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圯橋)에서
소서를 읽다.
이 책 <소서>의
정체
이 책의 정체에 대하여는 약간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素書>라는
책과 이 책 <소서>는
분명 다르다.
(두
책을 구분하기 위하여 원래의 소서는 素書로
하고,
이
책 소서는 <소서>로
표기함)
원래
素書라는
책은 황석공이 이교(圯橋)에서
장량에게 전해준 책이라 한다.
素書가
장량에게 전해지게 되는 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책의 14쪽을
참고하기를...
그렇게 전달이 된 책이 바로
素書이다.
장량이
素書를
읽고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창건하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素書의
성가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素書
그
자체는 1,336자밖에
되지 않은 얇은 책이지만 간략한 글귀에 인간심리뿐만 아니라 세상만물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아놓았다.
그런데 그 뒤
素書는
전해지지 않았는데,
장량이
素書를
전하지 못한 사연도 기구하다.
책의 겉장에는 이런 신비한 경계의
말이 적혀 있다 한다.
<신성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하지 말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을 받을 것이다.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이를 전하지 않는 사람 또한 하늘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5쪽)
그래서 장량은 황석공으로부터
素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장량은
전해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무덤에 묻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뒤로 다시 발굴이 되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는데, 素書를
인문연구모임인 문이원에서 번역하여 우리들 손에 <소서>라는
제목으로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책,
누가 읽어야
하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가지는 현묘함은 다음과 같은 장상영(장량의
후손)의
말에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이 도(道)가
아니고,
신(神)이
아니며 성(聖)도
아니고 현(賢)도
아닌 사람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9쪽)
그럼,
도,
신,
성,
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유(有)인
듯도 하고 무(無)인
듯도 한 것을 도(道)라
하고,
유(有)가
아닌 듯도 하고 무(無)가
아닌 것도 한 것을 신(神)이라
하며,
가졌으면서도
가지지 않은 듯한 것을 성(聖)이라
하고,
가지지
않았으면서도 가진 듯한 것을 현(賢)이라
한다.”(9쪽)
아,
과연
이러한 경지에 이른 자가 누구일까?
“이
네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을 줄줄 왼다해도 몸으로 행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니,
과연
나는 이 책을 읽을 자격이나 있을지?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첫 번째 글에 나를 위로하는
글이 보여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소서를 받을만한 인재는 아닌 것 같으니 보지 말자고 체념하고 책을 덮어야 할까?
아니다.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타협하고자 한다.
소서를
잘 읽어내고 인재가 되고자 하는 흉내라도 내고자 노력한다면 적어도 장량이 벌떡 일어나 땅을 치며 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30쪽)
그러니 이 책을 펴낸 자도 나같은
고민을 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 책을 풀어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생각으로 이 책을 읽어주기를 소망했으리라.
이 책은
비급(秘笈)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비결(秘訣),
비급(秘笈)이
결코 아니다.
무협지를 보면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아간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주인공에게 어느 날 도사가 홀연히 나타나 비급을 전해주고
사라진다.
그
비급을 받은 주인공,
그
비급을 수련하기 몇 년이 채 안되어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된 무술 실력을 가지게 되는데.....드디어
강호에 나타나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그런 무협지의 비급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시작을 살펴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
장,
<夫道,
德,
仁
,義
,
禮,
五
者 一體也>
“무릇,
도와
덕,
인,
의,
예,
이
다섯 가지는 한 몸이다.”
(29쪽)
이게 바로 이 책의 첫
구절이다.
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바,
도로
시작하여 인과 의를 논하고 예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찌
무협지의 비급이 되겠는가?
장량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것이 사실이라면,
이
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부터,
기본부터
닦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신기한
도술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 책의 요체가 있다.
이 책의 주요 요지
따라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道不可以無始
(도불가이무시)
도에는
근원이 없을 수 없다.
道不可以非正
(도불가이비정)
도는
바르지 않으면 안된다,
志不可以妄求
(지불가이망구)
뜻은
분에 넘치게 추구하면 안된다.
本宗不可以離道德
(본종불가이이도덕)
근본과
지향은 도와 덕을 떠날 수 없다.
道而行之者義也
(도이행지자의야)
의는
좇아서 행해야 할 것이다.
安而履之之謂禮
(안이이지지의례)
예는
즐기며 한 걸음씩 따라 실천해야 한다.
素書는 6개
장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각장마다
기본 되는 개념을 적어놓았다.
위의
내용은 그것을 옮긴 것이다.
이교(圯橋)의 현대적
적용
이 책
<소서>를
펴낸 편저자 문이원은 서문에서 재미나는 비유를 한다.
바로 황석공이 장량을 만나
素書를
전했다고 전해지는 이교를 새롭게 풀어낸 것이다.
<이교(圯橋)는
물리적 장소라는 의미를 넘어 매우 다층적이고 함축적인 상징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장량은
이 책으로 한낱 건달에 불과했던 유방에게 한나라의 황제라는 자리를 놓아주었으며,
베일에
싸인 인물인 황석공은 이 다리를 건너 실존인물인 장량을 만남으로써 설화와 역사를 연결해 낸다.>(16쪽)
그렇다면 우리 이 책
<소서>를
읽는 현대의 독자들은 이 책으로 장량이 배웠던 지혜,
나라를
세운 그런 지혜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책이 바로 황석공과 장량이 만났던 이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