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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풍전 배비장전 ㅣ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김현양 글, 김종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8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할머니 턱밑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 듣던 적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빠져들던 시절,
그 때 할머니의
주머니에는 사탕도 들어있었지만 옛날 이야기도 가득 차 있었다.
이 책 후미에 평자는
작품 해설에서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두 작품을
평가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이유는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머니자 손자를 앞에 두고 옛날 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화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손주들(남매)을 데리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던 중에
이춘풍전과 배비장전을 해 주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려 준
다음에,
할머니가 먼저
손자에게 물었다.
“이야기
재미있지?”
손자가
대답한다.
“예,
재미있어요,
그런데 왜 이춘풍은
같은 실수를 계속하는 것일까요?”
할머니
왈,
“그래 잘
보았다.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이란다.”
그
때,
같이 듣고 있던
누나가 동생을 꼬집으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어리석지.
그 이야기를 보면
옛날부터 남자들은 실수하고,
여자들은 실수해서
곤경에 빠진 남자들을 구해주는 것,
분명히
알았지?
너는 그러면
안된다.”
손녀가 이번에는
할머니를 보고 말한다.
“이춘풍의 부인이 보여준 지혜로운 행동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남자로 변장하고 문제를 해결한 포샤와
비슷해요.”
그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성적 욕망’이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기에
손주들과 할머니의 대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 갈 수 있으리라.
평자는
‘성적 욕망’이라 표현하지만,
이 작품에서 성은
자극적인 형태로 등장하지 않고 다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속에서 ‘실수’의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적 묘사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두 남자가 드러내는
욕망도 요즈음의 성적 묘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성은
–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 해학과 풍자의 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할머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틈틈이 할머니는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 및 사물에 대하여 -
책속에서는 각주로
부가 설명된 것들 -
아이들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예컨대
25쪽에서 등장하는 ‘유비가 제갈량 찾아가듯’,
‘서왕모 요대로
주목왕 찾아가듯’,
등등을 설명하면서
무궁무진한 역사 속의 인물들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런 할머니의 보충
설명을 들으면서,
또한 우리말 사설조로
엮어진 이야기의 구성진 내용을 들으면서 두 손주는 저절로 어깨춤을 추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이것은
어떤가?
86쪽에 등장하는 “망망대해의 천리 파도에 대붕이 날다가 지쳐서
앉아 있다.”는 말.
이 때
“대붕이 뭐예요?”라는 손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장자’의 한 구절을 설명해 주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이라면,
그래서 한자를 공부한
아이들이라면 28쪽에 등장하는 이춘풍과 기생 추월의 이름자를
가지고 희롱하는 부분에 흥미를 느낄만도 하다.
“봄바람(春風)도 좋거니와 이슬 내리고 맑은 바람 불고
국화꽃 피는 가을에 가을달(秋月)이 밝았으니 더욱 좋네.
진심이라면 추월과
춘풍,
부부의 인연을 맺어
볼까!”
아이들은 이름자를
가지고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이 글을 지은 사람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두 주인공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봐요.”라고 할만도 하다.
그런 대꾸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춘향전도 너희들
읽어보았지?
춘향전에는 그런
대목이 많이 나온단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춘향이와 이도령의 대화중
한토막.
이도령 하는
말이,
"네 연세
몇이며,
네 성은
무엇인가?"
춘향이
여짜오되,
"연세는
십륙세오,
성은 성가라
하나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허!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그러니 날과
동갑이요,
성짜는 그러니
이성지합이라.
천생연분일시
분명하다.“>
이(李)씨 성과 성(成)씨 성이 합하여 이성지합(李成之合)! 원래의 의미는 이성지합(二姓之合)이다.
서로 성이 달라야
결혼이 가능하기에 이도령이 그런 식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듯이,
이춘풍전에서도 그런
언어 유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들이
재미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언어의
재미에 눈을 뜰 것이다.
또한 요즘 세상에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각박하게 평하는 말들이 살벌하기조차 한데,
여기 등장하는
대화들은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말조차도 격조가 있고,
여유가
있다.
<회계비장 잘도 났다마는 수염이 없으니 그것이
흠이로다>
(42쪽)
<배비장이 그 여인을 한참 바라볼 때 방자가
말했다 “저 눈은 일을 낼
눈이로군”>
(86쪽)
그런 식으로 이
이야기 두 편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꺼리는 무궁무진하다.
여기에서 다 열거하지
못하지만,
우리 고전의 깊은
맛은 그래서 일품이다.
이런 이야기 모처럼
읽으면서 푸근한 할머니 품,
무궁무진했던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를 회상해 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이
책으로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면서 가빠진 숨을 조금 누그려 뜨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