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를 박종현 번역의 『국가, 정체』라는 책으로 읽었다.
물경 667쪽에 달하는 장편이다.
(아,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국가, 정체』가 2005년에 개정판이 나온 것을 발견했다. 개정판은 무려 738쪽이다.)
그 책을 읽긴 했지만, 머릿속에 정리가 제대로 된 것은 아니다. 해서 매번 『국가』 관련 책이 나오면 붙잡고 정리를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니 노력만 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해서 정리를 해보았다.
『국가』 이후에는 이제 정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의 부제 중 하나는 ‘정의에 대하여’이다. 다시 말해 플라톤의 『국가』는 국가의 정의(justice)는 무엇이며, 국가에서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정의로운 국가는 어떻게 세울 수 있는지, 정의가 무너지면 국가와 국가의 시민은 어떻게 되는지를 논의한 책이다. (29쪽)
이와 관련, 독일의 철학자 카시러가 한 말도 기억해 두자.
플라톤의 『국가』가 세상에 정의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국가 이후로 어떤 정치 이론가도 국가를 논의할 때 정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8쪽)
저자는 이 책의 뒤편 3장에 에른스트 카시러의 책 『국가의 신화』를 소개한다. (173쪽)
『국가』에서 디스토피아를 찾아내기도
이 책을 읽고, 『국가』로부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동시에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이상국가가 과연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저자는 이런 말로 두 가지 생각이 나온다고 한다,
이상국가에 대하여,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나라(이상국가)가 갑갑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고, 그 반면에 혼란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나라가 좋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47쪽)
그래서 이런 발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국가』를 디스토피아로 이해한 또 다른 작품인 조지 오웰의 『1984』에는 빅브라더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의 처지가 역설적으로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의 죄수의 처지에 비유되기도 한다. ‘동굴의 신화’라고도 불리는 이 비유는 플라톤의 『국가』가 철학의 텍스트를 벗어나 문화적 이미지와 상징으로 재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매트릭스〉에도 이 ‘동굴의 비유’는 가상세계의 허상을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었고, 『국가』 2권을 여는 ‘귀게스의 반지’ 이야기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졌다. (43쪽)
이렇게 같은 이상국가에서 두 가지 다른 방향의 모습이 도출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플라톤의 다층적 글쓰기에 연유된 측면이 크다. 플라톤의 글은 언제나 한 가지 방식으로 해석되지 않고, 어떤 관점과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장면을 보여준다. (42쪽)
『국가』의 이상국가는 그 실현을 위한 좌표로 읽힐 수도 있고, 이상국가의 난망함을 보여주는 역설로 읽힐 수도 있다. (43쪽)
플라톤의 유토피아 또한 보는 입장에 따라 디스토피아가 된다. 올더스 헉슬리의 『놀라운 신세계』의 디스토피아는 바로 『국가』를 통제 사회로 이해한 산물이다. 『국가』의 이상세계를 디스토피아로 이해한 작품들은 영화로도 이어져 〈스타쉽 트루퍼스〉(1997), 〈더 기버〉(2014)와 〈다이버전트〉(2014)와 같은 영화가 나왔다. (43쪽)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에서 비로소 국가가 어떻게 해서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1997), 〈더 기버〉(2014)와 〈다이버전트〉(2014)를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겠다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주도적으로 깊이 있게 읽는 방법은?
대화편에서 항상 두 가지 관점에 선 두 사람이 등장한다,
이럴 때, 저자는 이런 방법을 권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주도적으로 깊이 있게 읽는 방법 중 하나는 이런 갈림길 상황에서 대화 상대자가 다른 대답을 했다면 어떤 다른 길이 열렸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92쪽)
‘시인추방론’의 대상 시인은?
바로 호메로스다.(155쪽)
이는 플라톤의 『국가』 제 10권에 등장하는 것으로, 박종현의 『국가. 정체』에서 해당 해설 부분을 참고해 본다,
제 10권에서는 종래에 시가 거의 전적으로 떠맡다시피 한 교육을 이제는, 특히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철학이 떠맡으려는 당위성을 언급하려 한다. (.......) 이런 언급은 그동안 헬라스 인들의 교육과 관련하여 시가 누려온 독점적인 지위를 차츰 철학이 빼앗아 가게 되는 데 따른 두 분야 사이의 갈등에 대한 철학 쪽의 해명인 셈이다. (『국가 정체』, 박종현, 609쪽)
다시, 이 책은?
저자는 3장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잘 이해하기 위한 참고 도서를 소해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플라톤, 『국가』 - 번역서 소개
김영균, 『국가―훌륭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이정호 교수와 함께 하는 플라톤의 『국가』
퓌스텔 드 쿨랑주, 『고대 도시』
에른스트 카시러, 『국가의 신화』
찰스 칸,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적 대화』
이중, 김영균, 『국가―훌륭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에 대하여는 이렇게 소개한다.
이 책(김영균의 책)이 나올 당시에는 『국가』의 내용을 해설해주는 책이 없었다. 이제는 이런저런 종류의 해설서들을 국내 학자들이 내놓았지만, 『국가』의 내용을 꼼꼼하게 소개하고 저자 자신의 균형 있는 해석을 곁들이고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한 자세한 연구 동향까지 곁들여주는 책으로는 여전히 이 책이 독보적이다. (167쪽)
어떤 점에서는 내가 쓰고 있는 이 책과 김영균 교수의 책은 일정부분 겹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일종의 플라톤 읽기 예제의 성격으로 『국가』 1권을 심층 소개하고, 이후에는 1권의 내용을 확장해 후속 권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의 수준으로 정리한 것이라서, 『국가』 전체에 걸친 안내서로는 김영균의 책이 제격이다. (167쪽)
이런 소개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 일반인들이야 그런 학문적인 동향까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자칫 경쟁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책에 대하여 그런 평가를 한다는 것, 학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또 그런 소개를 하고 있는 이 책 또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