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까지 올리면 제가 뭐하는 놈인지 다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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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인터넷에 쓴 고백수기의 일부다.
[초등학교 때 기생충에 걸렸었다....똑똑 끊어져 대변에 섞여 나오기도 하고 수업 중에도 항문을 간지럽히며 나오기도 하였다. 회충약 아무리 먹어도 소용없었다. 어느날 아버지의 강요로 석유를 반컵정도 먹었다. 속이 뒤틀려 죽는줄 알았고 몇분 후에 엄청난 설사가 나오면서 그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항문에 걸려있는 그놈을 보고 질려버렸다. 몇미터가 넘는놈이 나왔는데도 아직 또 남았다니...정신을 차린 후 휴지를 대고 한참을 잡아뺐다. 기분나쁜 느낌을 억누르며 몇미터를 더 빼낸 후에 그놈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 기생충은 광절열두조충이라는 기생충으로, 몇미터에 달할 정도로 길다란 몸을 가지고 있는데, 매일같이 끝조각을 외계로 내보냄으로써 자손을 전파시킨다. 이것은 조충(촌충)에 속하므로 회충약을 백날 먹어야 소용이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아버지가 그 조각을 들고 병원이나 인근 대학의 기생충학교실을 찾았다면 약 한알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그의 아들은 석유를 마셔야 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마음이 아프다.

이 아버지가 병원을 찾지 않은 이유는 뭘까? 회충약을 먹인 것으로 보아 기생충은 약에 잘 듣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맞다. 기생충은 대부분 약에 잘 듣는다. 하지만 아무리 먹여도 낫지 않는다면, 석유를 먹이는 대신 병원에 데리고 왔어야 하는 게 아닐까? 모르긴 해도 아버지는 기생충을 부끄러운 병으로 생각했을 테고, 병원에 가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했을게다. 이 아버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을 자신과의 싸움으로 생각한다. 이 기생충에 걸린 또다른 사람은 "좋다! 한번 싸워보자!"며 석달 동안 별 짓을 다 했단다. 온갖 요법을 다 썼지만 기생충은 몸 안에 그대로 있었는데, 그는 결국 내가 준 프라지콴텔 한알을 먹고서 벌레를 퇴치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이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부끄럽고 해서.. 제가 이것 때문에 그동안 잠을 못잤어요"
이해한다. 길다란 벌레가 몸 안에 있는데 잠이 오겠는가. 문제는 왜 그런 걸 혼자 끙끙대며 고민하는가다. 그건 아마도 기생충이 더러운 것이며, 못사는 사람의 질병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일선 학교에서 채변검사를 의무적으로 했던 어린 시절, 기생충에 걸린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영화 <클래식>에서도 누군가가 산속에 싸놓은 대변을 제출한 주인공이 온갖 기생충에 다 걸렸다며 담임으로부터 놀림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경험들이 머리 속에 각인되어 기생충에 걸리는 걸 죄악시해온 게 아닐까? 감기에 걸린 게 부끄러운 게 아니듯, 기생충에 감염된 자체가 지탄받아야 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생충이 성병보다 더 말하기 곤란한 질병이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기생충이 못사는 사람들의 질병이라는 건 이미 옛날 일이고, 지금 유행하는 기생충들은 생선회나 육회같이 비싼 음식들을 통해 전파된다. 그러니 기생충에 걸렸다는 건 자신이 인텔리임을 입증하는 증거일 터, 부끄러워하지 말고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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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12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에 대한 올바른 대처방법인 것 같은데, 제시된 예는...아찔하구만요...ㅎㅎ

가을산 2004-02-1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TV 프로에서 돼지의 X을 받아 다가, 그것도 친구 몇이 '의리'를 팔며 나누어달라고 해서 나누어 냈다가 '콜레라'에 걸렸다며 격리되어서 혼났다는 독자 체험이 연상되는군요. ^^


마태우스 2004-02-13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석유라니 좀 엽기적이죠?
가을산님/그런 일도 있었나요?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