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땅에 불을 피우고 사람을
모아라 .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현실을 넘어
저자는 이 책에서 기묘한 작업을
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른가,
같은가?
다르다면 그 두 개의 영역은 언제
같아질 수 있을까?
차별이 횡행하고 배타적인 이 땅의
현실을 벗어나 우리는 언제 이상향이라고 생각되는 그 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은 아닐지라도 부분적이나마 해답은 된다고 본다.
현실은 고달픈 이 땅을
말함이고,
이상이라
함은 저자가 만들어 놓은 ‘경계’를
말함이다,.
‘경계’란
어떤 곳인가?
이
책에서 저자가 설정해 놓은 개념인 경계란 다음과 같은 곳이다.
(57쪽)
망자가 저승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공간을 그렇게 부른다.
그런
경계(또는
구천)이라고
부르는 곳은 망자가 가장 바라던 이상향의 모습으로 구현되곤 했다.
현실이
지독히도 차별적이고 배타적이었던 반면에 망자가 차사들을 따라가지 전까지의 한정된 경계에서의 시간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하고
자비로웠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 은우가
망자들의 경계에 들어가서 살펴보는 그들의 ‘경계’는
망자가 이 땅에서는 현실의 제약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이상향에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한시적이지만...
그런 이상향을 저자는 우리들에게
보여주면서,
이
땅에도 그런 이상향이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이 이 소설의 주제라 할 수 있다.
저자가 만들어 놓은
장치,
이능(異能)
그 현실이 이상향으로 전환되기
위해서,
저자가
만들어 놓은 장치 두 가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 장치는 바로 주인공 은우에게
주어진 ‘이능’이라는
초능력이다.
은우에게 주어진
초능력,
‘이능(異能)은
무엇일까?
은우가 가진 이능은
‘죽은
자가 완전히 저승에 속하기 전의 경계로 들어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의 사연을 들어주는 것’(160쪽)이다.
그 이능을 통하여 은우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향이 어디 인지를 보여준다.
은우는 그 능력을 활용하여 소설속의
사건들은 풀어나가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저자가 최종적으로 만들어 놓은 그 곳으로 다가간다.
그것은 바로 이 소설의 숨어있는
주제인 묵가(墨家)라는
사상이다.
두 번째
장치,
묵가(墨家)
“메마른
땅이라도 불을 피우고 사람이 모이면,
그것이
마을이 됩니다.”(390쪽)
저자는 이런 말로 묵가를
소개한다.
먹
‘묵(墨)’
자를
파자(破字)하여
그 뜻을 헤아린 것이다.
먼저 땅은 흙
토(土)이다.
땅이니
당연히 맨 아래에 위치한다.
그
다음 불 ‘화(火)’는
땅위에 놓이는데,
이
화 자는 다른 글자 밑으로 가게 되면 이런 모습으로 변한다.
(....) 마을은
마을 리(里),
그렇게
토(土)와
화(火)가
합하여 마을 리(里)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모두 합한 글자가 바로 먹 ‘묵(墨)’이다.
묵(墨)자가
왜 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일까?
바로
묵가(墨家)를
말하기 위함이다.
묵자(墨子)가
주창한 묵가 사상.
묵가는 이미 오래 전에 사멸되다
싶이한 사상으로 치부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심하다,
유가의
모진 핍박을 받아 입 밖에 내기만 해도 핍박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맹자가
'아비를 몰라보는 금수의 책'(399쪽)이란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리라.
이런 묵가를 꺼내어 소설에
체화하다니, 묵가를
이런 식으로 형상화한 소설,
신기한
일이다.
지금껏 묵자를
읽어왔고,
묵가의
사상이 이 땅 -
현재는
물론이거니와 예전에도 -
에
펼쳐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렇게 나타나게 하다니!
고마운
일이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도처에서 묵가를
설명하고,
그
사상이 현실에 적용되어야 할 최적의 정치임을 역설하고 있다.
그 묵가가 만들어 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이 소설에서 뜻밖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대비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기
한 마을이 있다.
그
마을은 모두 글 잘 읽는 선비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여기 또 한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는 글 잘 읽는 이는 드무나,
쇠를
잘 다루는 대장장이도 있고,
힘
센 장사도 있고,
셈을
잘하는 산술가도 있으며,
별을
읽는 천문가도 있으며....
싼
값에 좋은 물건을 들여오는 영민한 상인도 있다.>(405쪽)
당신이라면 어떤 마을에서 살고
싶은가?
또 선대왕과 하월군의 대화를
통해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401-
402족)
<묵자는
가난한 백성이 보기에는 참으로 이상적인 사상이나,
가진
자들에게는 더없이 잔인한 사상이구나.
...
묵자는 수령이란 잘 다스리는 이가
아니라 잘 살피는 이,
뜻을
모으는 이라 하였습니다.
신화와 백성이 약속하는 정치가
되어야지요.
그 약속을 잘 이끌어내는 것이
임금의 자리여야겠지요.
입 밖으로 내고
보니,
더
두렵습니다.
나도
그렇다.
이
사상이 나를 변화시킬까봐,
더욱
두렵다.>
그렇게 왕과 왕자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
묵가는
그렇게 가진 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조금
깨친 자들조차 그 사상이 가지고 올 파장에 대해 걱정인 사상이었으니,
역으로
이 땅에 그 사상이 펼쳐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책, 그래서
슬프다.
그래서 저자는 이 두
장치,
'이능'과
'묵가'를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시대를 조선의 어느 때인가로 하여,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케이스 스타디하는 식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
읽고
나니,
안타까움이
어린다.
이
소설에서처럼 뜻있는 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못하는가,
하는
마음에..
그래서 저자가 책 속에서 묵가의
그런 사상이 펼쳐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다음과 같은 말은 더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더 슬펐다.
현실은
아직 그렇지 아니하기에...>(4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