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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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위 역할 제대로 하고 있나? 

 

이어령 교수는 이 책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은 내셔널, 로칼, 글로벌이라는 세 가지 공간을 살아갈 미래의 사람들에게 바치는 동화이다. 또한 어린 시절 즐겁게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겨루던 추억의 벗들에게 바치는 판타지이다.> (11)

 

가위바위보! 우리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즐겁게 놀던 시절, 무엇을 정하려고 할 때, 술래를 정한다거나, 차례를 정할 때 흔히 쓰던 방법이 바로 가위바위보였다.

 

세 명, 혹은 두 명도 좋았다. 서로를 향해 매서운 눈초리로 친구의 머릿속에 들어있을 가위바위보를 가늠해 보던 일이 기억나지 않는가? 가위바위보! 힘차게 소리 지르며 손바닥을 뻗어내며 만들어가던 가위, 바위, 또는 보. 그 손을 바라보는 그 순간, 서로간에 희비의 쌍곡선이 형성되던, 그 가위바위보 말이다.

 

이어령 교수는 그 놀이를 가지고 문명론을 풀어내고 있다.

가위바위보 문명론, 간단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무언가를 결정할 떼, 서양 아이들은 동전을 던지지만 아시아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한다. 앞이냐 뒤냐 그 단면만으로 결정하는 동전은 실체이며 독백이다. 하지만 상대의 손과 만났을 때 의미가 생기는 가위바위보는 관계이며 대화이다.>(9)

 

이 문명론의 가치

 

원래 가위바위보의 원형은 중국의 도교사상에서 비롯되고, 그것이 장사하는 상인들 틈에서 숫자놀이 게임인 수권으로 발전, 나가사키 항을 통해서 일본으로 수입된다. 그 뒤 이 권문화가 온 일본에 퍼져 여러 가지 종류를 낳고 위로는 사무라니, 아래로는 노동 층에 이르기까지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가위바위보의 기원을 찾아서 서구문명과 한중일 공유가치를 밝히는 작업을 가위바위보 문명론에서 펼치고 있다.

 

그래서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이러한 가위바위보 문명이 현시점 - 아시아가 중국 또는 일본이 패권을 다투는 각축장이 되고 있는 이 시점- 에 평화의 문명론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항 대립만 있는 동전 던지기 같은 서구식 게임으로는 과거의 중화주의, 대동아주의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국제적 상황에서 저자는 평화적 순환이 가능한 가위바위보 문명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가위바위보 게임의 운영을 살펴보면, 반은 닫히고 반은 열린 가위가 있기에 주먹과 보자기는 대결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위는 가위를 이기지만, 가위는 보자기를 이긴다. 또 보자기는 하위가 아니라, 가위를 이긴 바위를 이긴다. 그러니까 이 게임은 돌고 돈다. 최강자가 없는 구조이며, 최약자가 없는 구조인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주장하기를, 가위바위보 문명에서는 그 정상에 오르기 위하여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최하위에 머무르는 바람에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는 불행한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한국, 중국, 일본의 대결에 적용하고 있다.

가위바위보 게임처럼 상생하는 문명이라면 한중일 삼국이 사이좋게 공존의 장을 펼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삼국의 지리적 조건으로 풀어본 가위바위보 문명,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삼국의 지리적 조건으로 풀어본 가위바위보 문명, 또한 흥미를 자아낸다.

 

중국 대륙의 지리적 조건은 가위바위보의 에 가깝다. 손을 최대한 펼친 형태가 대륙의 이다. 일본은 대륙의 손바닥과 대립되는 주먹이다. 여유보다는 긴장, 확대보다는 축소지향이다. 그렇게 중국과 일본이 각각 보와 바위로 대립하고 있는 사이에 한반도가 위치한다.

요컨대, 동아시아의 대륙 - 반도 - 섬이라는 자연적인 지리적 조건은 중국은 보, 일본은 바위, 그리고 한국은 가위라는 가위바위보 코드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의 가위 역할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가위로 존재하는 한국의 밸런스 기능이다.

가위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면 동아시아는 이항대립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원형적인 순환과 상생의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역할론은 제기하는 가위바위보 문명론, 일본이 침략야욕을 다시 한번 돋구고 있는 이 수상한 시점에서 이어령 교수의 가위바위보 문명론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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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세상을 바꾸는 통찰의 순간들
윌리엄 B. 어빈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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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세상을 바꾸는 통찰의 순간들

 

이 책의 내용은 책 제목인 <아하, 세상을 바꾸는 통찰의 순간들> 그대로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종교, 도덕, 과학, 수학, 예술에서의 통찰의 그 순간들을 담아 놓았다.

종교에서의 통찰에서 C.S 루이스의 경우부터 시작하여 악마의 시를 쓴 루시디까지, 많은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통찰의 순간들을 수집하여 기록해 놓고 있다.

 

통찰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통찰이란 단어의 개념을 밝히고 있지 않다. 그래서 먼저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통찰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2 . <심리>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여 장면의 의미를 재조직화함으로써 갑작스럽게 문제를 해결함. 또는 그런 과정. 쾰러는 학습이 시행착오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에 의하여 일어난다고 보았다. (naver 국어사전)

 

그러니 이 책에서 사용하는 통찰이란 말의 의미는 두 번째 의미로 쓰인 것이다.

 

통찰에 대한 저자의 태도

 

이 책은 통찰의 존재와 근거를 철저하게 탐구한다.

일례로 종교적인 통찰의 경우, 그는 통찰의 순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말한다. 그리고 그 통찰은 철저한 검증을 요한다.

예컨대 저자는 환각이 종교적 계시로 해석되는 경우를 꼼꼼하게 짚어보고 있다.(46쪽 이하)

 

그런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리는데, 종교적 통찰의 경우이다.

신적인 존재가 신호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냈다고 결론짓는다.(41)

비전(VISION) 은 신이나 신적을 존재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말한다. (42)

비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형태는 당사자가 신적인 존재를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그 존재의 말을 듣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을 읽으면서 - 물론 읽을 때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읽고 나니 - ‘이렇게 읽을 것을하는 후회가 들었기에 적어 본다.

 

먼저 종교적 통찰과 기타 나머지 통찰은 구분하여 읽자.

왜냐면, 종교적 통찰의 경우와 다른 나머지 통찰의 경우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기에 그렇다.

그것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종교적 통찰의 순간은 다음 장들에서 탐구할 통찰의 순간들과는 다르다. 종교적 게시를 경험할 때는 감각적 요소를 가진다. 종교적 계시를 경험할 때에는 무엇인가를 보거나 듣는다. 또한 종교적 계시는 느닷없이 주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과학자, 수학자, 예술가가 얻는 통찰은 그렇지 않다. 도덕적 현현도 마찬가지이다. >(76)

 

그러니, 종교적 통찰과 기타 분야의 통찰은 성격이 다르므로, (생각을) 구분하여 읽을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읽어가는 도중에 개인적인 통찰과 공동체적인 통찰, 즉 세상을 바꾸는 통찰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통찰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생각해보면서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순간들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은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할 것인가, 를 생각해보면서 읽는다면, 그 통찰의 순간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어떤 것일까?

 

노예제도에 대한 통찰의 순간을 겪은 토머스 클라크슨의 경우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생이었던 그는 노예제도의 도덕적 지위를 주제로 한 논문 공모에 참여했다. 그는 그 논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노예제도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노예제도가 얼마나 혐오스러운지도 알게 되었다. 그는 논문을 완성했고, 그 결과 경쟁자들을 제치고 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수상으로 끝이 난게 아니었다. 그에게 통찰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 때 문득, 그 논문의 내용이 참이라면 이제 누군가가 그 비참함을 끝까지 응시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12)

 

저자는 덧붙인다.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오래 지나지 않아서 클라크슨은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는 영국 노예제도 폐지운동에 뛰어 들었고 곧 주도자가 되었다.>

 

통찰은 어떤 식으로 시작되었든, 클라크슨의 경우처럼 끝나야 된다.

 

그래서

 

이 책 맨 앞장에는 저자의 헌사가 있다. 제이미에게 보내는 헌사다.

수많은 통찰의 순간들을 선물해준 제이미에게

 

, 독자인 나는 저자에게 그 말을 그대로 해주고 싶다.

수많은 통찰의 순간들을 그렇게 모아서 선물해주다니,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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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주는 리더의 소통법 - 성공한 리더들의 실전 소통 기술
케빈 머레이 지음, 허수빈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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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주는 리더의 소통법

 

소통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소통을 모두가 입에 달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통부재의 시대다. 애는 쓰지만,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으니, 소통은 요원할 수밖에.

 

또 그런 안타까움을 앞에 내걸고 많은 사람이 소통을 이야기 한다. 백약이 무효인 이 병에 저마다 처방을 내 놓는 격이다. 자기 계발이라는 주제에 슬슬 지겨워지는 시점에 이제 또 하나의 호재가 등장한 것인가? ‘이제 소통이다!’

 

그러한 때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그러한 필요성을 절감한 저자가 아주 적확한 방법을 골라 제시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리더가 자기딴에는 한다고 소통을 시도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이 받아들일 때에는 다르다, 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니 그 전제가 참신한 것이다. 그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저자는 확실하게 알고 이 책을 시작한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감응을 주는 소통법이다.

 

<위대한 소통은 단순히 말을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교감하고 서로 연결하며, 참여를 이워야 가능하다. 리더인 당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관건이고, 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심어주느냐에 달렸다. 나홀로 독백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하는 것이 대화이며, 감음을 준 듯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에게 감응을 주는 게 리더의 소통이다.> (357)

 

그러한 감응을 주는 소통을 위해 저자는 몇 가지를 제시한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리더십에 감성을 접목하라이다.

감성을 접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사람관리가 전부다라면서 리더십의 대상이 되는 자, 즉 소통의 상대방이 되는 자를 중심에 놓도록 권한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대화에 임할 경우, 소통은 그냥 말을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 감응을 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잘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도표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데, 플로우 차트를 이용하여 과연 소통이 상대방을 중심으로 하여 잘 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차트이다.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항목들을 순서에 따라가면서 체크하고, 잘 되지 않는 경우에 다시 점검하고 다시 시행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정확히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상대가 얻는 이점은 무엇인가?

동기 부여를 위한 행동변화가 필요할까?

상대에게 무엇을 알려주어야 하는가?

최상의 접근법은 무엇인가?

반응은 어떠한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왜 그런지 분석하고 계획을 수정하여 다시 시도하라.

 

맨 마지막 항목은 저자가 괄호로 하여, 위에 언급한 나머지 항목들을 철저하게 시행하는지를 점검하도록 촉구하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중심에 두고, 소통을 시도한다면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응에 기초한 감응있는 소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 밖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바, 리더십의 최고봉인 최상의 제왕이란 백성들이 그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말이 실감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감응을 주는 소통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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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처럼 여행하기
전규태 지음 / 열림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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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하나는 익숙한 여럿을 일깨워준다

 

여행을 떠난다.

전규태, 한국 문학의 대문호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가 여행을 했다는 책을 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한 여행이다.

 

그는 삼 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췌장암 선고를 받는다. 의사가 말하기를, 차라리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 객사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조언을 한다.

그런 조언을 듣고 드디어 여행을 떠나, 그 길이 십여 년간 계속되었다.

( 25쪽에 의하면 주치의 말대로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난지 벌써 스무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여행길에서 그는 생명이 어떻게 죽음을 이기는지, 마음이 어떻게 몸을 지배하는지를 체험한다. 그 기록이 바로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인생역정이 안타깝다.

 

말못할 사정까지 더해져, 정처 없이 떠돌아 호주에 정착하여 십여 년을 칩거하다가, 잠시 귀국한 사이에 호주에 있는 재산이 소실되었다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행을 하면서 그 아픔 - 육신과 마음 -을 감내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이야기이니, 어찌 그 글이 범상하겠는가? 글마다 문장마다 그의 절심함이 묻어나서, 읽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행의 시점이 어느 때인지, 그럴 말 못할 사정이 무엇인지, 때로는 앞에서 언급을 해 놓고는 뒤에 아무런 말도 없이 글이 끝나는 것들, 그래서 필자의 사정을 모른 채, 그저 막연하게 추측 - 짐작 - 으로 글을 이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행을 하면서 또다른 자신을 만났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읽는 독자로서는 여행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서 여행으로 비유되는 인생의 삶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디로 가느냐?’는 여행철학을 어디에서 왔는가?’하는 인생 철학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니 이 여행기는 그의 철학기행인 셈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 - 느낌-을 기록한 여행기이다. 여행감()이라 할까? 아니면 여행감()을 기록한 것이라 할까? 1부에서 2부까지가 거기에 해당되는데, 여기에서 그는 여행의 구체적인 행선지나, 그 여행지의 풍경을 그리는 대신에 여행하면서 느끼는 생각을 기록하는 형태로 글을 쓴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여행의 목적지는 밝혔으나, 그래서 그 곳으로 가기는 하는데, 그 목적지가 글의 주가 아니기에, 언뜻 생각하면 글이 제대로 이어지거나 끝난 것 같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예컨대, 60 쪽 이하에 수록된 메리다의 밤이 미처 끝나지 않는 글 같은 경우이다.

또한 101 쪽 이하에 수록된 기차에 이르다에서는

 

시에나에서 아시시로 가고 있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 글에서는 아시시에 대한 정보라든가, 거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말하는 대신에 가는 동안에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여행기라기보다는 여행을 매개로 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한 것이다.

 

또 다른 것은 본격적인 여행기 성격을 띈 기록들이다.

이 책에서 제 3부가 거기에 해당되는데, 여기에서는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페루, 아라비아의 사막 어딘가를 여행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건진 아포리즘

 

위에서 이 책의 내용을 분류하기를 여행감()과 여행기로 해 보았는데, 특기 전반부인 여행감()에서 그가 여행을 하면서 건져낸 생각들은 인생에 귀한 교훈으로 읽혀진다.

 

여행이란, 여행자에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85)

 

발레리가 포착해 낸 것은 어느 고장에 사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추상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여행자이제부터 일상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여행자가 전혀 별도의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110)

 

낯선 하나는 익숙한 여럿을 일깨워준다. (129)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하나만 꼽으라하면, 당연 이 문장이다.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낯선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인데, 낯설음은 그냥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의 나를 던져버리고, 낯 선 곳에서 낯선 것을 보아야 비로소 자기 안의 낯선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낯설음이 내 안에 존재해 있는 수많은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도록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그렇게 만드는 것이 여행이며, 또한 인생 그렇게 익숙한 것에 치지 않고 새롭게 바라보도록, 일깨워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책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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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국과 일본,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 이야기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김윤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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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역사, 한 권으로 맛보기

 

라면의 역사, 한 권으로 정리하기.’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그 쯤 되겠다.

우리가 즐겨 먹는 라면, 이 책의 표현에 의하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생애 최초로 시도해 보는 요리’(255)인 라면이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삼양라면의 고 전중윤 회장이 일본의 묘조 식품의 오쿠이 사장을 만나, 라면을 도입하게 되는 전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전회장의 마음을 새기고 싶다,

625 동란 이후 우리 국민들이 배를 곯던 모습, 그래서 꿀꿀이죽에 목숨을 걸었던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전회장이 평생을 걸고 이루어야 할 일,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하여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찾아내는일에 전생애를 걸어, 결국은 라면을 이 땅에 도입하며 주린 배를 채워주게 된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결국 일본 묘조식품의 오쿠이 사장을 만나게 되는데, 그 자리가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격언이 맞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오쿠이 사장을 전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의 마음을 읽는다.

오쿠이 사장이 제시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두 라인 설치비용은 모두 합해서 천만엔, 환율로 계산하면 27천 달러에 구입......그리고 삼양식품이 독자적으로 생산이 가능할 때까지 기술 지원은 우리 묘조 식품이 책임을 지고 지도해드리겠습니다. 당연히 그건 무상 제공입니다.” (225)

 

아마 그런 조건은 전무후무한 것이리라.

그런 파격적인 조건에 의해 기계와 기술이 도입되었고, 그래서 생산된 라면이 공급되었을 때에 가격이 우리 돈으로 10원이었다. (264, 라면 가격의 변천사)

 

당시 커피 한잔에 35, 영화가 55, 담배는 가장 대중적인 것의 가격이 25원이었으니, 10원이라는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묘조 식품이 그렇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제공하게 된 것을 바로 전회장의 마음을 오쿠이 사장이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회장이 말한 바, 에도 시대 일본과 조선의 관계에 큰 역할을 한 아메노모리 호슈라는 사람의 ()과 신()의 교류’(214)가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전회장이 한 달 가까이 일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하네다 공항을 통해 귀국하기 위하여 비행장에 도착한 순간이 아닐까 한다.

그 때 오쿠이 사장의 비서가 헐레벌떡 달려와 편지 봉투 한 장을 내민다.

거기에는 영업기밀이라면서 보여주지 않고, 결코 알려줄 것 같지 않은 스프 배합표가 들어있었다.

오쿠이 사장이 전회장의 인격을 다시 한번 확인한 다음에. 그 인품을 믿고 건네준 것이다.

배고픈 서민들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도록, 하라는 당부와 함께.

 

이 책을 쓴 저자는 일본인 무라야마 도시오이다. 일본인이 그가 일본과 한국 양국을 돌아보면서, 라면이 어떻게 일본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해서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올게 되었는지를, 아주 담담하게 어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록한 것이다. 음식의 역사를 아주 담백한 맛을 내도록 기록한 책, 라면의 기록으로는 아주 안성마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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