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왜?
독자인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이것저것 의아한 대목을 만났는데...
첫째는,
글의
분류.
목차(차례)를
보면 글의 제목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그
글들을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하는지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약간의
힌트가 있다.
그림이다.
그
구분되는 부분이 그림이다.
그림이
많이 있다.
그
것으로 글의 내용이 달라진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차례를 보니,
아!
이미
분류가 되어 있다.
글의
제목이 네 칼럼으로 나뉘어 배열되어 있다.
그
하나 하나가 다른 스타일의 글이다.
이런
깨달음(?)이
오히려 이 책을 읽는 재미를 주게 된다는 것,
저자는
알고 있을까?
둘째는,
알
듯 모를듯한 타이틀.
그렇게 읽다가 앞으로 돌아온 김에
다시 표지까지 돌아와 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글이 눈에
뜨인다.
책의
제목 위에 이런 글이 보인다.
<71 True Stories & Innocent
lies>
그러니까
‘71개의
진실된 이야기 그리고 순진한 거짓!’
그런 타이틀이 달린
책이다. 어떤
의미일까?
거기에 대하여 저자는 일언반구 하지
않으니 별수 없이 책 속으로 들어가 찾아볼 수밖에.
그러니 저자는 불친절하지 않은가?
수많은 감동이
보인다.-
“이거다!”
그렇게
의아함으로 시작한 책이지만,
도처에서
‘이거다’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진눈깨비의 움직임을 봅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직선으로
또는 곡선으로,
소용돌이로
다시 휘감김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흔들리다 마침에 땅에 닿는 것들입니다.>(63쪽)
진눈깨비를 형상화한
글이다.
진눈깨비에
대하여 이렇듯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 이가 있을까?
물론
누군가는 있겠지.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되지 못한 것 투성이입니다”라며
진눈깨비를 우리 인생에 대입하여 바라본 이는 없다,
내
기억에! 저자는
그 진눈깨비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어느
새 진눈깨비,
다
흩어졌습니다”
라며
공허하면서도 애틋한 그것에 대하여 그리움을 연결시킨다.
“진눈깨비가
간섭하는 이 세계는 온통 망설임입니다.
나는
그것이 싫지 않습니다.”
이렇게 진눈깨비를 인생의 망설임으로
또한 고통으로,
승화시켜서,
”안부를
묻기가 두렵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하는 글,
그런
글을 읽는 내 심정을 저자의 말을 빌어서 할 수 있겠다.
“나는
창을 닫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의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무엇을,
나는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64쪽)
“나는
책을 덮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의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그 무엇,
가슴에
남아 있는 이 감동,
나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저자의 글은 도처에서 나를
끌어당겼다.
아니
끌어당겨 그의 문 안으로 집어 삼켰다.
저자가 두드리고 열어 보이는 수많은 문들
그제서야 저자가
‘여는
글’에서
말한 '문'이 생각났다.
저자가 왜 문을
말했는지,
다시
‘여는
글’로
돌아가 음미해 보았다.
<이길은
이렇게 끝났지만 막다른 골목은 아니다.
이제
내 눈앞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수백,
수천
개의 문들이 있다.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열어보는 일에는 언제나 망설임과 두려움이 있지만,
그
문 뒤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무엇이 발현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그제서야 나는 저자가 말한 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저자는
수많은 문을 두드려 보고 열어보며 우리에게 거기에서 발견한 것들을 글로 형상화 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차례에서 두 번째
열(칼럼)에
들어있는 글들이 그러한 '문'들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가령,
가(假)와
령(令)이
만나 이루는 글자.
아니
'문'.
“언제라도,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가령,
이를테면,
만약에,
마음을
굳게 먹고 누가 누군가를 찾아간다면.”(73쪽)
그러니
령(令)이
가(假)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으니,
'가령'이
된 것이다.
이
글,
저자의
웅숭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서는 무슨 우화처럼 보이기 쉬우나,
그게
아니라는 것.
그렇게
두 번째 칼럼에 속해 있는 글들은 모두다 한 글자가 다른 한 글자를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단어들을 선보이고 있다.
모두다
저자가 ‘만져보고,
두드리고,
열어보아’
우리에게
보여주는 문-
글-
들이다.
이 책의 얼개 중 중요한 부분
그래서 이 책의 구조 중 특징적인
것은 두 번째와 네 번째의 글이다.
두 번째 칼럼에 속하는 글들은 한
글자가 다른 한 글자를 만나 새로운 것-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무엇이 발현하는”을
만들어 낸 단어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네 번째 칼럼에 속하는 글들은
예컨대 ‘이어지다’,
‘지키다’,
‘기대다’
등등
우리가 신경쓰지 않고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을 천착한다.
‘숨다’를
살펴보자.
<난
말이야,
무서워죽겠어.
이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고 있잖아.
처음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처음,
더
이상 처음일 수 없는 그 처음엔,
이
모든 에너지와 물질이 먼지보다 작은,
원자보다
작은 무엇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잖아.
그게
펑하고 터져서 별이 되고 태양이 되고 지구가 되고 당신이 되고 내가 되었단거지.>
그리고 이어서 이야기는 전환을
맞이한다.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제정신일 수가 없어.
사방에서
무슨 알갱이 같은 것들이 펑,
펑,
터져서
일 초에 한번 씩 폭발하는 기분이라고.>
자,
여기서,
잠간
숨을 멈추고 생각해 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단어가 떠오르는가?
이
상황을 잠재울 단어는?
미리
말했지만,
'숨다',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
생각을 계속 밀어내고,
그
자리를 망각으로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거야.
무시무시한
가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기만을 기도하면서 숨어있을 수 밖에.>(250쪽)
그런 식으로
저자,
황경신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
아깝게
-
스쳐
지나간 단어들을 ‘만져보고,
두드리고,
열어보아’
우리
앞에 보여준다.
그러니,
독자들은 토끼처럼 쫑긋하며 귀 기울여
듣는 수밖에
모처럼 깊고 시원한 물맛을 본
느낌이다.
그냥
읽어도 그만 안읽어도 그만인 글이 아니라,
마시면
마실수록 우러나오는 깊은 맛을 맛보는듯한 글.
그런
글 만나기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책에서는 하나부터 끝까지 온통 그런 맛을 품고 있으니,
이
경박한 세태 -
그저
말초적인 감각에만 호소하는 경박한 글이 넘치는 -
에
참 별일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처럼,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흡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