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펜

NBA 경기를 보다보니 관중들이 "디펜!"을 외치는 걸 보았다. 그 경기가 마침 시카코 불스의 경기였기에, 그 팀의 스몰 포워드인 스카티 피펜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으로 알았다. 물론 이런 생각은 들었다. '왜 팀의 간판인 마이클 조던의 이름은 부르지 않을까?' 나중에 알고보니-스스로 깨우친 건 아니고, 미국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다-관중들이 외친 건 '디-펜(스)', 즉 수비를 하라는 거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에서도 홈팀의 수비 때 어김없이 "디-펜!"이라는 구호가 관중석에서 나온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좀 씁쓸하다. 리바운드나 앨리웁 덩크 등의 전문용어를 쓰는 거야 어쩔 수 없다쳐도, 응원구호마저 미국 껄 그대로 따라하는 걸까? 미국인들이 쓰는 말이니 무조건 멋있어 보이는 걸까? 자신의 나라에서 말해지는 응원구호를 한국에서 들었을 때, 미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2. 박한 시리즈

미국을 일방적으로 따라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긴 했지만, 미국 스포츠방송의 상업주의 정신은 배울 만하다. 포수가 얼굴에 쓰는 프로텍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덕아웃에서 감독의 표정과 하는 한마디 한마디까지 TV에서 방영하는 걸 보면서 혀를 내두른 적이 있는데, 그 영향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감독이나 선수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중의 하나가 농구의 작전타임 장면을 리얼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다보니 가끔 웃기는 일도 생긴다. 몇년 전, 엘지의 매덕스란 선수가 자꾸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자 김태환 감독이 작전타임을 불렀다. 가드인 조우현에게 하는 말, "야, 재 (공) 주지마!" 외국인 선수인 매덕스가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  
 
박한이 고대 감독을 하던 시절, 고대는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따져보면 연대보다도 나은 수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는 연대에게 번번히 깨졌다. 그게 바로 박한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 작전타임 도중 박한이 하는 말은 대개 이런 식이다. "'야 수비 좀 잘하란 말이야. 타이트하게...좀 잘할 수 없니..." 아니 누군 잘하기 싫어서 그러는가? 그의 언행을 모은 게 바로 '박한 시리즈'다.

사례 1. 작전타임을 부른 박한 감독, 열이 받은 얼굴로 선수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두가지가 안되고 있어. 공격하고 수비야!"

사례 2. 작전지시용 종이를 꺼낸 박한 감독, 한쪽에다 동그라미를 크게 그린다. "이게 골대야" 다른 쪽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이건 공이야" 공에서 골대로 화살표를 그린다. "넣어, 응?"

사례 3. 한양대와의 경기도중 고대는 막판에 3점차로 뒤졌다. 노련한 전희철은 딱 1초를 남기고 3점슛을 시도했고, 거기 속은 수비수의 파울로 자유투 3개를 얻게 되었다. 다 넣으면 연장전에 돌입하는 순간, 박한이 작전타임을 불렀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봤더니 놀랍게도 박한은 이렇게 말한다. "희철아! 세개 다 넣어!"

사례 4. 경기에서 크게 뒤지자 열이 받은 박한 감독, 작전타임을 불러 김병철을 야단친다.
"병철아, 너 전담수비가 누구야?" 김병철, 아무 말이 없다. 더더욱 다그치는 박감독,  "아니 네 수비도 모른단 말야?" 그러자 옆에 있던 전희철의 대답, "감독님, 저희 지금 지역방어인데요?" 

고대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박한이 고대 감독에서 물러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그늘이 워낙 커서인지, 고대는 아직까지도 정상권 밖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하기사, 프로농구가 생겨 대학농구가 많이 위축되기도 했으니, 이상민, 우지원, 현주엽과 김병철이 활약하던 시절만큼 인기를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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