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후배가 기독교에 귀의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착하며, 평소에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그가 왜 갑자기 하느님을 믿기로 한걸까? 그는 "제가 미처 모르고 저지르는 죄를 깨닫게 해줄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하지만, 글쎄다. 그가 죄 축에도 못끼는 쥐꼬리만한 죄를 고해하는 동안, 남들은 굵직굵직한 범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별로 죄가 없는 그가 자기 가슴을 치면서 "내탓이요"를 읊조리는 동안, 밖에서는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뻔뻔스럽게 "니탓이야!"를 외친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악한 사람은 악한대로, 착한 사람은 착한대로. 


 교회는 언제나 내탓을 강조한다. "내탓이요, 내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우리가 IMF를 맞은 것도, 조국이 분단된 것도 모두 내탓이다. 그건 또한 하느님의 뜻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내려주는 시련. 그 말이 맞다면 하느님은 새디스트실까? 그렇지 않다면 수백만이 죽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드실 리가 없지 않는가? 광주에서 수천명을 학살한 전두환의 등장도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느님의 뜻"이다. 그래서였을까. 5공 시절 많은 교인들이 전두환을 위해서 "조찬기도회"를 열었던 이유가. 
 
어머님이 아는 분 중 교회에 전재산을 바치고 천막 비슷한 곳에서 사는 사람이 있었다. 태풍이 불던 어느날, 천막을 고정하려고 놓아둔 돌이 태풍에 날라가 아들의 가슴에 명중했다. 어린 아들은 결국 죽었지만, 그분은 "내가 죄가 많아서 아들이 죽었다"고, 그리고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면서 더 열심히 하느님을 섬기겠단다. 물론 그분이 나같은 사람은 따를 수 없는 깊은 믿음을 지닌 건 틀림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하자. 아들이 죽은 건 그분이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태풍 때문에 돌이 날라가서고, 더 근본적인 원인은 집을 팔아서 교회에 갖다바친 때문이다. 죄가 많아서 아들이 죽는다면, 전두환의 아들이 경영하는 시공사가 그렇게 잘나갈 수 있을까?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섬긴 욥의 얘기는 분명 아름답지만, 그건 "착한 사람은 살아생전 고생만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더더욱 굳히는 역할을 할 뿐이다.  

 
성경에선 이렇게 말한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재산이 있으면 다 교회에 바치고,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점점 부유해지고, 돈없는 신자는 교회에서 무시를 당한다. 신도수 세계 1위인 순복음 교회는 넘치는 돈을 주체못해 스포츠 투데이를 만들었고, 송파에 있는 모 교회-엠마뉴엘 교회던가?- 는 은빛 찬란한 궁전을 지어놓고는 교회라고 우긴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건대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의 편인 건 확실하지만, 아무래도 하느님은 너무 바쁘신 것같다. 그래, 아마 그럴 것이다. 관장하시는 별이 너무 많아 우리 지구를 돌볼 여력이 없으시겠지.


노아의 방주를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관심은 다른 별에 가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의 나라를 참칭하는 미국이 악행을 저지르는 걸 그냥 놔둘 리가 없고, 나쁜 짓을  할수록 더 잘사는 걸 묵인하시지는 않으리라.  모든 걸 내탓, 그리고 하느님의 뜻으로 돌리는 한, 사회의 진보는 없다. 내탓만을 주장하는 속세의 종교들은 이제껏 민중의 아픔은 외면한 채 체제 유지에 기여해 왔다. 하느님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신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유감스럽게도 하느님은 너무 바쁘시다. 그러니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상당수가 하느님의 원래 의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 맹목적으로 "주님의 뜻"만을 외치기보다는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데 기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러다 번개라도 맞는 건 아닌지, 약간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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