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불망 기다리던 '대면강의'가 무산됐다.
5월 4일,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민감한 시기에
학교 측이 ‘이번 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외부강의도 없고 해서 집에만 있는데, 앞으로 이런 생활이 더 지속될 것 같다.
개들과 같이 있는 건 좋지만,
일의 진척이 평소보다 훨씬 느리고, 심지어 책도 잘 안 읽힌다.
게다가 아내가 밥을 차려줄 때마다 '삼식이'라고 투덜대기까지 한다!
이런 혼돈의 와중에 읽은 책이 바로 <공룡사냥꾼>,
집중력이 저하된 이때 470쪽이 넘는 이 책을 완독했다는 게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말해준다.
이 책의 sub 주인공인 티라노사우르스 바타르.
이 책은 ‘에릭’이라는 화석사냥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1억년 전 동물들의 뼈가 심심치 않게 출토되는 플로리다에 산 덕에
어릴 적부터 화석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던 에릭은
결국 전문 화석사냥꾼이 돼서 티라노사우르스의 가장 유명한 뼈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린다.
문제는 그가 그 뼈를 찾은 곳이 몽골의 고비사막이고,
그가 몽골의 허락 없이 그 뼈를 밀반출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그냥 놔두면 발견이 안됐거나 훼손됐지도 모를 유물을
단지 밀반출했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하는 게 옳은지.
과거 재미있게 봤던 <인디아나 존스>도 사실 에릭과 비슷한 사람이 아닌가?
수도 없이 많은 미라를 약제로 만들어 먹거나 외국에 팔아치운 이집트의 예에서 보듯,
유물을 잘 관리하는 곳에서 보관하는 게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나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안하는 건 문제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공룡 사냥꾼>에서는 에릭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저자는 정말 존경스러울만큼 치밀한 조사를 통해 에릭의 일생을 조명하고,
화석사냥의 역사에 대해 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과거 화석사냥꾼은 물론이고 몽골의 발굴자들까지 그 이력을 소개하는 통에
등장인물이 무지하게 많지만,
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와중에 독자는 에릭이 옳은지 그른지,
절대적인 정의라는 게 과연 있는지에 관해 판단을 내리게 된다.
2만2천원이라는 책값이 오히려 싸게 느껴질만큼 재미와 유익성을 보장하는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책을 읽었으니, 재택근무한 보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구나.”
* 책을 읽고 나니 기생충이 뼈가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진다. 그것만 있었다면 기생충뼈를 찾으러 다녔을 텐데.
몽골에서 발견된 싸우다 바위에 깔려죽은 공룡. 오른쪽이 그 유명한 벨로시랩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