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연구면에서의 업적은 우리 나라 학자들 중 최정상을 달리는 분으로, 누굴 만나든지 학문적인 얘기만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억지로 끌려간 룸사롱에서 여종업원에게 "당신, 로마의 역사를 아슈?"라면서 시이저가 어떻고 네로가 어떤지를 설파하시는 걸 보고 다들 질려버렸다고 한다.

그날 그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학문적 의문점들을 선생님께서는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해 주셨는데, 내가 납득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수많은 파편이 튀었다는 게 문제였다. 선생님의 앞에 놓인 불고기 접시에 특히나 많은 파편이 튀는 걸 보고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는데, 식사를 반쯤 했을 때 그 선생님은 내게 이러신다.
"불고기좀 먹지 왜 손도 안대?" "아, 네" 하고 얼머부리려고 했지만, 자상하신 그 선생님은 불고기 접시를 들더니 내 밥에다 전부 넣어 주셨다. 눈 딱 감고 다 먹긴 했지만, 다음부터 그 선생님과 밥을 먹을 땐 맛있는 건 내 앞으로 미리 갖다놔야겠다.

두번째 사례. 공항터미널에서 아는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주례가 내가 모시고 있는 노교수님이었다. 그래도 제자인데... 하는 생각에 좀 어렵지만 선생님을 모시고 스테이크를 먹었다. 같은 테이블에 마침 또다른 선생님 제자가 앉았기에, 노교수님은 주로 그쪽을 보고 많은 말씀을 하셨다. 파편은 식사 중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의 부산물일까. 간간이 나오는 무수한 파편을 애써 외면하며 식사를 하는데, 선생님이 좀 흥분하셨는지 언성이 높아지더만 커다란 양상치 조각이 튀어나오는 거다... 공항터미널 식사는 내가 가장 맛있게 생각하는 거지만, 이레적으로 그날 난 스테이크를 몇조각 남겼다.

역시 말이 많은 나도 그런 파편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난 안그러려고 무지하게 노력을 하고, 혹시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정말 미안해 한다. 양상치 덩어리를 뱉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말씀을 계속하시는 우리 선생님을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에 무감각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역시 나이드는 건 슬픈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