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에게 제대로
걸려들었다.
이 책은
?
꾼다운 이야기꾼에 한 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다더니,
바로
이 책이 그거다.
이야기꾼에 그냥
걸려들었다.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
읽은 다음에야 겨우 헤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것을 각오하고 이 책,
집어
들어야 한다.
저자는 천생
이야기꾼이다.
이야기를 설렁설렁 하는 것
같기만,
독자들을
아주 어르고 눙치는데 도사급이다.
이 책의 내용
이 책의 제목은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지만,
원제는
그렇지 않다.
<我不是潘金蓮>이
원제이다.
즉
<나는
반금련이 아니다>이다.
그 말은 주인공의
항변이다.
남편
–
전
남편이 되어버린 –
진옥화가
화가 나서 한 말인,
‘당신이
리설현이야?
어째서
나는 당신이 반금련 같이 느껴지지?’(103쪽)
라는
말에 대한 주인공의 항변이다.
나는
반금련처럼 악녀가 아니다,
라는
것.
결국
(살아있는)
남편에게
한 말이니,
반금련처럼
남편을 죽였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못하고,
그저
악녀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니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라는
제목은 실상 이 소설의 내용을 포괄하지 못하는 것이다.
원제가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래
놓고 옆에 간단한 부제를 붙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주인공은 결코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닌데도 굳이 그런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이 책의 줄거리
이 책의 줄거리는
재미있다.
그리고
너무 간단하다.
주인공인 중국 여인 리설현은 남편
진옥하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이를 임신한다.
중국에서는
둘째 아이는 낳는 것이 불법이다.
그래서 남편
진옥하는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둘은 위장 이혼을 한다.
그런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남편,
진옥하가
서류상 이혼을 한 뒤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서류상으로만 이혼을 했는데,
이게
진짜 이혼이 된 것이다.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제 리설현의 길고 긴 복수혈전이 펼쳐진다.
리설현은 부부의 이혼이 가짜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소송을 하고,
그
소송에서 패소하자,
그
재판장을 고소하고,
또
고소하고,
.......그렇게
고소는 끝없이 이어진다.
그 뒤로 벌어지는
사건은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깨알만
한 일이 결국 이렇게 수박만 해졌다네.
개미
한 마리가 코끼리로 변한 셈이지.
이
농촌 여성의 이혼문제는 원래 그 남편과 관련된 일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일고여덟 사람을 고소하려고 해.>
(145쪽)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인물들
리설현을 두고 여러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인물들이 있다.
모두다
중국의 인물들이라,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필요하다.
소백채(小白菜)
- 145쪽,
175쪽
:
청나라
때의 유명한 재판으로 남편을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다.
반금련(潘金蓮)
- 103쪽
:
소설
<금병매>의
주인공으로,
정부인
서문경과 짜고 남편인 무대를 독살한다,
악녀의
대명사.
두아(竇娥)
- 106쪽
:
원나라의
희곡 <두아의
원한>의
주인공으로, 젊은 과부 두아가 시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뒤,
그
원한을 법정에 호소하여 갚는다는 이야기.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 리설현은 반금련이 아니고,
소백채
또는 두아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그녀가 리설현이지 반금련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차라리
리설현이 아니라 두아였다.>(197쪽)
<깨알만
한 일이 결국 이렇게 수박만 해졌다네.
개미
한 마리가 코끼리로 변한 셈이지.
이
농촌 여성의 이혼문제는 원래 그 남편과 관련된 일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일고여덟 사람을 고소하려고 해.
그
시의 시장에서 자기 현의 현장과 법원장,
판사
등이 모두 연루되었지.
정말이지
오늘날의 소백채라고 할 수 있네>
(145쪽)
재미있는 이유
반전에 반전을 기대하면 안
된다.
반전?
물론
반전이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반전에서 오는 재미보다는 일이 되어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모두 재미를 느끼게 된다. 소위 말하는 '깨알같은
재미'.
고소의 대상이 되는 현장과
법원장,
판사
등은 물론이거니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나던 조대두에 이루기까지,
그들은
인간이 자기들의 이익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산 증인으로 등장하여,
이
소설을 재미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이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런데 리설현의 고소 사건을
둘러싸고 고소당한 사람들,
그리고
관련자들이 모두가 머리를 짜내고,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해 봐도 리설현의 고소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독자들도 여기에서 막막해
한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사건 앞에서,
이게
어떻게 풀릴까,
하는
조바심마져 느낄 정도이다.
그런데 작가는 멋지게
해결한다.
그 남편을 죽이는
것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모든 고소의 의미가 사라져 버리니,
그
사건은 보기 좋게 풀린 셈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하여,
주인공이
한 마디 할만도 하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작가가
죽인 것이다.
그러니
주인공이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일 것이다.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든 두가지 생각
하나는,
혹시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한
가지 억울한 일을 가지고 20년
동안이나 풀지 못하여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그
둘은,
이
책에서는 줄거리와는 별도로,
중국의
관료 세계를 잘 묘사해 놓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런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 주인공의 사건을 벌여놓았을지도 모를 정도이다.
그런데 다시 한걸음 생각을 더
나가본다면,
그게
반드시 중국에 국한되는 일일까?
관료주의의
병폐는 비단 중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만연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이 소설을 더욱더 현장감이,
현실감이
넘치는 소설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