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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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줄리언 반스는 똑똑하다.

 

이 소설에서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아서와 조지. 서양사람들이니 이름이 길다. 정확한 이름을 적어보자면, 아서는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조지는 '조지 어니스트 톰슨 에들지' (George Ernest Thompson Edalji)(286)이다. 둘 다 실존인물이다. 그러니 작가 줄리언 반스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실제 사건을 소설화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 호흡이 길다. 그래서 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야 한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읽었다. 하나하나 작가의 숨소리까지 경청하면서 차분하게 읽었다. 그렇게 해야 읽는 맛이 나는 소설이다. 이 책의 내용은 실제 사건인만큼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으니, 이제 작가가 어떤 식으로 그것을 형상화 할 것인지, 그게 바로 이 소설을 읽는 재미가 되겠다.

 

그가 구사하는 소설 기법들을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줄거리는 생략한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직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 만나지도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사람 - 언제 친구가 될지 모르나, 아직까지는 서로 모르니 친구가 아니다 - 이 등장하는데, 각각 따로 등장한다. ‘따로라는 말에 걸맞게 작가는 그 상황을 각각의 처소에서 따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아서'라는 타이틀로 구분하여 아서의 이야기를 진행하고, 또 '조지'라는 타이틀 아래 조지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식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진행되는 각자의 이야기를 얼른 이해하기 쉽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서술하다 보니, 독자들은 이런 조바심을 간직한 채 책을 읽게 된다.

<언제 '아서 &조지'라는 타이틀이 등장하지? 그래야 이 친구들이 만날 수 잇을 것 아닌가?>

 

그런데 여간해서 그 고대하는 타이틀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게 바로 독자들을 감질나게 하는 방법이 아닌가? 두 친구가 조우하기를 학수고대하며 독자들은 기대하고 있는데, 그 날이 오기를, 아서와 조지가 따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등장하기를 염원하게 만드는 그 기법이 바로 줄리언 반스의 소설기법인가 보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우선 1권을 읽었다.

 

그러면 두 친구는 언제 조우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그냥 넘어가련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서또는 조지로만 등장하던 내용에 드디어 변화가 보인다 

바로 147쪽이다. 거기 타이틀이 아서& 조지로 되어 있다. 드디어 아서와 조지가 만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잠깐만! 아직 둘 사이에 만나야 할 어떤 계기가 없었다. 둘은 각자의 처소에서 그저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니, 아직 둘은 만날 채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 만난다면? 스토리에 커다란 균열이 생길 뿐이다. 그렇다. 그런 나의 생각이 맞았다. ‘아서& 조지라는 타이틀 아래 진행된 이야기에 둘의 만남은 없다.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인데, 이 타이틀 하에 진행된 이야기를 통하여 둘은 만난다는 것이리라.

그게 무얼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거기에 일단, 표를 해주고 읽어가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아도 좋을 듯하다. 거기 무언가 힌트가 있다!

 

사건이 벌어진다?, 아니 이것은 사건이 아닌가보다.

 

이 소설에서 드디어 사건이 벌어진다. 그렇게 아서와 조지를 넘나들면서 각자 인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부모님은 평안하신지, 마치 안부를 묻고 다니던 이야기꾼처럼 행세하던 줄리언 반스, 자세를 고쳐 잡고 꺼낸 이야기가 바로 조지와 그의 가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사건이다. 영문도 모른 채 그와 그의 가족이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 괴롭힘의 주체를 알 수 없다. 조지나 그 가족들에게도, 독자에게도 어떠한 힌트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괴롭히던 그 사건이 일부의 마지막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이렇게!

<하루가 지난다. 일주일이 지난다. 한 달이 지난다. 두 달이 지난다. 괴롭힘이 멈춘다. 괴롭힘이 중지되었다.> (98)

 

그러나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바로 괴롭힘의 시작이다. 작가는 독자들을 그렇게, 그런 식으로 괴롭힌다.

아니,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 되는거야? 그냥 흐지부지 되는 거라면 굳이 왜 그런 사건을 발생시키고, 진행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뚝, 하고 끝을 내는거야. 이게 뭐야?’하는 의아함이 머리에 메아리치기 시작하니, 어찌 괴롭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제 이야기는 제 2장으로 넘어간다. 2장의 타이틀은 <결말을 동반한 시작>이다.

그렇게 독자들을 한껏 기대에 부풀게 한 다음에 슬그머니 한 사건을 언급한다. 바로 인근 마을의 가축들이 공격을 받아 죽어가는 사건.

 

누구는 태평연월을 구가하고 누구는 고생한다. 친구 맞아?

 

이어지는 제 2장에서 작가는 여간해서 그 이빨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조지도 아서도 태평연월을 읊는다. 나름대로 고생은 하지만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된다. 아서는 작가로 의사로서 명성을 쌓게 되고, 조지도 사무변호사로 안착을 한다. ‘이제 그들이 제자리를 잡았으니 그 이야기는 그 정도로 족하다. ‘이제 제발 사건을 들려다오라고 독자들이 아우성 칠 때가 되었음을 아는 줄리언 반스, 드디어 이빨을 드러낸다.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아까 포스트잇을 붙여놓기를 권한 그 장면 기억하는지?

그 장면이 공연히 있었던 게 아니다. 드디어 시련이 시작된다, 조지에게!

 

어떤 사건인가? 공식적으로는 이렇다. 사건의 결말까지 포함하여 말하자면, “징역 7년 언도. 웨얼리의 가축 살해사건. 범인은 동요하지 않았다.”(293)는 것이다. 조지 어니스트 톰슨 에들지가 그 사건의 피고가 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조지에게 세월은 인고의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제목인 <용감한 친구들> 중 한 명인 아서는 그저 꿈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다. 부인이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그야말로 태평연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 조지와 만나 용감한 친구 사이로 발전하나? 한 쪽 친구는 감옥에 갇혀 고생을 하고 있는데, 다른 한 쪽 친구는 그렇게 태평으로 지내고 있으니, '이거 친구 맞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아직 작가인 줄리언 반스는 독자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을 만나게 해서 친구로 지내게 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궁금한 분들에게 이 소설 제 2권이 마련되어 있다!

 

아 참, 깜박할 뻔했다.

1권 마지막에 줄리언 반스, 한마디 잊지 않고 무언가 말했다. 409쪽이다. 그나마 말해주니,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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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어? - 내일을 바꾸기 위해 오늘 꼭 알아야 할 우리 시대의 지식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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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봐야 할 생각들, 그리고 지녀야 할 무기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까?

 

누군가는 말한다. 결코 모난 돌이 되지 말라고, 그저 둥글둥글하게 살라고. 그러니 제발 아무 생각없이 남이 생각하는 대로, 남이 행동하는 대로 그 뒤만 따라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말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생각없는 백성은 죽은 것이다. 그러니 제발 생각좀 하고 살아라...

 

그래서 혹자는 생각해 보려고 할 것이다. 대체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가 맨 먼저 앞에 놓인 걸림돌이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그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그 것에 대한 속 시원한 안내서가 바로 이 책, <생각해봤어?>이다.

물론 이 제목이 형태는 과거형이다. 과거에 그런 생각을 해 봤냐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이 제목을 대하면 주눅이 들지도 모른다. , 한번도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과거에 설령 한 번도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할지라도, 걱정- 이것도 생각인가? - 하지 말지니, 이 책을 읽으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며, 그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선명하게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기에그런 염려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정도면 이 책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이렇게 세 분이 처음으로 같이 쓴 책이라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다음 몇가지 나를 생각하게 만들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더듬어 볼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은 나에게 다음의 네 가지 방향에서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었다,.아마 다른 독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된다.

 

첫째, 우물안 개구리 격으로 전혀 그런데까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있다.

 

둘째, 뭘 알아야 생각하고 말고가 있지, 대체 뭐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 생각을 하고말고가 있지?

 

정보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에게는 귀한 정보들이 들어있다.

 

셋째, 내 앞에 코가 석자인데, 사회 돌아가는 형편에 생각이 미치나요?

그런 나에게, 그런 독자들에게 누군가 생각거리를 짚어주니, 얼마나 좋은가?

 

그마저도 아니라면 이런 카타르시스라도!

거기에서 나오는 촌철살인 멘트 하나.

 

: '' 누리당, 정말 세요

: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은 없는 겁니다.

: 그런데 이 꽃은 365일 붉어요.

: 조화라 그래요...... (345) 이런 촌철살인을 어디 가서 들어볼 수 있을까?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생각이란 무기하나씩

 

그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에 수록된 내용들이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꼭 알아야만 하는 주제들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데, 적어도 이정도만은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전후사정을 꿰뚫고 있어야만, 야바위꾼들이 설쳐대는 이 사대에 허튼 소리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저자들이 말한 바 삶에 필요한 무기라고 하는 것이 백번 맞다. 그런 야바위꾼들이 설쳐대는 이 사대에 우리들이 휘둘리지 않고 확실하게 주관을 잡고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고, 또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이런 말도 한다.

답이 분명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앞서 가는 사람들도 새롭게 바라봐야만 하는 문제가 있는데, 보통사람인 독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바로 여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는 저자들의 주장, 거기에 동의한다.

 

특히 소통과 공감이 이 나라에 살아나기를

 

여기 가슴에 특히 와 닿은 말은 의외로 서문격인 <책을 펴내며>에 들어있다.

 

<이 책의 내용이 다소 정밀하지 않을 수 있고, 읽은 이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소통과 공감은 머리가 똑 같아지는게 아니라, 함께 즐거워하는 마음 혹은 아파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5)

 

그런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비단 이 책의 편집자만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리더의 자리에서 한자리 하는 사람들은 특히 더 그런 생각 뼈저리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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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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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꿈속을 잠시 거닐었네

 

<유몽영(幽夢影)>이란?

 

이 책은 청나라의 장조가 지은 잠언 성격의 글이다. 먼저 책의 제목인 유몽영의 뜻을 살펴보자. 책의 제목의 뜻을 알고 읽는다면 그 글의 의미가 더욱더 새롭게 다가올 것이니 말이다.

 

그윽한 꿈의 그림자라는 의미이다.(20) 이것을 잘 설명해주는 이 책의 209칙을 읽어보자.

 

能閒世人之所忙者, 方能忙世人之所閒 (능한세인지소망자, 방능망세인지소한)

 

능히 세상 사람이 바삐 여기는 것을 등한히 하는 자만이 바야흐로 세상 사람이 등한히 여기는 것을 바삐 할 수 있다.

 

장조는 209칙에서 세상을 유유자적하게 사는 비결을 언급하고 있다. 세인과 반대로 한()과 망()을 즐기라고 주문한 게 그 것이다. (259)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는 반대로 바쁨과 한가로움을 즐기라고 하는 것이 이 책의 지은이인 장조의 가르침이고, 권면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때에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면서 하나라도 빠지지 않게 속속들이 일어야지 하는 노심초사 같은 것, 하지 않는 것도 관건이다. 그저 하나 하나 읽어가면서 글을 즐기고, 글 속에 숨어 있는 깊은 의미를 음미하며 가는 것이다.

 

역자의 공로

 

이 책은 잠언 성격의 글이다. 해서 짤막 짤막한 글 여러편 으로 이루어 졌는데, 우리가 접하고 있는 책은 역자인 신동준의 번역과 해설이 덧붙여져 나온 책이다. 그런데 역자는 원래의 책에 두 가지를 덧붙였다.

 

그 하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몽영과 유몽속영을 모두 합친 305칙에 대해 각 칙 마다 4자성어로 된 제목을 달아놓은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제목만 봐도 해당구절의 내용을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30)

 

요즘 시대의 독자들은 한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지 모르나, 역자가 그 내용을 요약하여 4자로 요약한 것은 보통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그 문장 전체를 읽지 않더라도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다는 점이 그 첫 번째 장점이며, 두 번 째로는 그 문장을 읽고 나중에 기억할 때에 아주 요긴하다는 것이다. 말은 길면 길수록 기억하기 어려워지는 법, 그러니 요약한 4자가 기억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할 것이다.

 

이 책은 역자의 수고로 다시 태어났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역자의 수고를 거쳐 이 책은 새로운 책으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이 책 자체는 매우 간단한 글로 이루어졌다. 간단하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설명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짧은 글 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독자 - 중국 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 들로서는 그 심오한 뜻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것들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한데, 역사가 바로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역자가 그저 단순하게 그 글에 등장하는 단어라든가, 배경만 설명하는데서 그쳤다면 이 책, 그렇게 울림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역자는 사계의 권위자이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 문학에 대해 이미 정평이 나있는 분이 아닌가? 해서 그의 설명은 오히려 원래의 글보다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독자들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역자가 그런 설명을 하기 위하여 거론한 사례, 사건 그리고 글들의 제목과 저자들을 나열해보자.

논어, 노자의 도덕경, 장자, 묵자, 관자, 이탁오, 서경, 사마천의 사기, 윤휴, 송시열 등등 헤아릴 수 없다. 서양의 경우는 어떤가? 군주론이 등장하며 질 들뢰즈 또한 등장한다.

 

그러니 그런 식견(?)을 가지고 들여다 보는 글이 어디 우리가 이해하는 것하고 같을 수 있으리요? 해서 우리는 역자의 안내를 따라 이 책을 더욱 깊고 넓게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다른 경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다른 책들에 대한 이해도 훨씬 넓어진다. 예를 들어보자

논어의 태백 22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논어 해석을 접했다.

<우임금에 대해서는 내가 흠잡을 데가 없다. 음식은 보잘 것 없이 하면서도 귀신에게는 효를 다했고, 의복은 검소하게 입으면서도 예복에는 아름다움을 다했고, 궁실은 낮게 지으면서도 논도랑을 정비하는 데에는 온힘을 다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더 이상 흠잡을데가 없다.>

 

이런 논어의 태백중 한 구절이 나오게 된 것은 유몽영 135, 오무간연(吾無間然)을 설명하는 가운데 간연(間然)이라는 말을 설명하면서이다,.

 

간연(間然)은 본문에서 이렇게 등장한다.

吾無間然矣’, 한글로는 오무간연의라고 읽는다.

여기서 저자는 <‘간연은 흠잡는 것을 말한다. 논어 태백에 나온다. 해당구절이다. 우임금에 대해서는 내가 흠잡을 데가 없다. 음식은 보잘 것 없이 하면서도 귀신에게는 효를 다했고, 의복은 검소하게 입으면서도 예복에는 아름다움을 다했고, 궁실은 낮게 지으면서도 논도랑을 정비하는 데에는 온힘을 다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더 이상 흠잡을데가 없다.>

 

그렇게 역자는 논어의 태백에서 해당구절을 인용 해석해 놓는다.

거기에서 간연(間然)흠잡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럼 논어의 해당구절에 대한 다른 견해는 어떨까?

논어의 해당구절에 대해 상세한 해설을 해 놓은 책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리라. 그래도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수태는 그의 책 <새번역 논어>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間然(간연) : 이 표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으나 어떤 사람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덤이 있을 때 그로 인하여 생기는 거리감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정약용도 간()으로 보고 있다. 공자는 우에 대해서는 그러한 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수태, 새번역 논어, 226)

그래서 이수태는 우임금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런 거리감이 없다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거리감흠잡을 데는 의미가 다르지 않은가? 해서 다른 해석들을 찾아보았다.

주희는 이것을 우임금에 대해서는 내가 흠잡을 데가 없다라고 해석했다.(<주희가 집주한 논어>, 정후수 역, 218)

 

김학주는 우는 나로서는 비난할 데가 없다라고 해석하고 있다.(<논어>, 김학주 역주, 137)

 

그렇게 많은 경우 흠잡을 데가 없다, 즉 비난할 데가 없다.”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바 간연의 의미는 정확하다 볼 수 있겠다. 그렇게 내가 다른 <논어>를 읽을 때에는 관심두지 않았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니,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의 가치는 있다 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많은 책들 - 동서양의 고전들-을 역자는 이미 충분히 섭렵하고 이해했으리라. 그러기에 거기에 기반한 지식으로 이 책 <유몽영>에 등장하는 글들에 응용하는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독자들은 동양 고전들을 그저 하나의 구절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다른 글 속에서 응용 - 또는 적용- 되어 나타나는가를 볼 수 있으니, 이 책 한권이면 다른 책 몇 권의 공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은

 

그렇게 다른 경전이 여기 이 책에 녹아 들어있는 것을 살피면서 읽는 것도 이 책의 의미있는 독서법이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는 기쁨은 <유몽영>이란 제목의 뜻을 살펴보면서 말한 바와 같다. 세상을 유유자적하게 사는 비결이 이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저 유유자적하며 이 책을 읽어가는 것이다. 그래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 이 책중의 글 하나를 더 소개하련다.

 

<조용히 앉아 생각하는 정좌(靜坐)를 하지 않으면 바쁜 행보가 얼마나 빨리 정신을 소진시키는지 알 길이 없고,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범응(泛應)을 당하지 않으면 한가한 행보가 얼마나 참되게 마음을 길러주는지 알 길이 없다. >( 406, 유몽속영 24)

 

여기에서 범응(泛應)이란 말은 여러 방면으로 응수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분주한 꼴을 당하지 않으면 한가한 행보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가한 행보, 그렇게 살아가라는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경지를 깨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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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우라 - 박삼중 스님이 쓰는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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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길

 

박삼중 스님, 그 분의 몸이 이토록 힘든 줄은 몰랐다. 이틀에 한번 투석을 받아야 한다니, 안타깝다. 그 분 자신의 삶도 안타깝지만,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일이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일본 다이린지(大林寺, 대림사)의 대웅전 앞 뜰에 세워있는 비석의 글씨를 과연 그 아니었으면 누가 발견했을까?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글씨가 새겨진 그 비석의 정체는 안중근의사 유묵비이다.

 

이 비석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안중근 의사를 흠모하며 살아온 일본인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 면모가 우리에게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일단 그런 박삼중 스님의 헌신적인 노력을 밝혀 놓은 책이다. 그런 의미가 있는데 더하여 스님의 시선으로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 면모를 최대한 살려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3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첫 번 째 장은 박삼중 스님의 자전적 기록이다. 스님이 되기까지, 그리고 안중근 의사와의 만남( 유묵비를 통해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두 번 째 장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하기까지, 그리고 뒤이어 재판을 받는 과정을 안중근 의사의 일인칭 시점으로 기록해 놓고 있다.

 

세 번 째 장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받은 후에 그에 대한 주변인물들을 통해서 안중근 의사가 얼마나 존경받는 인물인지를 밝혀 놓고 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는 비통함을 토로하면서, 그 유해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밝혀 놓고 있다.

 

더하여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치는 박삼중 스님이 애써 발굴해 놓은 자료, 활동한 흔적들을 사진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중근을 위해 살다가 죽는 것이 내 마지막 숙제이자 큰 바람이다’(256)는 박삼중 스님의 절규가 소리로 끝날 게 아니라, 어떻게든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박삼중 스님은 제 2장에서 안중근 의사의 일인칭 서술로, 그의 마지막 심경을 다음과 같이 그려 놓고 있다.

 

< 바람 때문에 창문이 덜커덩 소리를 냈다. 나는 나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덮고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야겠다고.>(213)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야겠다.”

 

이제 그분이 잠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 안중근 의사의 심정이 우리 민족 모두에게 깨어 일어났으면, 그래서 더 이상 열감의 틈에서 바보같은 나라가 되지 않고 담대하게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치며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안중근 의사도 깊은 잠 속 꿈에서 코레아 우라를 다시 외치지 않을까?

 

밑줄 긋고 싶은 말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침탈하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다면 일본 또한 힘있는 나라에 의해 언제든 불행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일본 정부는 인식해야만 하오.>(160쪽)

 

<모든 사람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선뜻 행하지 못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것이 정의이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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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 황경신의 한뼘노트
황경신 글, 이인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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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 독자인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이것저것 의아한 대목을 만났는데...

 

첫째는, 글의 분류.

목차(차례)를 보면 글의 제목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그 글들을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하는지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약간의 힌트가 있다. 그림이다. 그 구분되는 부분이 그림이다. 그림이 많이 있다. 그 것으로 글의 내용이 달라진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차례를 보니, ! 이미 분류가 되어 있다. 글의 제목이 네 칼럼으로 나뉘어 배열되어 있다. 그 하나 하나가 다른 스타일의 글이다.

이런 깨달음(?)이 오히려 이 책을 읽는 재미를 주게 된다는 것, 저자는 알고 있을까?

 

둘째는, 알 듯 모를듯한 타이틀. 

그렇게 읽다가 앞으로 돌아온 김에 다시 표지까지 돌아와 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글이 눈에 뜨인다. 책의 제목 위에 이런 글이 보인다.

<71 True Stories & Innocent lies>

그러니까 ‘71개의 진실된 이야기 그리고 순진한 거짓!’

 

그런 타이틀이 달린 책이다어떤 의미일까?

거기에 대하여 저자는 일언반구 하지 않으니 별수 없이 책 속으로 들어가 찾아볼 수밖에. 그러니 저자는 불친절하지 않은가?

 

수많은 감동이 보인다.- “이거다!”

 

그렇게 의아함으로 시작한 책이지만, 도처에서 이거다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진눈깨비의 움직임을 봅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직선으로 또는 곡선으로, 소용돌이로 다시 휘감김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흔들리다 마침에 땅에 닿는 것들입니다.>(63)

 

진눈깨비를 형상화한 글이다. 진눈깨비에 대하여 이렇듯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 이가 있을까? 물론 누군가는 있겠지.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되지 못한 것 투성이입니다라며 진눈깨비를 우리 인생에 대입하여 바라본 이는 없다, 내 기억에저자는 그 진눈깨비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어느 새 진눈깨비, 다 흩어졌습니다라며 공허하면서도 애틋한 그것에 대하여 그리움을 연결시킨다.

 

진눈깨비가 간섭하는 이 세계는 온통 망설임입니다. 나는 그것이 싫지 않습니다.”

이렇게 진눈깨비를 인생의 망설임으로 또한 고통으로, 승화시켜서, ”안부를 묻기가 두렵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하는 글, 그런 글을 읽는 내 심정을 저자의 말을 빌어서 할 수 있겠다.

 

나는 창을 닫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의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무엇을, 나는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64)

 

나는 책을 덮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의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그 무엇, 가슴에 남아 있는 이 감동, 나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저자의 글은 도처에서 나를 끌어당겼다. 아니 끌어당겨 그의 문 안으로 집어 삼켰다.

 

저자가 두드리고 열어 보이는 수많은 문들

 

그제서야 저자가 여는 글에서 말한 '문'이 생각났다.

저자가 왜 문을 말했는지, 다시 여는 글로 돌아가 음미해 보았다.

 

<이길은 이렇게 끝났지만 막다른 골목은 아니다. 이제 내 눈앞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수백, 수천 개의 문들이 있다.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열어보는 일에는 언제나 망설임과 두려움이 있지만, 그 문 뒤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무엇이 발현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그제서야 나는 저자가 말한 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저자는 수많은 문을 두드려 보고 열어보며 우리에게 거기에서 발견한 것들을 글로 형상화 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차례에서 두 번째 열(칼럼)에 들어있는 글들이 그러한 '문'들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가령, ()와 령()이 만나 이루는 글자. 아니 '문'. “언제라도,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가령, 이를테면, 만약에, 마음을 굳게 먹고 누가 누군가를 찾아간다면.”(73)

그러니 령()이 가()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으니, '가령'이 된 것이다.

 

이 글, 저자의 웅숭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서는 무슨 우화처럼 보이기 쉬우나, 그게 아니라는 것. 그렇게 두 번째 칼럼에 속해 있는 글들은 모두다 한 글자가 다른 한 글자를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단어들을 선보이고 있다. 모두다 저자가 만져보고, 두드리고, 열어보아우리에게 보여주는 문- - 들이다.

 

이 책의 얼개 중 중요한 부분

 

그래서 이 책의 구조 중 특징적인 것은 두 번째와 네 번째의 글이다.

두 번째 칼럼에 속하는 글들은 한 글자가 다른 한 글자를 만나 새로운 것-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무엇이 발현하는을 만들어 낸 단어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네 번째 칼럼에 속하는 글들은 예컨대 이어지다’, ‘지키다’, ‘기대다등등 우리가 신경쓰지 않고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을 천착한다.

 

숨다를 살펴보자.

 

<난 말이야, 무서워죽겠어. 이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고 있잖아. 처음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처음, 더 이상 처음일 수 없는 그 처음엔, 이 모든 에너지와 물질이 먼지보다 작은, 원자보다 작은 무엇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잖아. 그게 펑하고 터져서 별이 되고 태양이 되고 지구가 되고 당신이 되고 내가 되었단거지.>

 

그리고 이어서 이야기는 전환을 맞이한다.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제정신일 수가 없어. 사방에서 무슨 알갱이 같은 것들이 펑, , 터져서 일 초에 한번 씩 폭발하는 기분이라고.>

 

, 여기서, 잠간 숨을 멈추고 생각해 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단어가 떠오르는가? 이 상황을 잠재울 단어는? 미리 말했지만, '숨다',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 생각을 계속 밀어내고, 그 자리를 망각으로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거야. 무시무시한 가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기만을 기도하면서 숨어있을 수 밖에.>(250)

 

그런 식으로 저자, 황경신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 아깝게 - 스쳐 지나간 단어들을 만져보고, 두드리고, 열어보아우리 앞에 보여준다.

 

그러니, 독자들은 토끼처럼 쫑긋하며 귀 기울여 듣는 수밖에

 

모처럼 깊고 시원한 물맛을 본 느낌이다. 그냥 읽어도 그만 안읽어도 그만인 글이 아니라, 마시면 마실수록 우러나오는 깊은 맛을 맛보는듯한 글. 그런 글 만나기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책에서는 하나부터 끝까지 온통 그런 맛을 품고 있으니, 이 경박한 세태 - 그저 말초적인 감각에만 호소하는 경박한 글이 넘치는 - 에 참 별일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처럼,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흡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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