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 가기 전까지 난 음악과 담을 쌓고 살았다. 그때까지 난 고교야구, 그리고 뒤를 이어 발족한 프로야구에 흠뻑 빠져 살았는데, 주요 선수의 타율과 방어율은 줄줄 외울 정도였다. 음악을 싫어한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난 음치였다. 목소리도 좋지 않고, 고음처리는 더더욱 엉망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6학년 때 음악시험을 볼 때 딱 한소절을 불렀더니 담임이 중지를 시킨 뒤 양을 줬던 사건이었다. 양이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다른 때도 늘 미를 받았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놀랄 건 아니다.
그런 내가 대중가요에 심취하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말, 은근히 좋아하던 써클 여자애한테 노래를 옴니버스로 녹음한 테이프를 선물받은 이후였다. 뭔가 한번 빠지면 정신을 못차리는 나는 그 후부터 닥치는대로 LP판을 샀고, 엄마를 졸라 기타를 사가지고 밤마다 노래를 불렀다. 그 결과 나는 웬만한 노래의 가사는 거의 다 외울 수 있게 되었고, 엠티 같은 곳을 가면 제법 인기가 좋았다. 음치라는 단점을 노래를 많이 아는 걸로 극복한 셈이다.
그러다 노래방이 나왔다. 이제 가사를 외우는 건 전혀 쓸모가 없어졌고, 풍부한 성량과 율동, 그리고 누가 신곡을 더 많이 부를 수 있는가가 새로운 척도가 되었다.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에 난 불법복제 테이프를 열심히 들어가며 노래를 연습했고, 노래방에 갈 때는 최신곡을 불렀다. 베이비복스의 '머리하는 날'을 불렀을 때, 교실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는 여자애는 "감동을 받았다"며 내 앞에서 울먹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음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던 건 아니어서, 내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대개 딴전을 피워댔다. 춤이라도 잘 췄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건만, 나이트 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던 나로서는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춤이 없었다.
그 결과 노래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점점 시들해졌다. 신곡은 쏟아져 나오는데, 난 <화장을 고치고>가 고작이었다. 이러면 안되지, 하며 잠시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얼마 못가서 시들해지곤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조차 싫어져 버렸다. 부를 노래도 없는데 거길 왜간담? 하지만 내 윗사람은 술만 마셨다면 노래방을 가며, 자기가 노래를 부를 때는 모든 사람이 나와 백댄서를 하기를 강요한다. 이 나이에 백댄서라니, 팔다리를 휘젓고 있으면 가끔씩 비애가 몰려왔다. 힘이 뭔지... 엊그제도 그랬다. 1차로 고기를 먹고 2차를 어디갈까 정하라고 하는데, 보드게임을 원하는 대다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XXX 갈까, 아니면 XXXX 갈까?"
고를 것도 없었다. 둘다 노래방이었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후자를 고른 건 값이 더 싸서였다. 윗사람이 노래할 땐 백댄서 노릇을 한 걸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 동안 난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번호책을 보고 노래를 고르는 척하면서 결국 한곡도 부르지 않는데 성공했다. 나도 부르기 싫고, 다른 사람도 내 노래를 듣길 원하지 않으면서 번호책을 들이미는 행태는 술을 못마시는 사람에게 소주를 강권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노래방이 싫다! 이젠 백댄서도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