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님의 글을 봤을 때, 한편으로는 공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분노의 대상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의 의도는 '성적 유혹을 미끼로 승진한 여성들'이지만, 다르게 보면 '권력을 남용해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파렴치한 남성'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쁜 여자가 곁에 있으면 한번 어찌어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는 있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잘 수도 있다. 정도가 심해져 '가끔씩 만나 자는 사이'가 되는 것도 이따금씩 있는 일이다.

그런데, 거기서 뭔가 댓가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능력도 안되는 이를 승진시키고, 리포터로 고용하고, 연봉을 더 준다면, 그 남성은 전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며,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이쁜 여성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남성을 이용해 출세하고자 하는 여자가 작은 악이라면, 그 남성이야말로 '악의 축'이다. 그런데 왜 글쓴이의 분노는 악의 축이 아닌, 작은 악에게로 향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은 저 멀리 있고, 몸을 이용해 출세한 여성은 자기 주위에서 얼쩡거리니까.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세간의 통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 남지 않은 파이를 놓고 다투는 여성들의 처지에서는 커다란 파이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남성보다 자기보다 조금 큰 파이 부스러기를 소유한 여성을 원망하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건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받아온 세뇌교육 탓일 수도 있다. 남성과는 어차피 경쟁이 안되는 존재지만, 다른 여자가 나보다 높이 되는 것은 참지 못하도록 길들여진 것이 아닐런지.

얄미워 보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몸을 미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한 여성들 역시 남성이 만들어놓은 사회의 희생자에 불과하다. 글쓴이의 분노는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향해야 하며, 일견 얄미워 보이는 그 여자는 적이 아니라 연대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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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1-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예요. 사회적인 구조와 제도지요. 마태우스님의 의견에 적극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