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당신이 남긴 증오>는 미국의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다.


‘흑인’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게 올바르다고 하지만,

편의상 여기선 흑인-백인이라 표기한다.

십대 남자애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경찰로부터 총을 맞고 죽는다.

조수석에 앉아 그 광경을 목격한 주인공이 증언을 하지만,

그 경찰을 처벌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소재가 소재다보니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앵무새>가 좋았던 건 주변 환경에 대한 묘사가 워낙 뛰어난데다

이게 옳다, 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어린 딸과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독자에게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느끼게 해준다는 데 있었다.

반면 이 책의 초반부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지루했다.


짝퉁은 원본을 이길 수 없구나, 라고 느낄 때쯤
이야기에 갑자기 탄력이 붙어 진도가 빨라지는데,
이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유지된다.

이 책이 갖는 힘의 상당부분은 인종차별이라는 소재에서 나온다.
하지만 실제사건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리얼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가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 책이 내게 그렇게까지 큰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현재라는 점이다.
<앵무새>는 대공황이 끝나고 난 1930년대를 다룬다.
그때는 인종차별이 당연했고, 흑인은 그냥 2등시민이었다.
반면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인종차별이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흑인을 차별하며,
흑인으로 성공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가난한 곳에서 태어나 교육받을 기회도 없다보니
마약을 팔라는 유혹에 굴복하게 되고,
그러다 걸려 전과자가 된다.
감옥에서 나오면 갈 곳이 없으니 폭력조직에 몸담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노골적인 차별과 은근한 차별 중 어느 것이 힘드냐고 묻고 있는데,
내가 이 책을 <앵무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고평가하는 건 이 때문이다.
 
각종 갑질이 횡행하는 우리나라가 여러 인종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어땠을까?
명목상이긴 해도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인 게 다행이다 싶지만,
그런 와중에 지역과 성별을 따져가며 차별을 일삼는 걸 보면
차별이라는 게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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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26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퉁은 원본을 이길 수 없구나.ㅋㅋ
이런 책이 있었군요.
요즘에도 미국의 인종차별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면
영원히 없어지지는 않겠구나 싶기도 해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단일 민족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가지 않을까 싶어요. 이게 인종차별을 더 부추기게 될지
오히려 희석시키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후자쪽이 되긴 어렵겠죠?

마태우스 2019-01-2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미국보다 차별을 더 많이 하는 나라잖아요. 차별총량의 법칙은 울나라엔 안맞는 듯요. 다문화가정 차별을 한다고 해서 기존 차별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어디서 봤는데 한 아이에게 ‘기생수‘라고 부른데요. 기초생활수급자의 준말이라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