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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풍전 배비장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김현양 글, 김종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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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할머니 턱밑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 듣던 적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빠져들던 시절, 그 때 할머니의 주머니에는 사탕도 들어있었지만 옛날 이야기도 가득 차 있었다.

이 책 후미에 평자는 작품 해설에서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두 작품을 평가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이유는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머니자 손자를 앞에 두고 옛날 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화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손주들(남매)을 데리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던 중에 이춘풍전과 배비장전을 해 주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려 준 다음에, 할머니가 먼저 손자에게 물었다. “이야기 재미있지?”

손자가 대답한다. “, 재미있어요, 그런데 왜 이춘풍은 같은 실수를 계속하는 것일까요?”

할머니 왈, “그래 잘 보았다.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이란다.”

그 때, 같이 듣고 있던 누나가 동생을 꼬집으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어리석지. 그 이야기를 보면 옛날부터 남자들은 실수하고, 여자들은 실수해서 곤경에 빠진 남자들을 구해주는 것, 분명히 알았지? 너는 그러면 안된다.”

손녀가 이번에는 할머니를 보고 말한다.

이춘풍의 부인이 보여준 지혜로운 행동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남자로 변장하고 문제를 해결한 포샤와 비슷해요.”

 

그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성적 욕망이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기에 손주들과 할머니의 대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 갈 수 있으리라.

 

평자는 성적 욕망이라 표현하지만, 이 작품에서 성은 자극적인 형태로 등장하지 않고 다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속에서 실수의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적 묘사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두 남자가 드러내는 욕망도 요즈음의 성적 묘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성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 해학과 풍자의 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할머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틈틈이 할머니는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 및 사물에 대하여 - 책속에서는 각주로 부가 설명된 것들 - 아이들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예컨대 25쪽에서 등장하는 유비가 제갈량 찾아가듯’, ‘서왕모 요대로 주목왕 찾아가듯’, 등등을 설명하면서 무궁무진한 역사 속의 인물들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런 할머니의 보충 설명을 들으면서, 또한 우리말 사설조로 엮어진 이야기의 구성진 내용을 들으면서 두 손주는 저절로 어깨춤을 추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이것은 어떤가?

86쪽에 등장하는 망망대해의 천리 파도에 대붕이 날다가 지쳐서 앉아 있다.”는 말.

이 때 대붕이 뭐예요?”라는 손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장자의 한 구절을 설명해 주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이라면, 그래서 한자를 공부한 아이들이라면 28쪽에 등장하는 이춘풍과 기생 추월의 이름자를 가지고 희롱하는 부분에 흥미를 느낄만도 하다.

봄바람(春風)도 좋거니와 이슬 내리고 맑은 바람 불고 국화꽃 피는 가을에 가을달(秋月)이 밝았으니 더욱 좋네. 진심이라면 추월과 춘풍, 부부의 인연을 맺어 볼까!”

 

아이들은 이름자를 가지고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이 글을 지은 사람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두 주인공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봐요.”라고 할만도 하다.

 

그런 대꾸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춘향전도 너희들 읽어보았지? 춘향전에는 그런 대목이 많이 나온단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춘향이와 이도령의 대화중 한토막.

이도령 하는 말이, "네 연세 몇이며, 네 성은 무엇인가?"

춘향이 여짜오되, "연세는 십륙세오, 성은 성가라 하나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그러니 날과 동갑이요, 성짜는 그러니 이성지합이라. 천생연분일시 분명하다.“>

 

()씨 성과 성()씨 성이 합하여 이성지합(李成之合)! 원래의 의미는 이성지합(二姓之合)이다. 서로 성이 달라야 결혼이 가능하기에 이도령이 그런 식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듯이, 이춘풍전에서도 그런 언어 유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들이 재미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언어의 재미에 눈을 뜰 것이다.

 

또한 요즘 세상에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각박하게 평하는 말들이 살벌하기조차 한데, 여기 등장하는 대화들은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말조차도 격조가 있고, 여유가 있다.

 

<회계비장 잘도 났다마는 수염이 없으니 그것이 흠이로다> (42)

<배비장이 그 여인을 한참 바라볼 때 방자가 말했다 저 눈은 일을 낼 눈이로군”> (86)

 

그런 식으로 이 이야기 두 편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꺼리는 무궁무진하다. 여기에서 다 열거하지 못하지만, 우리 고전의 깊은 맛은 그래서 일품이다.

이런 이야기 모처럼 읽으면서 푸근한 할머니 품, 무궁무진했던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를 회상해 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이 책으로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면서 가빠진 숨을 조금 누그려 뜨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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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 불안할 때,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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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 무언가 다르다.

저자가 말하는 바가 다른 심리학 책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많이 배웠다. 다른 천편일률적인 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군다나, 책의 서술이 아는 체 하거나, 훈계조의 느낌이 들지 않아 좋다.

그래서 편하고, 좋은 느낌이다.

 

책을 읽을 때에 느끼는 기쁨 중 하나는 내가 생각해내려고 하는데, 머리 속을 빙빙 돌기만 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하던, 그런 것들을 눈으로 보는 순간이다. 이 책에서 그러한 것들을 많이 만난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256 -257 쪽이다.

당신이 받은 사랑을 소중히 여겨라. 그것은 당신의 돈이나 건강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이다.”

저자가 번역했다는 미국의 명언집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거기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사랑을 받는 것은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점차 당연하게 여겨진다. 때로는 사랑이 돈이나 건강을 함께 가져다준다. 사랑이 에너지를 낳고, 그 결과 건강해지기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기력도 생긴다. 하지만 돈을 사랑보다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순간부터 사랑을 잃고, 그 결과 돈과 건강을 모두 잃는다.”

 

사랑을 주는 대상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간단한 진리를 잊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저자의 이 말은 새삼 나로 하여금 내가 받은 사랑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만들었으니, 이 책은 그 하나만으로 벌써 값어치 있는 책이 되었다.

 

이 책에서 다른 심리학 책에서 미처 다루지 않은 여러 가지를 다루고 있어, 배운 바가 많다. 그중의 하나 바로 외재화라는 개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외재화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외재화라는 단어를 명확히 한다면, 이 책은 이해하기 쉬운 책이 된다. 이 개념은 어찌 보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인데, 그래서 '외재화'라는 말의 개념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외재화라는 말이 이 책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쓰임새를 살펴보자.

 

'외재화' 

자신의 기대를 상대에게 외재화 하는 것(28), 즉 상대를 통하여 자신의 바람을 확인하는 것.

자신을 증오하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다른 방법으로) 외재화 하는 것. (78)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현실인 것처럼 여기는 것(98)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바람을 현실 속에 투사하고 있는 것(126)

자신의 바람을 현실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현실 세계를 살지 못하는 것(163-164)

 

그렇게 여러 가지로 외재화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저자는 - 책의 소개문에서 저자는 카렌 호나이의 정신분석 이론을 발전시켜 현대인을 지배하는 불안의 원인을 밝히고,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한다.”고 밝혀 놓은 것처럼  - 카렌 호나이가 사용하고 있는 외재화를 이어 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카렌 호나이가 말한 바 외재화의 개념을 이렇게 정리해 놓고 있다.

 

마음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고 착각하는 것“(133), 즉 안의 있는 문제를 밖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외재화(外在化, externalization)라 하는 것이다.

 

그런 외재화의 위험성을 저자는 누차 강조한다. 그런 외재화가 결국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이런 식으로 현재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자신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위치를 이해 할 수 없다.” (154)

 

이 책의 취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 하나를 고르라면 바로 위의 것이다.

이 문장은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주장,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외재화란 개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위치이다.

 

그래서 그런 외재화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결국 자기의 위치를 찾지 못하게 되고, 그런 사람은 계속해서 노력은 하되, 실패만 하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안, 그 자체를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불안 -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불안>을 통하여 불안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처리 방법이 미진하여 안타까웠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처리방법을 알게 되어 기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부제로 덧붙인 것은 이 책의 내용을 서술하는 데 아주 정확하다. <불안할 때, 심리학>

 

혹시 살아가면서 무언가 불안하여 인생에서 방황하고 있다 싶으면, 이 책을 읽고 그 불안을 처리해보는 것,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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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는 참 외롭다
김서령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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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렇게 조용한 글이 있을까?

이렇게 조용히 조용히 다가오는 글이 있을까?

조용하게 다가와서 내 마음 속 우물에 돌맹이 하나 던져놓고 달아나

오래도록, 그토록 오래도록 휘저어 놓는 글이 있을까?

세상살이 다 살아본 것도 아닌데, 읽고 나니, 세상 일이 티끌만도 못하게 보이는 글.

그런 글이 어디 있을까?

모름지기 글은 그렇게 써야 한다.

 

김서령의 산문집 <참외는 외롭다>를 읽으면서 든 첫 생각이다 

내 살아 오면서, 하나 하나 문장을 되짚어가며 읽어보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문장이 지나가는 곳곳마다 보여주는 경치를 그냥 흘러보내기 아쉬워

다시 되돌아오고, 다시 되돌아오고 하기를 몇 번이던가?

 

나는 책을 읽으며 군데 군데 음미완상’,이 두 단어로 정리되는 모습으로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행간 사이에 뜨거운 침묵!

그것은 저자의 표현대로, “더 이상 읽기를 계속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속이 뻑뻑하게 격해져 오기 때문”(31)이었다.

 

그래서 음미완상’, 그 두 단어로 이 책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만큼 이 책은 -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 좋다.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좋다.

그런데 저자 김성령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쓴단 말인가?

책이 읽어가는 쪽수가 많아짐에, 읽어가야 할 쪽수가 줄어듬을 아쉬워하기는 독서 인생 몇십년만에 처음이다.

글이란 모름지기 고만고만하고 그럴듯한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가 강조된’(5)

이란 말이 너무나 딱 들어맞는 글이기에, 저자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한 글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 들어봤나? 물어보고 싶어진다.

<생전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 옛적부터 하늘을 날던 개가 한 마리 있는데, 그 개가 달을 꿀꺽 삼키는게 월식이란다. 그 개는 간혹 해도 삼키는데 해는 너무 뜨거워서 뱉어내고 달은 너무 차가워서 뱉어낸단다.“

세상 굼금한 것 투성이던 나는 당연히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그 개는 밥은 안먹고 해하고 달만 먹나?”

대답이 궁했을, 평생 논과 밭만 바라보고 살아온 순진한 우리 엄마, “ 하늘에 뭔 밥이 있을라? 논도 없는데? 논은 본래 땅에 있잖나?”>(99-100)

 

그런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영롱하게 - 이런 표현 진짜 싫지만 사실이니까 쓴다 - 펼쳐진다. 지상에서 그의 관찰력은? 눈과 귀, 심지어 코까지 모든 몸은 그에게는 관찰의 도구다, 해서 저자의 관찰력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 라는 생각에, 다시 묻는다, 이런 말 들어봤나?

  <국화향엔 교태가 없다. 그건 국화향을 따온 향수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쉬이 납득할만하다.>(106)

  그렇다. 무릇 향수는 교태를 품고 숨어있는데, 국화향은 향수가 될 수 없다.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국화향은 교태가 없으므로!

  또 그의 관찰력은? 저자가 묘사한 사과를 먹을 때를 들어 보라!

그에 의해서, 맛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귀를 울릴 때에 비로소 완성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과는 와사삭 소리가 입안에서 비강을 통해 고막으로 바로 전달되고 뿜어진 과즙이 얼굴에 확 튈만큼 싱싱해야 한다”(85)

  저자가 묘사한 그 싱싱함이 바로 이 책의 요체이다. 그의 글은 갓 따낸 사과 같아서, 무엇보다도 싱싱하고, 새롭다, 맛있다. 과연 누가 이런 맛있는 글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인가? 

그의 글 다루는 마음씨를 한번 보자. 

<뭔가를 늘 언어로 설명하고 싶어하는 이 안달과 안타까움은 문장을 배워버린 자의 한계이다. 알량한 문장을 가지지 않았다면 감각의 파장을 굳이 단어로 얽매려 용을 쓰지 않아도 좋으련만.>(80)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모든 사물의 묘사를 책읽는 기쁨으로 정리해 보았다. 

<낯 선 곳이 낯익은 곳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저 숲은, 아니 저기 선 각각의 나무들은 내게 말없는 위안이었다.>(79)

- 책의 페이지가 줄어들면서 나에게 익숙한 것이 되어가면서, 그런 글들은 나에게 위안이었다.

  <저 숲은 전혀 고요하지 않다. ,......그때마다 숲 전체의 공기가 파도치듯 화르륵 뒤집어진다.>(89)

- (책을 읽은 후) 나의 마음은 고요하지 않다. 읽을 때에 내 안의 공기가 파도치듯 화르륵 뒤집어진다.

  <사과의 물리적 형태가 점점 눈 앞에서 사라진다. 스미는 과즙에 몸이 환호한다.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님을 감지하다.>(86)

  - 책의 읽은 페이지가 점차 늘어나고 읽어야 할 페이지가 점점 사라진다. 스미는 책의 과즙에 내 몸이 환호한다. 책과 내가 둘이 아님을 감지하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만 언제나 똑같은 뉘앙스로 행복한 건 아니다.>(85)

- 책을 읽으면 행복하지만, 어느 책이나 똑같은 뉘앙스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그는 나에게 책 읽는 기쁨을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정치적 감각을 보라.

 <대통령 선거가 코 앞에 다가왔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다. 마음 편하게 가을무의 단맛을 느끼게 해달라!>(97)

<우리 일상은 목수정의 말대로 치마 속까지 정치적이다. 우리가 내릴 판단은 의외로 간단하다. 여러 사람의 희생으로 몇 사람의 배를 불릴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하면 된다.> (98)

<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감각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됨의 기본조건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게 없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다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통불능인 이를 무리의 리더로 뽑아서는 절대 안된다.>(73)

 

  너무나 상식적인, 너무 인간적인 소신이 아닌가? 물론 그의 말이 유권자들에게 먹히느냐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이 책은 마냥 머리맡에 두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 사과를 베어 물고 그 단맛을 음미하듯이 - 음미하고 그 책이 보여주는 신기한 경치를 완상해 볼만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에게 보내는 감사와 찬사는 그의 말로 대신하련다.

<단물이 입안에 가득 차면서 눈물이 핑 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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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1 - 대한제국의 구름과 바람 나남창작선 119
류주현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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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치열한 기록, 역사는 이렇게 기록해야

류주현의 <조선 총독부>는 역사소설이다.

그런 역사소설을 분류해보자면 역사적 사실을 배경에 두고, 등장하는 인물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가공의 인물인 경우가 있다. 그런 소설에서는 실존인물들이 등장하기는 하나, 줄거리를 끌고 가는 것은 가공의 인물이다. 예컨대 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또 하나, 가공의 인물은 양념에 불과하고 실존인물들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경우이다. 여기에 바로 류주현의 <조선총독부>가 해당한다.  

 <아리랑>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실존 인물도 있고 가공의 인물도 있다. 그러나 그 인물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기록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 읽으면서 우리는 그 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아리랑>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은 백성들이 살아가며 부딪히는 현실의 모습을 알 수 있겠는데 그렇게 만들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조성하고 있는 저 위층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밖에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 <조선 총독부>를 읽으면서 그런 아쉬움을 풀 수 있어 속이 후련했다.

물론 그런 역사적 사실은 다른 책에 기록된 역사의 서술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그런 사실만 기록한 역사서에서는 그 사건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그런 일을 저지르는가(?)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 속을 들어가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서의 역사적 사실만 알게 될 뿐이다. 그런데 이 책 <조선 총독부>에서는 , 그렇게 나라를 빼앗겼구나’, ‘, 그렇게 일이 진행이 되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책을 읽을 때는 미진하게 뱉어져 나오던 탄식을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제대로 할 수 있어, 역사의 기록에서 미진한 부분을 제대로 메울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 것은 순전히 작가 류주현의 소설가다운 아니 소설가를 넘어선 역사가로서의- 철저한 치밀함 때문이다. 그래서 평자인 소설가 고승철은 <조선총독부>를 평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근현대사 인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1, 8)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본다. 왜냐면 소설의 부분 부분에서 류주현은 대화를 통하여 그 인물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몇가지만 들어본다.

3 101, 김구가 이봉창을 평하는 대목이다.

나는 사람을 잘 못 보진 않았소. 큰 일을 위해 목숨을 던질 사람과 새가 나뭇가지를 옮겨 앉듯 지조 없이 배신할 놈은 관상부터가 다르오.”

여기 김구의 발언 중 지조 없이 배신할 놈은 관상부터가 다르오라는 말은 어디에서 비롯된 말일까? 그저 류주현의 창작일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김구를 관상을 보아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류주현이 등장 인물들의 대사를 처리하면서 관상이란 말을 언급한 것은 김구가 유일하다. 왜일까?

백범일지를 읽어보면, 백범이 관상에 마음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범은 유년기에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준비에 몰두한다. 그러나 구한말의 과거 시험은 온갖 부정과 비리가 횡행하는 적폐의 온상이었다. 일반인이 실력만으로 등과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백범은 감연히 과거를 단념한다. 그리고 눈길을 돌린 것이 관상과 풍수였다

그는 <마의상서(麻衣相書)>를 얻어 독학에 들어간다. 석 달 동안 열심히 자신의 얼굴과 씨름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참담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자기 얼굴에 부귀(富貴)의 상은 찾아볼 수 없고온통 흉()하고 천()한 모습만 비쳤다.

그러다가 우연히 눈에 확 띄는 대목이 있었다.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이었다. 얼굴보다는 몸이, 몸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호상인(好相人)이 되기보다 호심인(好心人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백범은 책을 덮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그런 기록에 근거하여 류주현은 김구의 대사에 관상이라는 말을 집어 넣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가 창작한 김구의 발언은 가공의 창작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한 때는 지사로서 백성들의 추앙을 받다가 중도에 변절하여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이 속 마음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이광수의 경우를 살펴보자. 3 240, 이광수의 발언이다.

“ ….그들이 어느 특정인을 이용하려고 눈독 들이면 그 특정인은 희생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지식층이 협력을 거부한 탓으로 많은 젊은이가 필요없는 피를 흘릴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몇몇 사람이 협력하는 체하고 시일을 끌면서 저들의 과격한 수단이나 심술의 방향을 다소라도 돌려놓을 수 있다면 한두 사람쯤 변절자의 낙인이 찍히더라도 많은 사람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 대한 저항이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건 분명히 궤변이라는 오해를 받기 쉬운 논리입니다만.”

 

그런 논리를 편 끝에 결국 이광수는 변절하고 만다. 이광수의 속 마음을 마치 그의 속을 들어가 본 것처럼 그려내고 있지 않는가? 변절한 이광수와 고하 송진우의 조우는 그 결과를 소설적으로, 사실보다 더 극적인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다 (3, 433쪽 이하)

또 다른 점은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굳건한 역사의식이다 

그래서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은 요즈음 고조선의 위치를 두고 학자들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류주현의 선각자적 면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3 133쪽에서 그는 왜곡되기 시작한 조선역사를 언급하면서, 그 뒤 172쪽 이하에서는 조선사 편수회라는 별도의 장에서 그것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발간하면서 단군고기에 기록된 석유환국이라는 글자를

석유환인으로 바꿔치기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금도 이것을 둘러싸고 주류학자들이 일본의 견해를 따라가고 있는 현실을 볼 때에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류주현 선생의 따끔한 음성을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 몇 가지.

국방색이란 색깔 이름의 유래를 아시는가?

군인들이 입는 군복빛깔, 그 색을 뭐라 부를까? 3, 204쪽을 참고하시라.

 

철로선 이름을 짓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경부선, 서울에서 원산으로 가는 철로는 경원선.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왜 유독 서울에서 목포로 가는 철로는 호남선이라 했을까, 그 이름은 이렇게 지어졌다.  126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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