '배신당했다'고 말하는 경험 중에는 사실 유사배신이 많아요."

유사배신이 뭘까? 정혜신에 의하면 "내 욕망이나 기대를 상대에게 투사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라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들이 판검사가 될 것으로 믿었는데 막상 연극영화과를 지원하자 "아들이 나를 배신했다"고 말하는 엄마가 그 한 예다. "배신은 상호합의한 약속을 깼을 때 발생하는 것"일진대, 이 경우에 상호합의가 있기나 했을까? 배신을 당한 사람은 많은데 정작 배신을 한 사람이 드문 이유는, 다들 이런 유사배신을 '배신'의 범주에 넣고 '뒤통수를 맞았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란다. 배신당한 사람이 더 많은 또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에게 관대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교통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과 5대 5의 쌍방과실인 경우 사람은 보통 상대에게 7의 과실이 있고, 내게는 3 정도의 과실이 있다고 느낀단다. 객관적으로 8대 2로 내가 확실하게 과실이 있는 사고를 냈을 때에는 5대 5 정도의 쌍방과실로 상황을 인식하게 마련이다. 왜 그럴까? "내 행동은 동기부터 이해하고, 타인의 행동은 현상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나의 배신은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거니 배신이 아니고, 상대는 동기가 어떻든 배신이라는 거다. 이걸 읽고 나니 배신에 대한 모든 것을 다 깨달은 기분이다.


또 하나 느낀 점. 강의에 참가한 청중들의 질문 수준이 참 높다는 거다. 예컨대 이런 질문.

"유사배신임에도 불구하고 배신감에 고통당하고 있다면 이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성찰력의 문제가 아닐까요?"

난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질문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꼭 질문을 해야 하냐고 하겠지만, 학회에 가서 하루 종일 질문을 한 개도 안하고 있으면 좀 없어 보인다. 내 지도교수도 나한테 "질문 좀 해!"라고 하는데, 정말 질문을 할 게 없다. 내가 모르는 내용이면 몰라서 못하고, 아는 거면 아는 거니까 질문할 게 없다. 근데 남들은 어쩜 그렇게 날카로운 질문들을 해대는지, 부러워 죽겠다. 오죽하면 발표자에게 미리 찾아가 "질문거리 좀 주세요"라는 말까지 했을까? 여기 실린 청중들의 질문을 보고 나니 이 사람들은 어쩜 저리도 적절한 질문을 하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다음 한겨레 특강 제목은 '좋은 질문하는 방법'이면 정말 좋겠다. 나도 학회 때나 회의 때, 질문 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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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8-11-0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질문할 게 없을 만큼 다 아시는건가요?
이주의 마이리뷰 후보에 오르셨던데, 되시면 한턱 쏘세요.

그나저나 김현수는 어쩐대요.

2008-11-09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11-1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어머머 제 답변이 넘 늦었죠? 죄송해요. 저도 늘 이번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공연 같은 거 보구 그래요. 홀몸이 아니니 영화 한편 보는 것도 참 어렵더이다. 참 이번주에 저 웃음의 대학이란 연극 봅니다. 황정민 나오는 연극이랍니다. 글구 연재는 저얼대 안할 겁니다. 왜냐면... 그 기간 동안 심적으로 넘 힘들었거든요!! 죄송.
파비님/추천 하나만 있음 후보가 되는거라, 당첨은 힘들것 같군요^^ 그리 잘 쓴 리뷰도 아니니깐요. 글구 김현수는 내년에도 계속 잘하겠죠 이런 시련에 굴복할 선수가 아니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