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점을 먼저 찍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떠올랐던 것은 회화 기법중 점묘법이었다.

점묘법이란 회화의 기법 중 하나로서, 점 또는 점과 유사한 세밀한 터치로 묘사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러니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 소설이 바로 그렇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화가가 캔버스 위에 붓으로 하나 하나 점을 찍어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내용이 짧아서일까, 아니면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듯 해서일까. 그러나 그 점들이 모여 캔버스 위에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듯이, 이 점 같은 이야기들이 결국 모여서 장관을 연출하고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런 이야기의 성격은 무엇일까? 저자가 말한 바, 저자의 자전적인 회고록이 아니다, 라는 말을 믿기로 했다. 설령 그것이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이 단순히 개인사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를 그려내고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주인공중 한 명인 민효의 이런 발언을 한번 들어보자.

<작년에 정치학과 수업을 들었거든. 교과서가 무려 8백 페이지였어. 거기에 우리에 대해서도나오더라. 우리가 세계의 모든 것인 줄 알았던 사건들이 단 한 페이지로 정리되어 있었어.>(486)

 

그렇게 주인공들 앞에 펼쳐졌던 세계가 단 한 페이지로 정리되는 게 바로 역사인데, 다행이 이 책은 한 페이지가 아니라 500여 페이지나 되니까, 역사책도 그렇게 상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읽어볼만 하지 않겠는가?

 

2. 점은 선이 되고, 선은 ....

 

다시한번 말하자.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점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 점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 점들은 이윽고 선이 되고, 선들은 면이 되며, 면들은 이윽고 입체가 되어 독자 앞에 드러난다. 그러니 그 점들이 혹시 띄엄띄엄하게 보일지라도 참을성을 가지고 읽어나가야 한다.

그런 이치를 소설 속 강정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빗줄기라는 표현은 틀렸어요. 빗방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한 줄기처럼 보여도 띄엄띄엄 내리지요. 실은 세상 모든게 띄엄띄엄 존재합니다.>(28)

 

그렇게 사건 하나하나가 띄엄띄엄 존재하지만, 그래서 그것이 사건들이 방울방울 이어지는 것 같고, 또 그것이 사실 맞지만, 어디 사람 눈에는 내리는 비가 빗방울로 보이나, 빗줄기로 보이듯이, 이 소설의 이야기들도 이야기가 점처럼 하나하나 그려지지만 결국에는 사건의 줄기가 보이고, 결국은 그게 바로 우리의 역사인 것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역사를 그려내고 있는 역할을 하는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대와 부딪히며 갈등하는 사이에 그들이 지나가는 궤적이 점이 되고, 점은 선이 되고 이윽고 그 선들이 면을 이루어 입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3. 이 세계가 입체적으로 보이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저자는 하나의 암시를 심어 놓는다.

바로 주인공의 한 명인 진우의 눈 말이다. 한 쪽 눈을 잃은 진우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나?

<이제 진우의 눈은 사물들이 떠도는 세계를 영원토록 평면으로만 인식할 것이다. 진우는 입체로 구성된 세계의 한 축을 잃은 대가로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자유의 권리를 얻었다.>(474)

 

저자의 이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진우가 한쪽 눈을 잃은 다음에 이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두 눈이 멀쩡한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저자는 진우를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대가를 우리에게 치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진우는 한 쪽 눈을 잃은 다음에서야 이 세상을 평면으로 보게 되었는데, 당신들은 두 눈을 번연히 다 뜨고 살면서도 이 세상을 그렇게 평면으로만, 아니 면이 아니라, 단선으로만 보고 있느냐고? 이 질문은 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앞에 보여지는 이 사건을 왜 그렇게 조각 조각으로만, 점 하나로만 보느냐고!

 

4. 음수사원 (飮水思源)

 

그래서 이 소설은 모든 일의 원인을 묻는 소설이다.

저자가 주인공 태의에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공연히 읽힌 것이 아니다.

 

<아퀴나스는 주장했다.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원인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483, 505)

 

저자가 이 부분을 두 번 씩이나 인용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 태의가 빨강색 점퍼를 입고 시위에 나가고, 그 시위장면이 채증사진에 찍혔고, 그 사진을 들이대며 네가 맞냐고 추궁하는 문경사에게 오리발을 내밀지 못하고, 맞다고 대답하고 결국은 그것이 진우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더 한걸음 나가 진우가 한 쪽 눈을 잃게 되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원인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는 무한궤도처럼 끝없이 달려간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읽은 독자인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어떤 현상에 대하여 거슬러 올라가 그 원인 A, 또 그 현상 A를 거슬러 올라가 원인 B.......그렇게 거슬러 올라가 결국 우리 앞에 놓인 어떤 현상을 만들어 놓은 근본적인 이유 Z를 생각해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음수사원, 지금 물을 마시면서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평범한 이치, 그 이치를 우리 현상에 대입해 보라는 것일게다.

   

5. 역사는 이렇게 평가된다

 

저자가 역사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평가한 대목을 보자

<황우석이 증명한 것이라고는 논문 검증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밖에 없다.>(489)

 

대학에서의 학사관리가 엄정화 - 여배우 이름이 아니다 - 되고 난 변화는?

<그 곳 캠퍼스에서는 오리가 한 줄로 서서 횡단보도를 건너 다녔다.>(490)

 

6. 아포리즘 몇 개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아포리즘, 하나!

<“돈이 많으면 행복하지 않아?”

행복하지, 그래도 내 행복 때문에 누군가 불행을 느끼는 건 싫어. 그렇게는 내가 충분히 행복할 수 없는거야.”>(101) 미주의 말이다.

 

그것 하나로는 섭섭하다, 하나만 더 들어보자.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보트에서 뛰어내려야 하지 않겠냐고. 제가 의아한 건, 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장롱에 침대까지 챙겨들고 보트에 탔느냐는 것입니다.>(154) 대석 형의 말이다.

형(兄)이 말하는 것이니까, 새겨 듣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