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로 옮겨가는 과도기였던 1987년,
세 명의 후보가 대선에서 맞붙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에 김종필이 붙은 선거였는데,
김종필은 그 세가 약해서 사실상 3명의 각축전이었다.
후보들은 군중 동원을 통한 세 과시에 주력했기에,
유세장소는 언제나 여의도광장이었다.
후보는 물론 지지자들도 자기네 후보 유세 때 군중이 가장 많이 모였다고 자평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민주주의는 1인1표고, 유세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데
절대적 지지자 혹은 동원된 군중이 많다고 투표에 이기는 것도 아니잖은가?
하지만 당시엔 TV토론도 없었고, 여론조사도 지금처럼 활발히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기에,
후보들이 믿고 의지할 건 오직 군중 동원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민주진영 후보 둘은 까맣게 모인 군중을 보고 상황을 오판했고,
모처럼 찾아온 정권교체의 기회를 허공에 날린다.
32년 전 일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은,
그때랑 똑같은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저쪽이 200만명이 왔다고 기세를 올렸고,
이에 감격한 청와대는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여망’이라며 그 모임을 추켜세운다.
그러자 이쪽에선 조금 더 넓은 광화문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세 대결을 펼쳤다.
자, 이제 공은 다시 저쪽으로 넘어갔는데, 아마도 더 많은 인파가 나오도록 애를 쓸 것 같다.
아직 무덥긴 하지만 가을은 가을이고,
날씨는 아주 좋았다.
이 좋은 날, 길거리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여론조사가 뻔질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누가 더 많이 나오는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들의 정체야 원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믿었던 이들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이들임을 알게 된 게 이번 사태의 수확인 듯 싶다.
그간 투표에 한 번도 불참한 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투표를 하지 말아야겠다, 라고 결심해 본다.
모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려무나.
난 야구나 보련다.
참고로 내가 응원하는 두산이 정규리그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