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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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아버지

아버지라 제목을 붙인 글은 다음 두 줄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밤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었다.

좋은 옷을 입으시고, 즐거워하셨다. (98)

 

이건 170913이라 쓰여 있으니, 2017913일에 쓴 것이라는 말이겠다.

전날 밤에 꿈을 꾼 것을 그날 아침에 적어 놓은 것이리라.

 

꿈을 꾼 것, 그 것이 기억에 남았다는 것, 그래서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는 어떻게 꺼낼 것인가?

 

또 한 꼭지 같은 날에 쓴 글이 있다.

 

경멸과 구원, 이란 제목이다.

 

때로는 경멸이 우리를 구원한다.

경멸하면 그 옆에도 가기 싫고

그것에 관한 어떤 소리조차 듣기 싫기 때문이다.

 

미워하지 마라.

몹시 싫어해라.

그러면 구원 받을 수 있다.

 

상당히, 때로는. (99)

 

이 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경멸이 구원한다, 할 때의 '구원'은 어떤 의미일까?

 

싫어해라, 도 이해하기 어렵다.

싫다를 동사형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미워하지 마라싫어해라의 관계는?

미워하지 말고 다만 싫어하기만 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 줄의 상당히, 때로는.’는 어떤 의미일까?

상당히는 정도부사, 때로는 시간부사(?) 인데,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또 그 두 개의 부사어는 위의 어떤 말과 연관이 되는 것일까?

 

미워하지 마라. 상당히, 때로는.

몹시 싫어해라. 상당히, 때로는.

 

아니면, 글 전체와 관련되는 것일까?

 

2017913일에 쓴 두 개의 글은 그래서 독자인 나에게 새삼 글을 읽고, 꼼꼼히 새겨보는 순간을 가져다 주었다. 문장의 뜻을,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모로 살피고, 따져보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글을 읽자마자 금방 이해되는 글도 있다.

 

아름다운 법칙이란 2017327일 자 글이다.

 

해야 할 일을 모를 때, 우리는 방황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타락한다.

해야 할 일이 벽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강해진다.

그 벽을 무너뜨리고 전진했을 때, 우리는 깨닫는다.

해야 할 일을 다 했을 때, 우리는 감사하며 침잠한다.

이제 더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궁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조용히 기쁘다.

 

이런 글은 읽으면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혹 저자가 그 속에 다른 깊은 뜻을 숨겨놓았다면 몰라도.

 

이런 글, 역시 이해가 잘 된다.

 

그런 것

 

지하철 안

한 추레한 차림의 못 생긴 아재가

문고판 칸트를 읽는 것을 보았다.

순식간에 그가 잘 생겨보였다.

 

그런 것이다.

 

인생은. (88)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독해력을 평가당하는 기분이었다.

저자는 분명 뭔가 알고, 그 안에 의미를 담아 썼을 글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해석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니, 아직 독해력이 한참이나 수준 미달이란 것, 안타깝다. 나 자신이.

 

제목이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이니까 분명 이 책에는 어떻게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펼쳐질 줄로 알고,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런 구체적인 어떻게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보이는 것은 저자가 이미 생각해 놓은 글들. 과정은 보이지 않고 결과만 보인다.

 

그렇다면, 저자가 보여주는 글들을 통해 독자들은 어떻게를 찾아내야 한다.

저자는 그것을 노린 것일까?

 

그래도 이런 글, 어느 정도 힌트가 된다.

<글을 쓰는 일은 노트 한 권과 펜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다. 글은 지옥에서 잘 써지는 법이다. 누구나 해보면 알 수 있다. (72)

 

그 힌트가 어떻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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