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 정의에 이르는 길 ㅣ EBS 오늘 읽는 클래식
김주일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를 박종현 번역의 『국가, 정체』라는 책으로 읽었다.

물경 667쪽에 달하는 장편이다.

(아,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국가, 정체』가 2005년에 개정판이 나온 것을 발견했다. 개정판은 무려 738쪽이다.)

 

그 책을 읽긴 했지만, 머릿속에 정리가 제대로 된 것은 아니다. 해서 매번 『국가』 관련 책이 나오면 붙잡고 정리를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니 노력만 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해서 정리를 해보았다.

 

『국가』 이후에는 이제 정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의 부제 중 하나는 ‘정의에 대하여’이다. 다시 말해 플라톤의 『국가』는 국가의 정의(justice)는 무엇이며, 국가에서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정의로운 국가는 어떻게 세울 수 있는지, 정의가 무너지면 국가와 국가의 시민은 어떻게 되는지를 논의한 책이다. (29쪽)

 

이와 관련, 독일의 철학자 카시러가 한 말도 기억해 두자.

 

플라톤의 『국가』가 세상에 정의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국가 이후로 어떤 정치 이론가도 국가를 논의할 때 정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8쪽)

 

저자는 이 책의 뒤편 3장에 에른스트 카시러의 책 『국가의 신화』를 소개한다. (173쪽)

 

『국가』에서 디스토피아를 찾아내기도

 

이 책을 읽고, 『국가』로부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동시에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이상국가가 과연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저자는 이런 말로 두 가지 생각이 나온다고 한다,

 

이상국가에 대하여,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나라(이상국가)가 갑갑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고, 그 반면에 혼란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나라가 좋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47쪽)

 

그래서 이런 발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국가』를 디스토피아로 이해한 또 다른 작품인 조지 오웰의 『1984』에는 빅브라더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의 처지가 역설적으로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의 죄수의 처지에 비유되기도 한다. ‘동굴의 신화’라고도 불리는 이 비유는 플라톤의 『국가』가 철학의 텍스트를 벗어나 문화적 이미지와 상징으로 재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매트릭스〉에도 이 ‘동굴의 비유’는 가상세계의 허상을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었고, 『국가』 2권을 여는 ‘귀게스의 반지’ 이야기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졌다. (43쪽)

 

이렇게 같은 이상국가에서 두 가지 다른 방향의 모습이 도출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플라톤의 다층적 글쓰기에 연유된 측면이 크다. 플라톤의 글은 언제나 한 가지 방식으로 해석되지 않고, 어떤 관점과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장면을 보여준다. (42쪽)

 

『국가』의 이상국가는 그 실현을 위한 좌표로 읽힐 수도 있고, 이상국가의 난망함을 보여주는 역설로 읽힐 수도 있다. (43쪽)

 

플라톤의 유토피아 또한 보는 입장에 따라 디스토피아가 된다. 올더스 헉슬리의 『놀라운 신세계』의 디스토피아는 바로 『국가』를 통제 사회로 이해한 산물이다. 『국가』의 이상세계를 디스토피아로 이해한 작품들은 영화로도 이어져 〈스타쉽 트루퍼스〉(1997), 〈더 기버〉(2014)와 〈다이버전트〉(2014)와 같은 영화가 나왔다. (43쪽)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에서 비로소 국가가 어떻게 해서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1997), 〈더 기버〉(2014)와 〈다이버전트〉(2014)를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겠다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주도적으로 깊이 있게 읽는 방법은?

 

대화편에서 항상 두 가지 관점에 선 두 사람이 등장한다,

이럴 때, 저자는 이런 방법을 권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주도적으로 깊이 있게 읽는 방법 중 하나는 이런 갈림길 상황에서 대화 상대자가 다른 대답을 했다면 어떤 다른 길이 열렸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92쪽)

 

‘시인추방론’의 대상 시인은?

 

바로 호메로스다.(155쪽)

 

이는 플라톤의 『국가』 제 10권에 등장하는 것으로, 박종현의 『국가. 정체』에서 해당 해설 부분을 참고해 본다,

제 10권에서는 종래에 시가 거의 전적으로 떠맡다시피 한 교육을 이제는, 특히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철학이 떠맡으려는 당위성을 언급하려 한다. (.......) 이런 언급은 그동안 헬라스 인들의 교육과 관련하여 시가 누려온 독점적인 지위를 차츰 철학이 빼앗아 가게 되는 데 따른 두 분야 사이의 갈등에 대한 철학 쪽의 해명인 셈이다. (『국가 정체』, 박종현, 609쪽)

 

다시, 이 책은?

 

저자는 3장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잘 이해하기 위한 참고 도서를 소해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플라톤, 『국가』 - 번역서 소개 

김영균, 『국가―훌륭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이정호 교수와 함께 하는 플라톤의 『국가』

퓌스텔 드 쿨랑주, 『고대 도시』

에른스트 카시러, 『국가의 신화』

찰스 칸,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적 대화』

 

이중, 김영균, 『국가―훌륭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에 대하여는 이렇게 소개한다. 

이 책(김영균의 책)이 나올 당시에는 『국가』의 내용을 해설해주는 책이 없었다. 이제는 이런저런 종류의 해설서들을 국내 학자들이 내놓았지만, 『국가』의 내용을 꼼꼼하게 소개하고 저자 자신의 균형 있는 해석을 곁들이고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한 자세한 연구 동향까지 곁들여주는 책으로는 여전히 이 책이 독보적이다. (167쪽) 

어떤 점에서는 내가 쓰고 있는 이 책과 김영균 교수의 책은 일정부분 겹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일종의 플라톤 읽기 예제의 성격으로 『국가』  1권을 심층 소개하고, 이후에는 1권의 내용을 확장해 후속 권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의 수준으로 정리한 것이라서, 『국가』 전체에 걸친 안내서로는 김영균의 책이 제격이다. (167쪽)

 

이런 소개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 일반인들이야 그런 학문적인 동향까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자칫 경쟁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책에 대하여 그런 평가를 한다는 것, 학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또 그런 소개를 하고 있는 이 책 또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인간혐오자 ㅣ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5
몰리에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인간혐오자

 

그간 알고 싶었던, 그래서 읽고 싶었던 몰리에르의 책을 읽었다.

지난 번에 읽었던 책은 『타르튀프』, 이번에는 『인간 혐오자』, 역시 희곡이다.

 

주인공, 인간 혐오자 알세스트

 

여기서 인간 혐오자로 나오는 인물은 알세스트.

그는 인간이 싫다. 인간들이 하는 짓이 싫은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인 필랭트가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호들갑스럽게 반기’더니, 간 다음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시큰둥하게 답을 하는 것, 그러한 행태가 싫은 것이다. 왜 앞에서는 그리 친절하게 굴더니 뒤돌아서는 다르게 말하느냐는  것, 그게 알세스트를 인간 혐오자로 만드는 인간들의 행태인 것이다.

 

그런 인간 혐오자이기에 사람들과 마찰을 빚지 않을 수밖에 없다.

소네트를 들고 와 평을 해달라는 오롱트에게도 전혀 다름없이 대한다. 본인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오롱트가 앙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동에는 공감이 된다.

흔히 말하는 주례사 평론 같은 찬사를 늘어놓는 것, 지겹기도 하다,

해서 주인공 알세스트가 오롱트의 소네트에 대하여 평하는 부분은 통쾌하기조차 하다.

 

이런 읽기, 재미 있다

 

대개의 희곡은 텍스트에서 막이 오르기 전에 등장인물과 장소를 특정해 준다.

‘야외’, ‘실내’, ‘누구의 집’ 이런 식으로 장소를 특정해주고 등장인물도 말해 주는데, 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만 소개하고 장소에 대하여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래서 1막을 읽다가 문득 이게 어디에서 벌어지는 일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쳐서 장소를 파악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다음과 같은 대사로 그 장소를 추론해 볼 수 있다.‘ 

1막 1장에 이런 대사가 보인다.  

내가 여기 온 이유도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보여주고 싶어서야. (23쪽)

 

일단 ’여기‘라는 장소가 등장한다. 그 ‘여기’는 ‘그녀’와 관련된 장소다.

그녀는 알세스트가 좋아하는 여인 셀리멘이다.

 

그러니 일단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알세스트가 좋아하는 여인 셀리멘과 관련된 어떤 곳에 알세스트가 와 있다.

 

1막 2장에는,

오롱트의 발언 중에 이런 대사가 보인다. 오롱트가 알세스트에세 하는 말이다.

 

마침 도착하는 길에 ....

선생께서 여기에 계시다고 말해 주었어요. (25쪽)

 

그러니까 여기는 알세스트의 집은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집이다.

 

2막이다.

2막 1장에 이런 대사, 셀리멘의 대사다.

 

그러고 보니까, 저를 책망하시려고

저를 집에 다시 데려다주신 거군요? (40쪽)

 

그러니까 2막의 장소는 셀리멘의 집이다.

 

그게 2막 2장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로 더욱 확실해진다

 

셀리멘 : 무슨 일이지?

바스크 (하인) : 아카스트 후작께서 오셨습니다.

셀리멘 : 아, 그래? 올라오시게 해. (46쪽)

 

2막 3장

바스크 : 클릳탕드르 후작께서도 오셨습니다. (48쪽)

 

그러니 여기도 계속해서 셀리멘의 집이다.

 

3막 1장

클리탕드르와 아카스트의 대화

 

클리탕드르 :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쉽게

사랑을 얻으면서 왜 여기에서는 쓸데 없이 한숨만 쉬고 있는 거야? (69쪽)

 

3막 2장

셀리멘 : 아직 안 가셨어요? (73쪽)

 

따라서 1막에서 3막까지 장소는 셀리멘의 집이다.

 

4막은 어떤가?

 

1장은 엘리앙트와 필랭트가 등장하여 대화를 나눈다.

장소를 알 수 있는 대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2장에서는 알세스트와 엘리앙트, 그리고 필랭트가 등장하는데 이런 대사가 보인다.

 

저기 셀리멘이 오고 있네요. (102쪽)

 

집안 어딘가에 있던 셀리멘이 그들에게로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도 역시 셀리멘의 집이다.

 

5막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 희곡의 무대는 셀리멘의 집이다.

셀리멘의 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역자의 해설에 의하면, 17세기 프랑스는 귀족 계급의 사교계가 ‘살롱’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143쪽)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셀리멘의 집이 살롱 역할을 하고, 그 집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그렇게 장소를 특정하고 나니까. 작품의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되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이렇게 평한다.

 

위선과 환멸로 가득찬 당대 사교계를 낱낱이 들춰본 작품 『인간혐오자』

사랑과 배신이 난무하는 사회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다.

 

‘탈출을 시도하다’는 말은 이런 대목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오지로 가서 살기로 마음억었어요.

주저하지 말고, 저를 따라가기로 결정을 내려 주세요. (138쪽)

 

열린 결말이기에 재미있다.

 

그러나 오지로 가서 산다, 즉 사회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는 게 그게 주인공인 알세스트의 진심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 희곡은 열린 결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희곡은 줄거리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

이 희곡은 ‘성격 희극’이기에, 줄거리보다는 그때 그때 대사를 통하여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그 기교, 그 방법에 주안점을 두고 읽는다면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거기에서 희곡의 재미와 희극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피쿠로스 쾌락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 말부터 해야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역자 박문재가 쓴 <해제>를 먼저 읽어볼 것!

<해제>는 뒤편 169쪽에 있으니, 일단 이 책을 펴면 앞에서부터 읽을 게 아니라 꼭 <해제>부터 읽어볼 것을 권한다.

 

해제를 읽지 않고 처음부터 읽는 바람에, 이 책 읽기가 힘들었다.

이 책에는 8개의 글이 들어있는데, 그래서 이 8개의 글이 모두다 에피쿠로스의 저작인 줄 알았는데, 맨 처음 글이 <에피쿠로스의 생애>이어서 당황했다.

아니 에피쿠로스가 자기의 생애에 대해 썼다는 말인가?

 

그래서 다시 앞으로 와서 <일러두기>에 보니 그 글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글이다.

그렇게 다시 앞으로 왔다가 본문으로 돌아가 읽기 시작해서 모든 본문을 마치고 그제서야 역자의 <해제>를 읽게 되었는데,  헤매던 것에 대한 답이 거기에 다 있지 않은가. 그러니 다시 말한다. 이 책을 읽으려면 뒷부분에 있는 <해제>부터 읽기를!

 

이 책, 에피쿠로스에 관련된 글과 에피쿠로스의 글들이 모두 8편 실려 있는데, 먼저 그 글들을 쓴 이를 살펴보자.

 

01. 에피쿠로스의 생애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02.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서신 -  에피쿠로스

03.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서신 -  에피쿠로스

04. 현자론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05.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서신 - 에피쿠로스

06. 주요 가르침들 - 에피쿠로스

07. 에피쿠로스 어록

08. 에피쿠로스 저작들의 단편

 

에피쿠로스가 쓴 글은 다음 4편인데, 이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저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제 10편에 수록되어 있다. (‘일러두기’에서)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서신 -  에피쿠로스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서신 -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서신 - 에피쿠로스

주요 가르침들 -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의 생애

 

그는 기원전 341년 초에 태어나 기원전 270년에 죽었다, 72세였다. (25, 190쪽)

 

그는 12살에 철학을 시작해, 32살 때 자신의 학교를 세우고 수장이 되었다. (25쪽)

그런데 <해제>에는 ‘그는 14세 때 철학을 접했다고 되어 있다. (190쪽)

 

그가 철학을 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에피쿠로스는 문법학교 교사들이 헤시오도스의 글에 나오는 카오스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실망해서 철학에 입문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13쪽)

 

에피쿠로스는 그의 사상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에피쿠로스의 생애>를 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이렇게 단언한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를 이렇게 비난한 자들은 미친 자들이다. (20쪽)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을 배려하고 공손하게 대하는 것에서 에피쿠로스는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것을 증언해줄 사람이 차고 넘치고,

그의 조국은 그의 동상을 세워 그를 기렸다.

친구들은 모든 도시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의 제자들은 모두 황홀할 정도로 매혹적인 그의 교리를 끝까지 고수했다. (20쪽)

 

그는 책을 많이 썼는데, 그가 쓴 책들은 두루마리로 300개 이상이었다,

그의 책들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에피쿠로스 자신이 한 말만 들어있다. (32쪽)

 

에피쿠로스의 쾌락론을 정리해보자.

 

에피쿠로스는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쾌락’이라고 천명하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의 부재를 최대치의 쾌락으로 보았으므로, 자연학이든 윤리학이든 모든 것은 이 쾌락에 이바지할 때만 ‘선’이 되고, 이 쾌락에 해로우면 ‘악’이 된다. 그는 최고의 쾌락 상태인 아타락시아를 누리는 데는 현세의 삶만으로 충분하므로 내세나 영생을 바랄 필요가 없고, 실제로 인간 영혼과 육체는 모두 물질적인 것이므로 결국은 해체되어 죽음을 맞이하고, 내세나 영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육체적인 쾌락은 고통의 부재이고, 이것은 마음의 평정 상태이자 최고의 쾌락인 아타락시아를 위한 것이다. (194쪽)

 

다시 말하자면, 그의 쾌락은 보통 말하는 ‘쾌락’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에피쿠로스의 주요한 개념인 쾌락과 고통,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느낌이 쾌락과 고통, 이렇게 두 가지라고 한다.

느낌은 모든 살아있는 것에서 생기는데.

본성에 고유한 것은 쾌락을 낳고, 본성에 이질적인 것은 고통을 낳는다.

쾌락과 고통에 근거해 선택과 회피가 결정된다. (39쪽)

 

에피쿠로스의 편지글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규범론, 자연학, 윤리학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35쪽)

 

규범론은 에피쿠로스 철학 체계 전반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저작 『규범론』에 담겨있다.

자연학은 자연에 관한 모든 탐구를 다루는 것으로 『자연학』 37 권에 담겨있고, 서신들에 요약된 형태로 담겨있다.

윤리학은 선택과 회피를 다루는 것으로 『인생론』과 『목적론』이라는 책들과 여러 서신에 담겨있다.

 

위에 기록한 책들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다음 서신들에서 각각 해당 사항을 찾아볼 수 있다.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서신 - 자연학에 관하여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서신  - 천체 현상에 관하여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서신 - 인간의 삶에 관하여

 

이제 그의 생각 중 몇 가지 기록해 둔다.

 

우주는 물체와 허공이다. 물체들이 존재함은 감각 자체에 의해 어디서든 증명되고, 추론을 통해 불확실한 것을 증명하려면 반드시 감각에 근거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허공, 공간, 감각으로 부르는, 인지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물들이 있을 공간도 없고, 우리에게 사물들은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움직일 공간도 없을 것이다. (46쪽)

 

이에 대한 역자의 설명은 이렇다,

물체는 원자들과 원자들의 합성물이고

허공은 비어있는 공간이다, ‘공간’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비어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케노스’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46쪽)

 

에피쿠로스에게 죽음이란?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해 길게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역자는 이런 설명을 붙이고 있다.

 

에피쿠로스가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길게 말하는 이유는 죽음이 인간이 느끼는 모든 두려움 중에서도 가장 큰 두려움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 밖의 다른 많은 악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109쪽)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모든 좋고 나쁨은 감각에 있는데, 죽음은 감각의 박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바른 지식은 우리 삶에 무한한 시간을 더해주는 방식이 아닌, 불멸에 대한 갈망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삶의 필멸성조차 즐길 수 있게 한다. (109쪽)

 

죽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철저하게 아는 사람에게는 사는 것과 관련해서도 두려움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에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 아니라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정작 죽음이 닥쳐왔을 때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데도, 그런 죽음을 예상하고서 헛되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재앙 중에서 가장 두렵고 떨리는 재앙이지만,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특히 다음 말은 많이 들어왔던 말인데, 드디어 그 출처를 찾았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죽음은 우리에게 오지 않고,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09쪽)

 

다시, 이 책은

 

그간 에피쿠로스의 쾌락론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쾌락은 무엇인지, 왜 사람들이 그의 쾌락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이 책으로 그런 오해, 궁금증이 다 풀렸다.

 

그의 말들은 아포리즘 형태로 많이 떠돌아다니는데, 이 책으로 그런 말들의 출처를 알게 되고 그 말들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에피쿠로스의 책도 제대로 읽지 않고 에피쿠로스의 ‘쾌락’을 논하는 글들이 많은데, 이제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안개 - 영화로 읽는 ‘무진기행’,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 ‘안개’ ㅣ 김승옥 작가 오리지널 시나리오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개

 

작가 김승옥은 나에게 <무진 기행>으로 기억되는 작가다.

그런데 요즘 김승옥이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쓴 시나리오를 두 편 읽었다. 하나는 <도시로 간 처녀>, 또 다른 하나는 <무진 기행>을 각색한 <안개>다. 바로 이 책이다.

 

<무진 기행>, 하도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라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한번 읽었다.

마침 인터넷에 전문이 올라와 있어, 인터넷에서 다시 한번 읽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topnara&logNo=220659501868

 

그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의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말,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이 말은 그 뒤로 관형어처럼 쓰여져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곤 했는데, 내가 알기론 그 말은 김승옥이 바로 <무진기행>에서 처음 사용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이런 추측이 잘 못 되었다면 고쳐주시기를 .....)

 

이 대목은 시나리오에서도 여전히 등장한다.

 

터널 속

윤의 소리 (E) :

명산물.....무진의 명산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의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다. (23쪽)

 

또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 친구 조와 관련한 이런 글,

 

옛날에 손금이 나쁘다고 판단 받은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자기의 손톱으로 손바닥에 좋은 손금을 파가며 열심히 일했다. 드디어 그 소년은 성공해서 잘살았다.’

 

이 대목은 시나리오에 나오질 않는다.

그것 말고도 소설과 시나리오에서 다른 점이 있다,

 

소설에서 윤이 무진에 내려오는 이유는 ‘승진이 될 모양인데 며칠 휴가를 얻은 것이다.  

" 당신 안색이 아주 나빠져서 큰일났어요. 어머님의 산소에 다녀온 다는 핑계를 대고 무진에 며칠 동안 계시다가 오세요. 주주총회에서의 일은 아버지하고 저하고 다 꾸며 놓을께요. 당신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쐬고 그리고 돌아와보면 대회생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되어 있을 게 아니에요?"

 

사라진 무진의 의미

 

그런데 시나리오에서는 무진으로 내려온 이유, 그게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다가 막판에 윤이 형사들에게 잡혀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한 곳이 무진인 것이다.

 

그러니 소설에서 말하는 ’무진의 의미‘가 시나리오에서는 사라지고 말았다.

시나리오에서도 윤이 하인숙 선생에게 무진은 과거에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이었는가 대하여 열심히 말을 해주고 있는데 막상 현재의 무진은 다른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관객의 흥미를 자아낼만한 요소를 넣으려니 그러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윤과 하인숙 선생이 육체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오지만, 시나리오에서는 그 대신 같이 동행하여 다른 도시로 가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전히 무진에 온 목적을 감추려는 듯, 무슨 사건이 있음을 암시하는 듯, 그런 모습을 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타난 형사들에 의해 연행되어 가는 윤.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같다.

 

소설 :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시나리오 :

허탈한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면 뿌연 안개 속에 무진의 새벽 상가가 지나가고 선명한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 <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윤의 행적을 마치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많은 것을 생략함으로서 그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데, 그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시나리오에서 생략된 부분과 소설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기에 혼란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니 이 책을 온전히 소설을 생각하지 말고 영화 시나리오로만 읽으면 어떨까?

그러면 <안개>라는 제목은 아주 적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도시로 간 처녀 - 처음 공개되는 작품으로 상영중단까지 당한 사회고발 문제작 ㅣ 김승옥 작가 오리지널 시나리오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시로 간 처녀

 

소설가 김승옥이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도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이다.

 

내용은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버스 안내양을 하면서 겪는 애환을 다루었다.

지금이야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한때 대중교통인 버스에 안내양이란 제도가 있어서 승객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도와주고 버스 요금도 받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요즘이야 없어졌지만 그런 직업도 여성들을 위한 직업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그런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그린 것이다,

 

먼저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이문희, 장영옥, 박성애.

이렇게 3명이 주인공이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둘러싸고 사건이 벌어지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니 이 정도 소개하자.

 

안내양이 버스비로 현금을 받기 때문에, 그 현금을 제대로 입금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몸수색을 하는 것.

안내양의 불안한 지위를 이용하려 버스 기사가 못된 짓을 하는 것.

 

이런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였는데, 이 영화가 상영이 되자 큰 문제가 생겼다.

 

상영이 된지 일주일만에 전국자동차노조연맹과 아 연맹에 소속된 운전기사와 안내양 등 15만명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인권을 유린했다는 이유로 문화공보부에 영화 상영 중지를 요청했다.

또한 200여명의 안내양들이 극장 앞에 모여 공개적인 항의를 했다. (7쪽)

 

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기 언급된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자면 이렇다. 이런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안내양과 유부남 기사가 동거를 한다든지

안내양과 여자 감독이 삥땅한 돈으로 뒷거래를 하고

삥땅을 하지 않는 안내양을 괴롭히고 겁탈하려는 악랄한 기사,

당시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안내양 삥땅, 이를 적발하기 위한 인권유린적 몸수색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8쪽)

 

결국 상영을 중단하고 상당 부분을 삭제한 후에 재심의와 관계자 회의를 거쳐 재상영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을 고발하는 영화였는데, 그런 것들을 삭제하면 어떤 내용이 남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소위 말하는 알맹이는 다 빠지고 쭉정이만 남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대목은 살아남았을까?

 

차기사: 너하구 일하면 왜 그리 재미가 없냐?

성애: (고개 숙이며) …

차기사: 이번 탕에 입금시킬 돈 얼마야?

성애: 6천 5백원 좀 넘어요!

차기사: 아무리 막탕이지만 만 원은 넘었어! 이거 한번 세볼까!

[운전석 앞에 수북히 쌓인 성냥개비 꺽은 것을 보인다.]

성애: …?

차기사: 넌 혼자서만 해먹는다는 소문 듣고 이걸로 손님 수를 세었어! (35쪽)

 

이제 다른 사건이다.

 

문희의 버스가 와서 선다. 손님을 내리고 태우려는데

차기사 : (소리) 문 닫아!

문희, 허겁지겁 올라타고 문을 닫는다.

달리는 버스 안

문희 울상으로 바라보는 차 기사의 뒷모습이 심술궂다.

결심하고 다가가서

문희 : 정차 시간 3분으로 돼 있잖아요.?

차기사 : 따지자는 거야?

문희 : .....

입술만 깨문다. (71쪽)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입금실.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창구 밖의 문희에게

여직원 : 왜 이렇게 적어요?

문희 : (울상으로) 탈 손님이 많은데도 기사님이 막 통과해버리지 않아요!

...

문희 : 삥땅한 거 아녜요. 믿어주세요. (72쪽)

 

그렇게 안내양을 골탕 먹인 다음에 은근히 수작을 부리는 차기사.

그 다음에 여관으로 유인하고 ......(이하 생략)

 

다시, 이 책은?

 

이제 안내양 제도는 없어졌으니,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직종 다른 곳에서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해서 이 작품은 철 지난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있었다는 것, 역사적 기록물로 남을 것이고, 또한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모습을 바꿔 일어날지도 모를 그런 일에 경계가 된다는 점에도 의의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안내양이니 삥땅이라는 단어 자체를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을 만큼 시절이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주인공 문희를 통해 말하고 있는 부조리, 불합리, 인권유린, 고용착취 등 80년대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까지 없어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