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는 참 외롭다
김서령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이렇게 조용한 글이 있을까?

이렇게 조용히 조용히 다가오는 글이 있을까?

조용하게 다가와서 내 마음 속 우물에 돌맹이 하나 던져놓고 달아나

오래도록, 그토록 오래도록 휘저어 놓는 글이 있을까?

세상살이 다 살아본 것도 아닌데, 읽고 나니, 세상 일이 티끌만도 못하게 보이는 글.

그런 글이 어디 있을까?

모름지기 글은 그렇게 써야 한다.

 

김서령의 산문집 <참외는 외롭다>를 읽으면서 든 첫 생각이다 

내 살아 오면서, 하나 하나 문장을 되짚어가며 읽어보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문장이 지나가는 곳곳마다 보여주는 경치를 그냥 흘러보내기 아쉬워

다시 되돌아오고, 다시 되돌아오고 하기를 몇 번이던가?

 

나는 책을 읽으며 군데 군데 음미완상’,이 두 단어로 정리되는 모습으로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행간 사이에 뜨거운 침묵!

그것은 저자의 표현대로, “더 이상 읽기를 계속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속이 뻑뻑하게 격해져 오기 때문”(31)이었다.

 

그래서 음미완상’, 그 두 단어로 이 책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만큼 이 책은 -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 좋다.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좋다.

그런데 저자 김성령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쓴단 말인가?

책이 읽어가는 쪽수가 많아짐에, 읽어가야 할 쪽수가 줄어듬을 아쉬워하기는 독서 인생 몇십년만에 처음이다.

글이란 모름지기 고만고만하고 그럴듯한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가 강조된’(5)

이란 말이 너무나 딱 들어맞는 글이기에, 저자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한 글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 들어봤나? 물어보고 싶어진다.

<생전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 옛적부터 하늘을 날던 개가 한 마리 있는데, 그 개가 달을 꿀꺽 삼키는게 월식이란다. 그 개는 간혹 해도 삼키는데 해는 너무 뜨거워서 뱉어내고 달은 너무 차가워서 뱉어낸단다.“

세상 굼금한 것 투성이던 나는 당연히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그 개는 밥은 안먹고 해하고 달만 먹나?”

대답이 궁했을, 평생 논과 밭만 바라보고 살아온 순진한 우리 엄마, “ 하늘에 뭔 밥이 있을라? 논도 없는데? 논은 본래 땅에 있잖나?”>(99-100)

 

그런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영롱하게 - 이런 표현 진짜 싫지만 사실이니까 쓴다 - 펼쳐진다. 지상에서 그의 관찰력은? 눈과 귀, 심지어 코까지 모든 몸은 그에게는 관찰의 도구다, 해서 저자의 관찰력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 라는 생각에, 다시 묻는다, 이런 말 들어봤나?

  <국화향엔 교태가 없다. 그건 국화향을 따온 향수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쉬이 납득할만하다.>(106)

  그렇다. 무릇 향수는 교태를 품고 숨어있는데, 국화향은 향수가 될 수 없다.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국화향은 교태가 없으므로!

  또 그의 관찰력은? 저자가 묘사한 사과를 먹을 때를 들어 보라!

그에 의해서, 맛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귀를 울릴 때에 비로소 완성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과는 와사삭 소리가 입안에서 비강을 통해 고막으로 바로 전달되고 뿜어진 과즙이 얼굴에 확 튈만큼 싱싱해야 한다”(85)

  저자가 묘사한 그 싱싱함이 바로 이 책의 요체이다. 그의 글은 갓 따낸 사과 같아서, 무엇보다도 싱싱하고, 새롭다, 맛있다. 과연 누가 이런 맛있는 글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인가? 

그의 글 다루는 마음씨를 한번 보자. 

<뭔가를 늘 언어로 설명하고 싶어하는 이 안달과 안타까움은 문장을 배워버린 자의 한계이다. 알량한 문장을 가지지 않았다면 감각의 파장을 굳이 단어로 얽매려 용을 쓰지 않아도 좋으련만.>(80)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모든 사물의 묘사를 책읽는 기쁨으로 정리해 보았다. 

<낯 선 곳이 낯익은 곳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저 숲은, 아니 저기 선 각각의 나무들은 내게 말없는 위안이었다.>(79)

- 책의 페이지가 줄어들면서 나에게 익숙한 것이 되어가면서, 그런 글들은 나에게 위안이었다.

  <저 숲은 전혀 고요하지 않다. ,......그때마다 숲 전체의 공기가 파도치듯 화르륵 뒤집어진다.>(89)

- (책을 읽은 후) 나의 마음은 고요하지 않다. 읽을 때에 내 안의 공기가 파도치듯 화르륵 뒤집어진다.

  <사과의 물리적 형태가 점점 눈 앞에서 사라진다. 스미는 과즙에 몸이 환호한다.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님을 감지하다.>(86)

  - 책의 읽은 페이지가 점차 늘어나고 읽어야 할 페이지가 점점 사라진다. 스미는 책의 과즙에 내 몸이 환호한다. 책과 내가 둘이 아님을 감지하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만 언제나 똑같은 뉘앙스로 행복한 건 아니다.>(85)

- 책을 읽으면 행복하지만, 어느 책이나 똑같은 뉘앙스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그는 나에게 책 읽는 기쁨을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정치적 감각을 보라.

 <대통령 선거가 코 앞에 다가왔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다. 마음 편하게 가을무의 단맛을 느끼게 해달라!>(97)

<우리 일상은 목수정의 말대로 치마 속까지 정치적이다. 우리가 내릴 판단은 의외로 간단하다. 여러 사람의 희생으로 몇 사람의 배를 불릴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하면 된다.> (98)

<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감각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됨의 기본조건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게 없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다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통불능인 이를 무리의 리더로 뽑아서는 절대 안된다.>(73)

 

  너무나 상식적인, 너무 인간적인 소신이 아닌가? 물론 그의 말이 유권자들에게 먹히느냐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이 책은 마냥 머리맡에 두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 사과를 베어 물고 그 단맛을 음미하듯이 - 음미하고 그 책이 보여주는 신기한 경치를 완상해 볼만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에게 보내는 감사와 찬사는 그의 말로 대신하련다.

<단물이 입안에 가득 차면서 눈물이 핑 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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