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아르센 뤼팽 전집 12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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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의 탄생

 

이 책 <칼리오스트로 백작 부인>은 코너스톤에서 발간한 아르센 뤼팽 전집중 하나이다.

그런데 난,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이고 싶다. <아르센 뤼팽의 탄생>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전개되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러한 사건들이 뤼팽이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에 그렇게 제목을 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이야기는 에필로그의 다음 부분 – 뤼팽의 탄생 - 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 느낌이 든다.

 

<슬픔으로 인해 라울은 완전히 변했다. 이제는 더 이상 라울을 지탱해 줄 아내도 아들도 없었으므로, 라울은 그토록 강한 힘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길로 단호히 뛰어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라울은 아르센 뤼팽이 되었다. 더 이상 절제하지 않았다. 신중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추문과 도발을 일삼고 오만한 태도로 대놓고 과시하고 빈정댔으며, 벽에 자기 이름을 써놓고 금고 안에는 명함을 놔두었다. 한 마디로 진정 아르센 뤼팽 다워진 것이다. >(358쪽)

 

그렇게 뤼팽이 탄생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모리스 르블랑이 시리즈로 뤼팽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이 편에서 – 그러니까 나중에 – 뤼팽의 어린 시절을 다룬 것이 아마 이런 류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 뒤로 그렇게 이갸기를 전개하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떤 작품에서 주인공인 인물이 등장하여 한창 인기를 끌면, 그 후속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주인공의 어릴 적이나 탄생을 다룬 이야기가 등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기법이 이 소설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이 책에서 아르센 뤼팽의 탄생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 전에 이야기도 그냥 예사로운 것은 아니다. 희대의 도적 뤼팽이 탄생하는 만큼 그 전의 이야기가 어찌 예사로울 수 있을까?

 

뤼팽이 뤼팽이 되기 전까지는 주인공이 뤼팽이 아니라 라울 당그레지이다.

물론 그가 그다. 라울 당드레지는 뤼팽이 되기 전의 이름이니,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그 때 그의 나이가 20살, 그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라울 당드레지는 나이 스무살에 사건을 겪게 된다. 바로 클라리스를 만난 것.

아버지의 성 대신에 어머니의 성으로 살아가던중 클라리스를 만나게 되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클라리스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인 남작에게 결혼 승낙을 받으려 하였으나 거절당한다. 그래서 그 주변에 머물다가 그녀의 집에 잠입하게 되고, 거기에서 어떤 편지를 보게 된다. 남작이 어떤 여인을 납치하여 살해하려는 모의를 알게 된 것. 그리고 그 범죄의 현장에 납치되어 온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즉 조세핀 발사모를 보게 되자마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어 그녀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라울은 그녀를 도와주는 가운데 여러 사건과 모험을 하면서 서서히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뤼팽이 되어가는 것이다.

 

모리스 르불랑은 이 책에서 아르센 뤼팽의 모습을 몇가지로 묘사해 놓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뤼팽의 모습을 다시 한번 정리해 놓은 것은 아닐까, 싶게 정확하다.

 

젖먹이 때부터 이미 아버지한테 권투하고 체조를 배웠으니 그 덕은 톡톡히 봤죠! (19쪽)

강철같은 근육에 최고의 두뇌. (19쪽)

라울 당드레지..... 아르센 뤼팽...한 조각상의 두 얼굴!(19쪽)

 

에필로그에서 다음 편을 예고하다

 

책을 읽고 무언가 미진한 마음이 들어, 책을 살펴보니, 뒷 표지 날개에 아르센 뤼팽 전집 목록이 보인다. 그중 19권의 제목이 <칼리오스트로 백작 부인의 복수>다.

 

아마 그 책은 여기 12 권에서 의문으로 남겨진 몇 개의 사건을 계속해서 풀어가는 이야기로 전개되지 않을까? 장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지 이틀만에 사라진 뤼팽의 아들 이야기 등등. 그런 일들이 <칼리오스트로의 백작부인의 복수> 편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

 

오자가 보인다.

 

“수장水漿은 일어날 것이다.”(25쪽)

 

수장이란 말에 한문을 병기했는데, 水漿으로 했다. 말의 뜻으로 보아서는 水葬이 맞을 것 같은데, 23쪽에 이런 내용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래쪽 바닷가에 배 두 척을 준비해뒀네. 둘 중 작은 배 밑바닥에 구멍이 나 있으니 물에 뜨고 나서 10분 있으면 가라앉을 걸세”

 

그러니 수장(水葬)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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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북소믈리에가 될까
조선우 지음 / 책읽는귀족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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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종소리를 울리는 북소믈리에가 되고 싶다.

 

‘북소믈리에’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저자가 지어낸 조어로써, 와인을 감별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말인 소믈리에에 북을 접목시킨 말이다. 소믈리에가 와인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북소믈리에는 책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소믈리에가 와인에 대한 아주 오랜 경험과 단련된 미식가의 혀를 갖고 있듯이 북소믈리에는 책에 대해 그만큼 세밀한 입맛을 가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6-7쪽)

 

저자, 조선우는 ‘책읽는귀족’이란 출판사의 대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가 책에 대해 얼마만큼의 사랑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독서의 근육을 키워라

 

우리 몸의 근육도 쓰면 쓸수록 강해지듯이 정신의 근육도 단련할수록 강해진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쉬운 책부터 시작하는 독서를 멀리 해야한다. (16쪽)

 

그런 저자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감한다. 쉬운 책으로 시작하지만 계속해서 쉬운 책만 붙들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 쉬운 책으로 시작한다면서 그 때에 생각의 근육을 키울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저자의 말처럼 쉬운 책이 아니라 생각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쉬운 책을 읽다보니, 우리 몸이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어진 것처럼 독서도 인스턴트 식으로만 하게 되는 게 아닌가?

 

독서의 방법들

 

저자는 여러 가지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신토피칼 독서법이다.

이 방법은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한권의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몇 권의 책을 읽는 것을 말한다. 같은 주제에 대하여 2 종 이상의 책을 섭렵함으로써 그 주제에 대한 개념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독서 방법이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신토피칼 독서법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신토피칼?

물론 저자는 그 내용을 알고 있겠지만. 모르는 독자를 위해서 신토피칼이 새로운(新) 토피칼인지, 아니면 신토피칼(syntopical)인지를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알려주는 방법은 간단하지 않은가? 신(新)이라고 쓰거나, 신토피칼(syntopical)이라고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다. (혹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참고로, 신토피칼(syntopical)독서법이 맞다.

 

책에 대한 소신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중에 하나 여기 기록하고 싶은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소신이다. 그는 책에 대해 어떤 분명한 소신을 갖고 있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발언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그냥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그런 책이 아니라, 뭔가 단 한 조각이라도 그 책을 읽은 사람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맑은 종소리를 울리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도 나는 독자들이 ‘읽는’ 행위에 대해 글자, 문자, 텍스트 자체에 국한되는 독서가 아니라, 어떤 대상이라도 읽어내는 수준의 독서로 이끌기 위한 출판 기획을 계속할 것이다.>(63쪽)

 

그런 포부를 가진 저자의 말이라면, 들을만하지 않겠는가? 이 책, 그래서 읽을만한 것이다. 나도 북소믈리에가 되고 싶다. 맑은 종소리를 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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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 콘서트 ㅣ 고전 콘서트 시리즈 3
권희정 외 지음 / 꿈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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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그리고 십대


이 책은 일곱 명의 석학들이 각자 고전 한권씩을 택하여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 강연으로 먼저 했다 - 를 책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여기 포함된 책들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 소로의 <윌든>,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그리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소통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 콘서트>

제목이 일단 확실하다. 이 책의 대상이 십대라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소통하는, 다시 풀어 말하자면 소통이 중요한 줄 알고 소통하려고 애를 쓰는 십대를 위한 책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소통을 위해서는 이 정도 책은 읽어야 한다는 말이겠다. 십대일지라도? 아니 십대이니 오히려 이런 책 정도는 읽어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은 십대를 타켓으로 하여 쉽게 쓴 책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에게) 버거운 부분도 많이 보였다. 내용 자체가 어려워서 그런 것이다, 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런 책이 과연 십대들에게도 잘 읽힐지 우려되기도 하였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 - 베르테르야? 베르터야?

 

지난번에 새롭게 번역되어 출판된 책, <파랑새>를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서 알게된 사실 하나, 주인공 이름,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아니다.

그렇게 알려진 이유는 <파랑새>를 번역하면서, 원본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본 번역본에서 옮겨 오면서 일본식으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따라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올바른 이름은 ‘틸틸’과 ‘미틸’이다.

그런데 그게 쉽게 바뀔까? 아무래도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혜은이가 부른 노래, <파란 나라>에 이런 가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가사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 난 ‘찌루 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난 안델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 넘어>

이 노래 가사에는 ‘치르치르’도 아닌, ‘찌루찌루’로 나온다.

 

이런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가운데, 그 점을 지적한 부분이 있어 반가웠다.

 

“파랑새라는 작품을 보며, 파랑새를 찾아 떠난 두 남매가 등장하는데요, 이 남매의 이름은 ‘틸틸’과 ‘미틸’입니다. 그런데 틸틸이라는 이름을 일본어로 표기하면 찌루찌루가 됩니다. 일본어로는 이렇게 표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초기 세계문학 번역자들이 이 표기법을 사용하면서 그대로 굳어졌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충분히 원어에 가깝게 발음하고 표기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80쪽)

 

그렇게 십대들에게 알려줘야 그들이 작품 속의 주인공 이름을 제대로 알고 부를 것이 아닌가?

또한 이 책에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흔히 알고 있는 괴테의 작품이 실상은 <젊은 베르터의 고뇌>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발음이며, 의미라고 알려준다.

 

그런 지적이 필요하고, 그래야 자라나는 십대들이 정확한 토대 위에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이 고마웠다.

 

니체 – 영원회귀 사상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하여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 고마웠다.

 

영원회귀사상은 무엇인가? 저자(박찬국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사상이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모든 고통과 고난이 우리가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것이 아무런 목표도 없이 의미도 없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상이다.

 

그래서 니체는 이러한 전제하에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세계가 영원히 반복되더라도 너는 이 세계를 긍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세계 앞에서 절망할 것인가?’

 

그래서 니체는 말하기를, 우리가 겪은 모든 고난과 고통이 다시 반복되어도 좋다고 흔쾌히 긍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사상중의 사상, 영원히 반복적으로 회귀한다는 사상을 온 몸으로 인식하고 체현한다면 그 사상은 널 변화시킬 것이다. 너의 삶이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영원회귀의 사상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질문, 그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이 책을 통해 가져 볼 수 있었다. 니체의 생각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그리고 그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었다는 것, 그 것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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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아르센 뤼팽 전집 11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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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뤼팽! 

 

모처럼 아르센 뤼팽을 읽었다. 뤼팽을 읽은 적이 언제였던가? 몇 십년 만에 읽은 듯하다. 그래서 모리스 르블랑의 추리 세계에 가벼운 흥분을 느끼면서 읽어나갔다.

 

그래서 작중의 인물이 되어, 아니 작중의 주인공과 추리의 세계에서 겨루어 보는 재미, 그게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인데, 보기 좋게 당했다.

 

<가스통은 매우 화가 난 듯 했다.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 아래 오랫동안 창문 난간에 기대어 있었기에 땀이 났다. 가스통은 방으로 들어가 물병을 들고 나온 후 몇 모금 마시고는 창가에올려 놓았다.>(65쪽)

 

여기 이 대목에서 무언가 있는 듯싶었다. 이 책이 추리 소설 아닌가? 저자는 이야기의 여러 곳에 독자들이 작품 속에서 작가를 따라갈 만한 힌트를 주곤 하는 게 추리 소설의 예의인지라, 이 대목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단서는 물병이었다. 왜냐? 이 소설 두 번째 장의 소제목이 <물병>이었기에, 작자가 여기 힌트를 남겨 놓았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물병이 등장했다. 물병의 위치는? 방에서 나와 창가로 이동한다. 물병에 남아있는 물의 양은? 측정할 수 없으나, 주어진 단서는 물은 ‘몇 모금 마시고’ 남아있다는 것 정도. 그런데 이런 정도의 정보만으로는 더 이상 추리가 진척이 되지 않았다. 햇빛과 물병, 두 개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에서 드디어 물병이 역할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돈다발이 성가신 물건이 되어버리자 아예 없애버리려고 했겠지? 방법은 간단했어. 창가에 배가 불룩한 커다란 물병을 올려놓았던 거지. 크리스털로 만든 유리병이 렌즈 역할을 하며 햇빛을 모아 적절히 준비해둔 모자 상자와 비단 종이로 보냈지. 10 분 뒤에 불이 붙기 시작했던 거야. 놀라운 발상이야.>(80쪽)

 

이건 분명 반칙이다. 65쪽에 인용한 부분에는 가스통이 방에서 들고 나온 물병이 배가 불룩한 크리스탈 유리병이란 정보가 제공되어 있지 않다. 독자들과의 추리게임에서 작자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으니, 이 부분 분명 반칙이다.

 

그런데 그런 반칙을 탓하기 전에 나의 실수 하나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병? 작가가 미리 제공한 정보에 나오는 유일한 단서인 물병을 현대식으로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늘상 마시는 물, 생수가 담긴 물병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물병의 재질은? 유리가 아니고, 페트병, 즉 폴리에틸렌을 재료로 만든 병이다. 그러니 그런 물병을 생각하면서 어찌 햇빛과 연결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는 소설 속에서 작가가 친절하게 독자들에게 남겨준 정보를 시대를 따져 해석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시대를 현대로 생각해버리고, 내 마음대로 해석해 버린 나의 잘못이다.

 

발견한 오마쥬 두 편

 

<오마쥬:

예술과 문학에서는 존경하는 작가와 작품에 영향을 받아 그와 비슷한 작품을 창작하거나 원작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에서는 좋아하는 혹은 존경하는 선배 영화인의 업적을 기리며 감명깊은 주요 대사나 장면을 본떠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장르에도 사용된다.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서 패러디나 표절과는 구분된다. 하지만 이 구분 기준이 모호하여 종종 저작권 문제나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도덕적인 문제로 연결되기도 한다.>

 

세익스피어에 대한 오마쥬

 

<그리고 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홍옥수 단추를 돌려준다는 약속을 지켰더라도 다른 곳이 아닌 알랭그르 성의 괘종시계가 울려야 했기에 그전까지는 어쨌든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

아시다시피 ...알랭그르의 괘종시계여야 한다는 것이 합의사항이었어요.>(289쪽)

 

<오르탕스는 숫자를 세었고 괘종시계는 여덟 번 울렸다.,

얼굴을 두 손에 묻고 힘없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괘종시계가 ...거기에 있어야 할 그게 여기에 있어...저 종소리 ....기억이 나.”(290쪽)

 

이 대목에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떠올랐다.

샤일록의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는 법정에 서게 된다.

샤일록은 법정에서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요구하는데, 포오샤가 말한다.

샤일록에게 “분명히 '살 1파운드' 라고만 씌어 있소. 그러므로 증서의 내용대로 '살 1파운드'를 가질 것. 그러나 살을 베어냄에 있어서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릴 때에는 원고의 토지나 재산은 베니스 국법에 의해서 이를 전부 베니스 국고로 몰수하겠소.”라고.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오마쥬

 

<레닌이 이마를 치며 말했다.

“이런! 바보, 멍청이, 얼간이!”

경감이 물었다. “ 왜 그러십니까?”

“원형 탁자 위에 있던 모자 상자! 바로 거기에 돈다발을 숨겨 놓았습니다. 아까 우리가 수색하는 내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요.”

“그럴 리가!”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눈에 너무 잘 띄고 손닿는 곳에 있어서 그곳에 숨겼으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어떻게 범인이 뚜껑 열린 상자에 6만 프랑을 숨겨 놓았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느냔 말입니까?”> (75쪽)

 

위의 글을 읽으면서, 어찌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 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모처럼 읽은 뤼팽, 르블랑에게 보기 좋게, 그러나 기분 좋게 당했다. 그러나 그렇게 작자와 두뇌 싸움을 하면서 읽어가는 것, 이게 바로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 아니겠는가? 더불어 셰익스피어와 에드거 앨런 포까지 기억하게 되었으니, 반갑다. 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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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로 세우는 힘 - 불멸의 고전에서 배우는
정젠빈 지음, 원녕경 옮김 / 제이플러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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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답게 살기도, 처세도 힘들구나

 

이 책의 제목은 길다.

<불멸의 고전에서 배우는 나를 바로 세우는 힘>이니, 무려 18자이다.

해서.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검색하려면 힘들 것 같다. 그 많은 글자를 타이핑을 해야 하는데....

(실제 검색해서 책을 찾으니, ‘나를 바로 세우는 힘’이 제목으로 나온다.)

 

어쨌든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불멸의 고전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힘’에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내어, 그것을 현재의 현실에 접목시키는 글로 읽었다는 말이겠다.

 

이 책이 바탕으로 하는 고전은?

 

그러면 저자인 정젠빈이 ‘불멸의 고전’으로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저자는 그 대상을 ‘귀곡자’와 ‘채근담’으로 하고 있다.

 

채근담은 귀에 익은 책이지만, 귀곡자는 그렇지 않다. 생소한 책이다.

이 책의 설명에 의하면, 귀곡자는 춘추시대에 종횡자의 시조인 왕허가 지은 책이다.(4쪽)

귀곡자는 인간관계의 기술과 권모술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성공학’ 저서로, 책 한권을 관통하는 심오한 이론과 절묘한 문체로 ‘당대 최고의 책’이라고 평가받는 책이다.

 

그래서 귀곡자를 통하여는 사람의 마음을 통찰하고, 정세를 파악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에 적절한 대응방안을 제시해 준다.

 

그러니 날로 복잡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귀곡자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전략과 기술을 배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귀곡자를 통해서 ‘나를 바로 세우는 힘’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또 하나의 고전은 채근담이다.

채근담은 명나라의 홍응명이 쓴 것으로 중국 5,000년 동안 축적되어 온 삶의 지혜를 망라하고, 더 나아가 유가와 도가 불가를 관통하는 정수만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현실적인 의미가 통용될만큼 구구절절이 금과옥조로 다가온다.

 

귀곡자로부터 얻은 지혜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먼저 귀곡자를 통하여 처세의 지혜를 찾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답게 살기 힘든데, 처세는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에 제대로 발붙이고 살려면 처세를 잘해야 하는데, 귀곡자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저자가 귀곡자로부터 찾아낸 지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상대의 겉과 속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원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은 무엇인가?

상대를 움직여 원하는 바를 취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국을 꿈꾸는 잔재비, 대사를 그르치는 빈틈은 무엇인가?

주면 정세를 살피고 국면을 장악하는 법은 무엇인가?

말썽은 피하고 정도를 걸어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런 항목들을 통해서 저자는 오늘과 같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주도권을 잡고 종국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채근담을 통해 얻는 지혜

 

채근담을 통해서는 저자는 다음과 같은 점을 독자들에게 뽑아내어 주고 있다.

 

자신을 바로 보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

생활은 사치스럽지 않게, 기풍은 인색하지 않게 하는 법

시련을 관록으로 키워내는 법

길이 없으면 일찌감치 고개를 돌려라

집안을 다스려야 큰일을 이룬다.

생활의 균형을 잡아 재충전하는 법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런 것들을 통해서 저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성찰하도록 만든다. 인간과의 관계인 처세술에 인간의 진면목이 무엇인가를 알아 그 관계를 진실되게 하는게, 처세를 더욱더 바람직하게 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여기에 녹아 들어 있는 것이다.

 

불멸의 지혜 – 인간관계

 

이 책을 읽으면서, 역자가 밝혔듯이(306쪽) 귀곡자와 채근담이 분명 다른 책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면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관계’ 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이는 신영복 선생이 동양고전을 ‘관계론’적으로 풀어내어 그 실질을 명확히 보여준 적이 있지만, 다시한번 이 책으로 그러한 것을 구체적으로 보게 되니, 동양고전 – 특히 귀곡자와 채근담 –을 불멸의 고전이라 칭한 저자의 견해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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