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계곡 모중석 스릴러 클럽 35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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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옥처음 끔찍한 비틀린 인간의 욕망>

 

평소 스릴러물을 즐겨보는 편이 아닌데 얼마전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일본 스릴러물을 읽고 깜짝 놀랐다. 뒤늦게 눈 뜬 스릴러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할까?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이번 작품은 익숙한 미국이나 일본 작가가 아니라서 관심이 갔다. 나라마다 작가마다 모두 표현해내는 발식이 다를거라는 기대감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소개를 보니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이미 <사라진  소녀들>이라는 전작을 통해서 스릴러 물에서는 인정을 받고 많은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작가인가 보다. 나로써는 그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다.

 

지옥계곡, 얼마나 험하고 끔찍하면 이런 명칭이 주어졌을까 싶은 지옥계곡에서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한 소녀가 등장한다. 뛰어내리려는 소녀의 마지막 순간 그녀의 손을 잡고 놓치 않으려는 로만의 손길도 뿌리친채 죽음을 택한 라우라. 그녀를 둘러싼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라우라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절치이었던 친구들은 모두 어떤 날의 사건을 떠올린다. 모두가 함께 지옥계곡을 등반하기 위해서 찾았던 날. 배탈로 등반에 참여하지 않고 남은 마라, 그리고 나머지 일행은 등반을 하지만 홀로 여자인 라우라를 배려하지 않고 무리한 날씨에 등반을 감행하던 중, 지친 라우라를 우연히 하산하는 남성에게 부탁하게 된다. 모두가 짐작하듯이 이 남자와 라우라 사이에는 묘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라우라의 죽음과 함께 주변의 친한 친구들이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살해당하고 공포를 느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라우라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수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라우라의 손을 잡고 있었던 로만 역시 이 문제에 얽히게 된다. 친구들에게는 함구한채 묘한 긴장감과 히스테리를 부리던 라우라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밝혀지면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가 폐소공포증을 가지고 있음에도 미군특수부대원이었던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살인마의 라우라에 대한 비틀린 집착이 그녀와 주변을 인물을 압박하는 과정이 가장 큰 긴장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책의 구성 중간중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인마의 심리와 상황을 묘사한 부분이 유난히 눈길이 간다. 남들과 다른 생각과 사고를 지닌 살인마의 심리에 집중하면서 섬뜩함을 느끼게 한 구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예상 가능한 전개와 마지막 라우라가 남긴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단서를 찾는 과정이 너무 설정적이었다 싶다. 그래도 계곡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기 위해 몇번이고 험한  계곡을 등반했다는 작가의 열의는 묘사적인 부분에서 충분히 드러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작품. 기대를 하고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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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1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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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세상과의 소통을 담은 이야기>

 

 

10월의 끝무렵 모든 것이 붉은 가을 빛으로 물드는 즈음, 올해 읽은 최고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꼽고 싶은 책을 만났다. 예상하지 못하고 만나게 된 책 가운에 이런 반짝이는 책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모른다.

 

사실 제목은 그리 끌리지 않았다. 책 제목에 칸트가 나오다니...철학자의 이름을 거론할만큼 딱딱하고 건조한 내용이 아닌가 하면서도 제목에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화사한 표지 그림과 색채에 뭔가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책장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 속의 칸트가 누구인지 금방 감지하게 된다. 얼마전 많은 사람들의 호응 속에 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킨 착한 의학드라마가 생각났다. 세상에 비해 너무도 순수하고 따뜻한 어린아이같은 시선을 가진 아스퍼거 증후군의 의사가 주인공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폐증을 지닌 인물이 주인공이었고 우리는 기존 편견에서 조금 벗어나 그들을 조금 이해하고 바라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칸트가 존재한다. 세상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특정 병명을 이야기하기보다 이렇게 표현하는 작가의 시선이 정말 마음에 든다)17살의 형 '나무', 그리고 나무가 만나게 되는 노령의 숨은 건축가 칸트이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나무의 동생 '열무'

 

이들이 엮어 내는 이야기는 특이하다. 시간관념에 투철한 산책광이었던 칸트처럼 건축가 칸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산책을 즐기는 묘한 인물이다. 어린 칸트인 나무 역시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만 세상과 소통하고 그 규칙이 어긋나면 견디지 못해한다. 이 둘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산책자 칸트에 관심을 보이고 관처럼 보이는 그의 집을 두 형제가 방문했을때, 건축가 칸트는 달갑지 않았을게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에 갇힌 어린 나무를 보고 그는 집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하나씩 가르쳐준다. 집을 지을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는 것은 나 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주위에 대한 관심과 소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건축가 칸트는 알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묘미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아닌가 싶다. 일상적인 대화라기보다는 철학적, 아니 철학적이라기보다 상대의 마음이 어떨까를 섬세하게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읽는 독자 역시 상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세상과 다시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만든다.

 

세상과 등지고 자신에게 벌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축가 칸트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런 칸트에게 치유의 손길을 내주는 형제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칸트들, 그리고 세상의 순리처럼 이어지는 일들에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게 된다. 이들의 대화에 빙그레 미소짓고 음유시인같은 대화에 눈물이 흐르게도 만드는 이야기였다. 칸트의 집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결국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닫힌 세계에서 또 한번 벗어나 세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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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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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를 위한 더 나은 실패>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게 된다. 경제나 정치, 철학을 논할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부담스러워하듯 나 역시 그렇다. 이 글은 작가가  메일이나 전화 등으로 저명한 사람들과 대담을 하고 신문에 연재한 글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엮은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대한 고민과 대담을 했을까 그게 먼저 궁금해진다.

 

지금은 전 세계가 경제 위기를 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IMF를 겪었지만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예상보다는 빨리 헤쳐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가 위태롭고 세계의 가장 강국이라고 여기던 미국조차도 국가제정의 위기를 겪을 정도니 지구촌 전체가 경제 살얼음판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어지는 책은 아무래도 집필과정이 있기에 한반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저자는 그런면에서 신문 연재를 통해 발빠르게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글을 읽기는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철학이나 경제 등의 문제보다 당장 나에게 어떤 잇점이 있고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쉽게 풀어주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파국을 이야기할때 좌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 더 나은 실패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어렴풋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하게 와닿는다.  이 말을 역설적으로 지금 견디기 힘든 이 때가 바로 넘어야 할 산이고 그래야 더 나은 미래를 만날 수 있기에 낫게 실패하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좌절하기 전에 실패를 감지하고서라도 넘어서려는 의지 때문에 나은 실패를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이 책 역시 천천히 여러번 곱씹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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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클래식 보물창고 25
조지 오웰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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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한 개인의 도구화, 디스토피아 현재인가 미래인가?>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개인은 있는가?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중요한 문제이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존재하고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그렇게 한다고 배웠다. 개인의 도구화, 수단화..그런 말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엄청난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개인사찰. 사찰이 무엇인지 낯설었던 즈음, 그것은 정치적인 용어이고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국가를 위해 개인이 사찰당했다는 말을 듣고 경악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사생활 보호에 끔찍했던 미국에서조차 개인의 이메일까지 사찰한다는 의혹을 받은 사실을 우린 알고 있다. 과연 국가를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감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작금인지, 이 시점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작품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풍문으로만 들었지 조지 오웰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동물농장>이나 <1984>의 문학적 가치는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지만 왜 그렇게 이슈화 되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이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1949년. 그는 1949년에 1984년 디스토피아 세상을 작품으로 그려냈다. 그가 바라보는 디스토피아는 어떤 세상인가? 적어도 그가 경험한 사회체제의 모순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재창조되고 조련되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작품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그는 현대사회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개인사찰의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다룬다.

 

<1984>속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의 모든 사람들은 텔레스크린을 통해서 사상검증을 받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받는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듯한 상황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그 사상을 검증받는 시스템이나 통제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야말로 다시 인간을 다시 학습시키는 과정까지 적나나하게 그려져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화 속에서 미래의 가상 세계를 세우고 인간의 분신인 콜론을 통제하는 영화들도 모두 이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져 든다.

 

더욱 놀란 것은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서 계속 되는 조련 속에 등장하는 '2분간 증오' 시스템이나 당원과 당을 위한 감정조차 실리지 않는 최소한의 목적만 담은 신어의 등장은 경악하기에 충분하다. 정말 이런 세상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지 못함에 당황스럽다. 주인공인 윈스턴이 불온한 사상의 행동으로 실천하게 되는 것이 일기쓰기라니. 생각의 획일화가 필요한 세상에서 자유로운 생각은 불온한 사상의 시발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생각의 획일화가 가져다주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는 인간성 말살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권력의 무한 독제라고 한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복종화된 인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당시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로 쓰여진 작품이지만 현 시점에서 과연 그러한 경고가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에만 해당되는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사상의 문제가 아니고 어쩌면 모든 것은 권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 사상 검증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 사찰이 필요하고 감시가 필요하니 개인의 자유는 무지불식간에 침해되는 것이다.

 

가장 편한 것은 말하는대로 따르는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의 말에 저항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가장 편하고 잘 이끌어지는 모범적인 반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보여지지 않는 권력이 있음을 우린 알고 있지 않은가 싶다. 다른 생각이 어우러지면 분명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모든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60년이나 지난 작품이지만 시대적배경이나 고민이 결코 지난 세대가 아니라는 공감을 하게 된다. 20세기 최고의 작품이라 일컫는데는 이런 연속성의 이유가 큰 몫을 차지하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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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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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치유의 중심은 가족이지만...>

 

책을 읽기 전에 영화로 먼저 만나게 된 <소원>. 사실 난 영화를 볼 기회가 자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 부모 가진 사람의 비슷한 이유때문일 것이다. 입에 올리기도 힘들고 견디기도 힘든 내용을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감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그런 일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는 하나 그 고통을 마주해야 하는데는 심한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는 외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적나나하게 보여줄 수도 있을 영화에 대한 부담감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밖이었다. 사건의 심각성을 부각하거나 가족의 고통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주인공 소원과 그 가족이 견뎌내고 이겨내는 과정, 그리고 현실성이 조금은 떨어지기는 하지만 주변의 긍정적이고 밝은 시선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던 영화이다. 아마 감독 역시 현실적인 어려움보다 이렇게 그들이 과거와 같은 일상의 품으로 안기기를 바라는 희망을 전하고자 한 연출의도가 보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도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한쪽으로 가슴이 무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마주하게 된 소원은 영화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오히려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소재원 작가의 소설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나영이 사건, 조두순 사건을 글로 쓰기로 마음 먹은 그의 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그의 책을 통해서 어린이 성폭행자문기구인 해바라기 아동센타에 인세기부가 주어진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사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는 이제 더 이상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없다. 우리가 궁금해하고 관심가는 것은 사실 그런 사람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어떤 처벌이 강화되고 준비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관심은 소설 속의 지윤이의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회는 내가 당하지 않기 위한 방패막에 대한 관심보다 더 눈을 돌려야 할 것이 많다. 바로 그건 내 이웃의 아픔과 고통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윤의 가족이 견뎌내는 슬픔이 생활 속에서 머물기만 했다면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에 별 감흥이 없었을지고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독특한 기법은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지윤이 험한 일을 당할 당시 지켜주지 못한 지윤엄마를 향한 지윤 아빠의 분노. 그것도 독자로써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세가족이 견뎌야 할 마음의 무게가 컸는데 그 가운데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중심을 잡아가는 지윤 엄마의 모습,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아빠가지 거부하는 지윤이, 딸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8살의 감성에 머물러 버린 아빠의 모습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이들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단지 지윤 엄마와 아빠가 그들의 문제를 조금씩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복한 순간과 추억을 더듬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찾아가는 편지글, 지윤과 아빠(도라에몽)가 서로를 이해하며 건네는 편지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결국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낫게해주는 것은 가족일 수 밖에 없다.

 

이미 해답은 알고 있지만 아픔을 치료하는 과정이 너무 멀고 힘들어 우린 그런 모습을 외면할 때가 많다.  혹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그들을 진정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잦은 입방아나 안스러운 시선이 그들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 깨닫는것도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우리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싸움질 말고 사회에 필요한 울타리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주는지도 잘 봐야겠다 싶다. 지윤이가 상처입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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