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처럼 여행하기
전규태 지음 / 열림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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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하나는 익숙한 여럿을 일깨워준다

 

여행을 떠난다.

전규태, 한국 문학의 대문호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가 여행을 했다는 책을 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한 여행이다.

 

그는 삼 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췌장암 선고를 받는다. 의사가 말하기를, 차라리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 객사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조언을 한다.

그런 조언을 듣고 드디어 여행을 떠나, 그 길이 십여 년간 계속되었다.

( 25쪽에 의하면 주치의 말대로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난지 벌써 스무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여행길에서 그는 생명이 어떻게 죽음을 이기는지, 마음이 어떻게 몸을 지배하는지를 체험한다. 그 기록이 바로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인생역정이 안타깝다.

 

말못할 사정까지 더해져, 정처 없이 떠돌아 호주에 정착하여 십여 년을 칩거하다가, 잠시 귀국한 사이에 호주에 있는 재산이 소실되었다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행을 하면서 그 아픔 - 육신과 마음 -을 감내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이야기이니, 어찌 그 글이 범상하겠는가? 글마다 문장마다 그의 절심함이 묻어나서, 읽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행의 시점이 어느 때인지, 그럴 말 못할 사정이 무엇인지, 때로는 앞에서 언급을 해 놓고는 뒤에 아무런 말도 없이 글이 끝나는 것들, 그래서 필자의 사정을 모른 채, 그저 막연하게 추측 - 짐작 - 으로 글을 이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행을 하면서 또다른 자신을 만났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읽는 독자로서는 여행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서 여행으로 비유되는 인생의 삶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디로 가느냐?’는 여행철학을 어디에서 왔는가?’하는 인생 철학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니 이 여행기는 그의 철학기행인 셈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 - 느낌-을 기록한 여행기이다. 여행감()이라 할까? 아니면 여행감()을 기록한 것이라 할까? 1부에서 2부까지가 거기에 해당되는데, 여기에서 그는 여행의 구체적인 행선지나, 그 여행지의 풍경을 그리는 대신에 여행하면서 느끼는 생각을 기록하는 형태로 글을 쓴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여행의 목적지는 밝혔으나, 그래서 그 곳으로 가기는 하는데, 그 목적지가 글의 주가 아니기에, 언뜻 생각하면 글이 제대로 이어지거나 끝난 것 같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예컨대, 60 쪽 이하에 수록된 메리다의 밤이 미처 끝나지 않는 글 같은 경우이다.

또한 101 쪽 이하에 수록된 기차에 이르다에서는

 

시에나에서 아시시로 가고 있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 글에서는 아시시에 대한 정보라든가, 거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말하는 대신에 가는 동안에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여행기라기보다는 여행을 매개로 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한 것이다.

 

또 다른 것은 본격적인 여행기 성격을 띈 기록들이다.

이 책에서 제 3부가 거기에 해당되는데, 여기에서는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페루, 아라비아의 사막 어딘가를 여행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건진 아포리즘

 

위에서 이 책의 내용을 분류하기를 여행감()과 여행기로 해 보았는데, 특기 전반부인 여행감()에서 그가 여행을 하면서 건져낸 생각들은 인생에 귀한 교훈으로 읽혀진다.

 

여행이란, 여행자에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85)

 

발레리가 포착해 낸 것은 어느 고장에 사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추상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여행자이제부터 일상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여행자가 전혀 별도의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110)

 

낯선 하나는 익숙한 여럿을 일깨워준다. (129)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하나만 꼽으라하면, 당연 이 문장이다.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낯선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인데, 낯설음은 그냥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의 나를 던져버리고, 낯 선 곳에서 낯선 것을 보아야 비로소 자기 안의 낯선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낯설음이 내 안에 존재해 있는 수많은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도록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그렇게 만드는 것이 여행이며, 또한 인생 그렇게 익숙한 것에 치지 않고 새롭게 바라보도록, 일깨워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책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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