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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존경하는 어떤 분-딴지일보 기자이기도 한-이 쓰신 글입니다. 원래 제목은 '전여옥 미친x'인데, 알라딘 분들이 놀라실까봐 그렇게 안합니다. 전 전여옥이 싫습니다. <일본은 없다> 이후 그가 쓴 책은 하나도 안읽었지만, 조선일보에 이따금씩 쓰는 엽기적인 글들을 통해 그가 십년 전과 달라진 게 없구나, 하는 걸 느끼곤 합니다. 5공 때는 뭘 했는지, 세상이 좋아지니 민주투사가 된 것처럼 날뛰는 것도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의라는 게 꼭 이기는 게 아닌지라, 아니 지는 법이 훨씬 많은지라, 전여옥은 자알----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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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전여옥이 쓴 글입니다.
도무지 상식이 안 통하는 '발리에서 생긴 일' 가난은 웃음거리, 부자는 정신파탄자로 묘사
[조선일보] 인기를 끄는 드라마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이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데도 까닭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요즘 말로 ‘트랜디’하기 때문이고 ‘TV적’이기 때문이다.
TV드라마는 연극이나 영화와 다른 특징이 있다. ‘작은 상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연극처럼 카리스마적인 울림이 큰 연기보다 눈썹을 누가 더 파르르 잘 떠는냐 하는 ‘소품형 연기’가 더 가치가 있다. 영화처럼 커다란 화면으로 관객을 향해 도전하는 매체가 아닌 만큼 ‘자그만한 화면’에서 앙증맞고 귀여운 연기자들이 환영을 받게 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을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연기자들은 만족시킨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연기자들의 연기를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TV라는 편의점에서 얼마나 손쉽게 가볍게 소비될 수 있는 캐릭터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처음 1, 2편에서 맛배기로 보여준 ‘발리의 풍광’을 제외하곤 발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 드라마는 4명의 젊은 남녀가 얽히고설키는 사랑 이야기다.
우선 주인공 ‘뻔뻔스러운 캔디’ 하지원의 행동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호텔방에서 재벌2세인 조인성이 ‘자고 갈래?’라는 한마디에 ‘얼마 줄건대?’라고 담박에 대답하는 여성이 땀에 절은 빵을 먹어가며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는 꿋꿋한 여행사 직원이라는 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평생 가도 철이 들지 않는 젊은 어머니의 아들로 나오는 소지섭 역시 어머니의 야비한 정부를 두드려 패는 일 빼놓고는 그가 벌이는 온갖 행동과 그럴듯한 침묵의 몸짓에 ‘왜?’가 결여돼 있다.
이들 가난한 커플을 비집고 들어간 재벌딸 박예진도 마찬가지이다. 박예진은 장래 시어머니인 김수미의 표현대로 ‘안개 같은 아이’이다. 이 여성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본인은 물론 그 어머니도 알지 못한다. 그나마 천방지축 자체를 기본 캐릭터로 한 조인성만이 ‘원래 종잡을 수 없는 종자’라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진으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몇 가지 있다. 시청자들이 비록 먹고 싶지 않는 과자라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손이 가게 만들기도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 스스로 완벽하게 그림 퍼즐을 완성할 수 있어야 하는 점이다. 그러나 ‘발리에서 생긴 일’은 아무리 맞춰봐도 작품을 완성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상식적인 시청자의 눈으로는 발리에서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고 주인공은 물론 조연급들까지 그들이 왜 화내고 왜 신나고 왜 눈물을 흘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한 가난한 이의 가난을 웃음거리나 수치로 삼아버리고 부자들의 실태를 정신파탄자의 행동과 비슷하게 묘사하는 것도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다.
진지한 고민을 하며 상식적인 행동을 하며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TV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금도 아니면서 번쩍거리기만 하는 트렌디 드라마의 허상이 넘치는 TV 속에서 예쁘지 않아도, 재벌아들이 아니어도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 빛나는 진짜 트렌디 드라마가 아쉽다.
(전여옥 /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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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전여옥이 쓴 글이다.
이 년 정말 돌아도 한참 돌았다.
하지원이 "뻔뻔스러운 캔디"라니
발리에서 생긴일이 "가난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니
정말 기가막혀서 조목 조목 말도 안 나온다.
아무 생각없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히히덕 거리기만 하는 드라마를 만들라는 것인가?
"발리.."에는 이전 드라마들이 갖고 있지 않았던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비애"가 드러나 있다.
천방 지축 조인성에게는 "존재에 대한 고뇌"가 있고,
사는게 너무 고달프고 힘든 하지원은 "그 존재에 대한 고뇌"자체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비애"에 비하면 얼마나 가벼운가를 조인성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조인성은 "누리고 싶은 것은 모두 누리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해 고달픈" 박예진보다, 하지원이 좋은 것이다.
"더러운 세상에 말한번 못해보고, 제도권 속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노동자"인 소지섭은 화려하지만 실체가 없는 박예진 보다, 하지원에게 끌리는 것이고, 또한 그런 박예진에게 연민을 느끼기 까지 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게 비애스러워서 정말 무슨 일이라도 열심히 하며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하지원은, 가슴 속 깊이 까지 들어와 있는 소지섭도 좋지만, 사심없이 잘해주는, 생활의 고단에서 오는 시큼털털한 냄새가 나지 않는 조인성의 손길도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간의 어떤 드라마보다,
정말 캐릭터 설정이 잘 되어 있고, 같잖은 3각관계가 아니라, 삶의 여러가지 단면들이 섞여져 있는 4각관계라는 점에서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
젊다고 상식적인 생각(대체, 먹고 살자는 거, 살아 남자는 거 말고 상식적인게 무엇이란 말인가?)만 하며, 히히덕거리며 살거라고 생각하는 전여옥.
나이를 똥꾸멍으로 쳐먹은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