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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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이 소설, 작품이다.

 

, 내가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클래식을 요즘 듣고 있다는 것 말이야. 기억나지? 안 난다고? , 어쨌든, 거기 클래식에서는 곡을 뭐라고 하냐면 op(opus)라고 해, ‘작품이라고 하는 거지.

왜 그런 말을 하냐고?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났지. 이건 작품이다. 마치 작곡가가 무척이나 공들여 만들어 발표한 회심의 역작, 그러니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지. 이 소설이 그래. 도처에 작가가 공을 들인 흔적이 보여. 진짜 공을 무척 들였더라니까.

 

이 책, 배명훈이라는 작가가 쓴 것인데, 그 작가에 대해선 잘 몰라. 그저 예전 예전에 타워라는 소설을 읽은 적은 있어. 그때도 아, 이 사람 뭔가 있구나, 하긴 했지. 이 책을 읽으니까 그때의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분명해.

 

그 책에서 이런 것, 읽으면서 무릎을 친 적이 있지.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실험자의 실험 행위가 실험 대상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거야.” (타워, 10)

 

굳이 그 책 상황 설명 안 할게.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지니까. 하여튼 그 문장이 나중에 보니까, 바로 양자 역학의 전제가 되는 말이더라고. 그러니 SF 작가의 발언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다 다 과학적인 거야. 그 책도 좋아, 한 번 읽어봐.

 

이 책, 아니 이 작품에 대해서 몇 가지만 말해줄게.

 

우주, 하늘을 날아보자.

 

이 책은 이럴 때 읽어야 해.

세상살이가 빡빡할 때, 하는 일이 무언가에 막혀서 신경질이 나려는 그때, 읽어봐. 그런 복잡한 세상일, 잠시 제쳐두고 하늘을 날다 오는 거지. 우주공간에 머물다 오는 방법중 가장 싸게 드는 방법이 바로 SF라는 것, 공감할 거야.

 

이 작품에서는 그런 우주가 무대지. 거기에다가 차원도 존재하고, ‘시간도 존재하고, 또하나 특이한 것은 SF에 로맨스가 들어있는 거야. 생각해봐. 멋지지 않아? 우주공간에 서로 떨어져 있는 남녀의 로맨스, 벌써 제목부터가 그걸 드러낸다니까. 청혼, proposal이야.

 

로맨스, 달달하고 촉촉하게

 

세상살이가 복잡하고, 그래서 마음이 아주 드라이해지면, 뭐가 좋을까? 바로 로맨스지. 그런 촉촉한 감정이 우주공간을 흘러간다? 어때? 죽이지?

 

이 작품 서두에서 그런 감정을 팍팍 드러내지, 이렇게 말이지.

휴가를 받으면 한 번 놀러 와. 지난달에 새 휴양선이 취항했는데 거기라면 너도 분명 마음에 들 거야.”(7)

 

어때? 이런 말 들으면 너도 한번 가고 싶어질 거 같은데.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애인이 있는 휴양선으로 간다. 물론 바다에 있는 게 아니라 우주에 있는 우주선이지. 그런 곳에 가서 며칠 있다보면 없던 연애 감정도 생길 것 같은데. 해서 이 책은 썸타는 사람들이 마음을 담아 선물하면 좋을 거 같아. 하여튼. 이 작품에는 그런 촉촉한 감정을 담은 행동이 들어 있어. 그런데 결국 그런 감정이 화자(話者)를 죽음에서 건져내지.

 

화자, 이 친구가 말야. 드디어 청혼할 작정으로 반지를 하나 주문하지. 그런데 그게 소문이 그가 일하는 참모부에, 그리고 함대에 쫘악 난 거야. 그 소식을 들은 그의 상관인 사령관이 뜻밖에 그 친구를 기함에서 호위함으로 옮겨 타게 하지. 여기가 무언가 느껴지지 않아? 갑자기 사령관이 총애하는 그 친구를 다른 곳으로 옯겨가게 한다? 마치 좌천이라도 시키는 것처럼 말이야.

 

그게 아니라, 청혼한다는 말에 사령관이 이 친구를 살려주려고 한 거지. 사령관은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를 치를 결심이었거든. 로맨스가 그렇게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해. 나중에 진짜 사령관이 탔던 기함이 그렇게 되거든. 적과의 전투 중에 장렬하게 기함이 사라졌지.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기함과의 교신이 끊어졌어.”(146)

 

하늘에 지도를 그려보자.

 

이 작품에서 참으로 배울 것이 많아.

 

책을 읽으면서 일단 공간 감각이 아마 모르긴 몰라도 100퍼센트 더 향상된 것 같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내 집도 잘 찾아오지 못하는 내가, 세상에, 우주 지도를 그리고 있더라니까. 우주 공간에는 중력이 통하지 않으니까. 위 아래가 없는 거지. 그러니 방향감각은 도대체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그걸 생각하게 되더라니까. 그런 생각하다보니 점점 내 안에 공간 감각이 켜켜이 쌓여가는 기분? 물론 이건 그저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실생활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되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작품 읽으면서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잠시 우주에 갔다오면, 내려 앉아 딛고 다니는 세상이 달리 보여. 분명해. 그러니 세상일에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일할 수 있는 거지. 안 그래?

 

과학 지식, 쌓고 또 첨가

 

또 있어, 여기에서 그간 닦아놓은(?) 과학지식을 써먹을 수 있었어. SF 소설을 읽으려면, 그래도 필요한 게 바로 과학지식인데. 내가 그런 지식이 있다는 것을 알겠더라고, 그런 것들이 몇 개 눈에 띄는 거야. 이런 것 말이지.

 

인공 중력 (10)

천상계의 운동 (83) 이건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으면서 얻어들은 것이고,

질량이 있는 물체는 자기가 놓여있는 공간을 일그려뜨린다. (108)

이건 아인슈타인을 읽으면서 들었던 것 같아.

 

그런데, 세상에 이 친구 말이야, 중력장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사심을 드러내는 거야.

중력장이 로맨스에 활용될 줄이야, 진짜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거기에 너의 중력장이 남아 있었어. 다른 사람에게는 작용하지 않는, 내 눈에만 보이는 중력장이. (115)

 

나는 네가 남긴 중력장이 싫진 않아. 내가 머물다간 자리에 남아있는 그 커다란 공백을 더듬어서 내가 내 안에 남아있는 공간을 복원하는 순간, 그런 식으로 다시 네 존재의 실루엣을 되살려낸 순간, 내가 그걸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돼. (116)

 

얼마 전에 그 친구 애인이 처음에 말한 휴양선에 왔다갔거든. 애인이 왔는데도 이 친구 작전 때문에 별로 만나지도 못했지. 작전에 분주하게 임하다 보니, 애인이 그만 돌아가버린 거지. 가보니 사라진 애인. 그 자리에서 이 친구 과학적으로 애인을 그리워하는 것, 멋지지 않아? 안 그렇다고?

 

책 말미에 <작가의 말>이 있어. 그 중에 이런 말을 하더라고.

이 책을 보고 과학 지식을 습득하지는 말기 바란다.” (161)

 

맞아, SF 소설을 읽으면서 과학 지식을 습득한다? 그건 아니지.

그런데 말이지. SF소설의 성패는 작가가 과학적 지식을 썰(?)푸는데 어느만큼 사실 같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과학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진행하다가 .....그냥 상상의 세계로 끌고가는데, 아주 과학적처럼 해야 그소설이 성공하는 것이거든. 이 작품이 바로 그래. 그거야. 그래서 잘 쓴 SF라고.

 

, 참 이런 것도 있다. 이건 사실인지 아닌지? 아마 사실일거야.

 

사람은 지구 중력에 적응하도록 진화되어 있어서 무중력 환경에서 오래 살다보면 아래쪽으로 가야 할 체액이 상체 쪽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길어져서 다들 얼굴이 부어보인데. (73)

 

그래서 말인데, 혹시 우주에 갈 기회가 생기더라도 며칠만 다녀와, 뭐 한 달 살기 정도는 괜찮겠지. 오래 있다가는 예쁜 얼굴이 부어보일테니까. 안그래?

 

Holst-Planets Suite-Jupiter

 

그런데, 이건 진짜 과학이야.

목성, 그리고 섭동현상. (129)

 

그래서 이 작품에서 목성을 만난 김에 얼마전 들었던 홀스트의 작품 하나를 들었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작품을 들었지. 진짜 내가 우주를 갔다온 기분이야.

 

Holst-Planets Suite-Jupiter. 작품번호가 몇 번이더라?

 

하여튼, 배명훈의 청혼, 정말 작품이야. 우주여행, 아니 비행기 타고 여행 갈 때 꼭 가지고 가. 읽으면서 비행기 창문을 통해서 하늘을 보기도 하면, 정말 좋을 거야.

 

이 작품의 마지막, 이런 말로 끝나는데, 정말 멋지다. 읽어 줄게, 잘 들어봐.

 

이제 나도 고향이 생겼어, 네가 있는 그곳에.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그나저나, 걱정이야. 배명훈의 이 작품, 맛을 알았으니 배영훈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야하는데. 어쩌지? 같이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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