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나무 이야기-눌와출판사>

 

 

가을빛으로 물든 궁궐을 간다는 기쁨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들떠 있던 주말 아침이다. 궁궐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것도 역시 행운인 듯하다. 몇 년 전에 눌와에서 하는 한강생태이야기를 따라갔었고 작년에는 운 좋게도 유홍준교수님과 함께 하는 부여여행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올해는 마지막이라는 궁궐의 나무이야기에 함께 했으니 눌와와의 인연이 있기는 한가보다.

 

오랜만에 찾은 창덕궁은 사실 후원이 너무 궁금했지만 이번 일정에서 후원은 제외하고 창덕궁만 돌아보기로 했다. 궁궐을 찾을 때면 건물이나 역사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생태, 그 중에서도 나무를 중심으로 하는 특별한 테마로 궁을 둘러보게 되었다.

 

 

 

처음 뵙게 된 박상진 교수님 조용조용한 말씀에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머금고 열심히 설명해주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우산이 차지하는 공간만큼 서로 간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쳐지나치던 궁궐의 나무와 의미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생각에 불편함도 잊었던 것 같다.

 

창덕궁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있겠지만 동궐도에도 나와있는 나무들의 모습까지 찾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또  하나의 재미였다. 창덕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나무는 돈화문 좌측에 있는 커다란 회화나무이다. 서원같은 곳에 가면 이 회화나무가 무척 많이 심어져있다. 일명 선비나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를 잘 몰랐었는데 오늘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회화나무는 오랫동안 살 수 있는 나무이고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자유롭게 뻗는 모습 때문에 학자수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유분방하게 학업의 세계를 펼치라는 의미인가 보다. 돈화문옆에 있는 회화나무는 동궐도에 그려져있고 수명은 3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돈화문 오른쪽에는 복사 나무가 있다. 우리가 먹는 복숭아는 후에 들어온 것이고 이 복사나무가 원래 우리나라 산천에 나는 복숭아라고 한다. 산에서 보는 개복숭아가 바로 이 나무라고 하니 유심히 본다. 봄에 분홍빛의 꽃의 피우던 그 복숭아 나무의 잎이 이렇구나 하며 자세히 본다. 궁궐 내에 복숭아 나무를 심은 것은 귀신을 쫓기위한 의미가 아마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세번째로 발걸음을 옮겨서 본 나무는 봉모당의 향나무이다. 이 나무는 몇해전 태풍의 영향으로 가지가 부러져서 더 유명해진 나무이다. 창덕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고 수명은 700살이 넘었을 거라고 한다. 근처에 임금님의 어진을 모시던 선원전이 있는데 그곳에서 제사를 할 때 이 향나무를 사용했을 거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종묘에서도 제를 위해 심어졌던 향나무를 본 기억이 난다. 태풍의 영향으로 꺽인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동궐돌에 그려진 향나무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다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리고 부러진 가지 저 쪽에는 원숭이의 옆모습을 하고 있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주게도 한다.

 

 

멀리서 보면서는 도무지 무슨 나무인지 몰랐던 또 하나의 나무는 궐내각사의 뽕나무이다. 친잠이라고 해서 왕비는 비단짜는 일을 중히 여기고 누에를 치고 옷감을 짯다는 것은 유명하다. 과거 문헌에 창덕궁에는 1000여 그루가 넘는 뽕나무가 있었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비단짜는 일에 대한 중요성이 높았던 것 같다. 집에서 아이들과 누에를 길러본 경험이 있어 뽕잎을 먹이로 주곤 했는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보니 그래도 못알아보네~.

 

 

바로 옆 구선원전의 측백나무는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나무였다. 어딘지 다른 나무와 달리 주위를 더욱 고즈넉하고 기품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나무같았다. 과거 중국에서는 북경 명13릉의 주위에 측백나무를 심어 권위를 상징했다고 한다. 이곳 구선원전은 과거 임금의 어진을 모시던 곳이니 당연히 신성시 되었을 것이고 주위에는 측백나무를 심어 그런 기품과 권위를 나타냈는가 보다. 나무가 높고 특이해서 더욱 그런 인상을 주는 듯하다.

 

 

 

 

 

 

금천교 옆에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친근한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정자나무라 하여 마을 입구에 심어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마을입구를 나타내기도 하는 대표적인 나무가 바로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홀로 클 때는 가지를 옆으로 넓게 뻗어 자라고 나무 재질도 좋아서 고려 중기 이전에는 모든 대표적인 목재 건축에는 느티나무가 쓰였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해인사 대장경판전의 건물이나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도 모두 느티나무라고 한다. 보통 질 좋은 오래된 소나무를 궁궐의 목재로 쓴다고 알고 있었는데 소나무보다는 느티나무 목재로 훨씬 좋다고 한다.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서 강하지 못한 탓에 목재로 쓰일 수 있는 기회도 더 줄었구나 싶다.

 

오래된 느티나무는 부름켜 사이의 빈공간은 그냥 썩은 공간처럼 비어있다고 한다. 그 공간이 뚤리면 보기 싫어서 시멘트를 발라놓기도 한다는데 오늘 그 모양새를 처음 제대로 관찰하고 놀랐다. 그냥 스쳐지날 때는 수피겠거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시멘트라서 이걸 어찌 해석해야하나 싶었다. 인간이 보기에 좋도록 하는 것이 나무에게도 좋은 것만은 결코 아니기때문이다.

 

 

 

 

금천교에 자리잡은 또 하나의 나무는 바로 버드나무이다.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축 늘어진 잎들이 '나 버드나무요~'라고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버드나무때문에 딱딱하고 권위적인 궁의 입구에서 조금 여유러움과 부드러움을 전해받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때 빨리 돌아오라는 정표로 보냈다는 버드나무는 궁에서는 어떤 의미로 심어졌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인정전을 마주하고 있으면 용마루 부분에 특이한 문양을 찾을 수 있다. 고종때 중건한 창덕궁의 인정전 용마루에는 오얏꽃무늬가 보인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고종이 당시의 시대조류에 맞춰 상징적인 문양으로 사용했었다는 오얏무늬는 자두나무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얏은 자두꽃이라고 한다.

 

 

 

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은 왕비가 살던 곳이라고 한다. 구중궁궐의 깊은 곳에서 밖을 내다볼 수 없는 왕비를 위해 항상 뒤편에는 화계를 만들어놓았다는데 이곳 대조전의 화계 역시 갖가지 꽃나무가 많이 심어져있다. 가을이 오는 문턱에서 정신없이 피어버린 곂꽃의 옥매가 인상적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너 왜그러니?"하고 한마디 건넬 참이다.

 

 

 

 

봄에 가장 먼저 열리는 열매가 바로 앵두라고 한다. 앵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임금이 바로 세종이다. 세종이 앵두화채를 너무 좋아했다고 하는데 아들 문종이 아버지를 위해서 앵두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대조전 화계에 있는 앵두나무도 가을을 담아 곱게 물들어 있는게 너무나 아름다웠다.

 

 

동궁이 학문을 익히던 자리이자 내의원 자리이기도 했던 성정각 부근에 커다른 살구나무가 눈에 뜨인다. 매화가 양반들의 나무라면 살구나무는 서민들의 나무라고 한다.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살구나무와 매화나무. 여하튼 살구나무는 초여름 과실이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씨는 약재로 쓰였다고 한다.

재미난 것은 목탁을 만드는 최고의 나무가 바로 살구나무라고 한다. 그러니 살구나무는 정말 쓰임새 많은 서민들이 좋아할 만한 나무인듯하다.

다음은 살구나무꽃과 구분이 힘든 매화나무. 꽃이 피는 봄이 아니라 가을이라서 잎으로 구분하기는 여간힘들지 않다. 자시문 앞의 매화나무는 선조 때 명나라에서 선물받은 나무이고 지금의 나무는 손자뻘 정도 되는 나무라고 한다. 보통 매화가 겹꽃이라면 이 나무는 여러 겹의 만첩홍매라고 하니 봄에 와서 보면 그 화려함을 알 수 있으려나? 꽃을 보지 못해 아쉽다.

 

 

길게 늘어진 잎이 능수버들 같아서 이름 지어진 능수벚나무란다. 역시 꽃이 피어있지 않으면 구분조차 힘든 나무들.

 

선비들이 좋아했던 나무가 회화나무라면 제대로 공부하는 선비는 앞에는 회화나무를 심고 뒤에는 바로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쉬나무~ 이름도 정말 특이하다. 쉬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얻을 수 있으니 뒤에는 쉬나무를 심어 밤에도 글을 읽고 정진하고자 했다  한다. 그러니 앞에만 회화나무가 심어져있고 뒤에는 쉬나무가 없으면 공부 안하는 거짓선비가 되는 셈인가?^^

 

 

낙선재 쉬나무 옆에는 특이하게 생긴 또 하나의 나무가 있는데 바로 시무나무란다. 이들도 생소한 시무나무는 십리마다 심어거 거리를 알려준 나무라고 한다. 오리나무는 오리마다 심고 시무나무는 십리마다 심었다고 한다.

 

 

낙선재 옆의 소나무. 우리나라 산천에 가장 많은 나무 중의  하나가 소나무가 아닌가 싶다. 사실 아이와 생태 공부를 하면서 잎이 두 개면 우리나라의 적송이라고 가르쳐주었었는데 오늘 적송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의 소나무를 보통 적송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지만 이제는 일반화되어버렸다는 말에 놀랐다. 산에는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한 리기다 소나무뿐인데 우리나라 소나무 이름도 제대로 몰랐다니 부끄럽기도 하다.

 

여하튼 가을이라는 이름을 달고 궁궐의 나무를 탐닉하러 온 나들이는 정말 최고였다. 그동안 궁궐을 역사의 대상으로만 보느라 건물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는 나무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개중에는 동궐도에 그려진만큼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나무들도 있고 그 나무를 지금의 내가 마주한다는 사실이 또한 신기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다음에 올 때는 아이들에게 궁궐에서 만난 나무들의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곱게 물들 화살나무도 구경하고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나무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나오는 출구에서 오늘 처음으로 만났던 회화나무의 가지들이 자유롭게 뻗어있는 모습을 다시 한번 감상하면서 창덕궁 나들이를 마쳤다.

 

생태와 궁궐, 문화재에 대한 책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눌와 덕분에 오늘도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너무 반갑고 흐뭇했다.집에 와서 보니 눌와에서 받은 책갈피와 궁궐사진을 담은 옆서가 얼마나 이쁘던지.... 애써부신 모든 분들게 감사하다는 기억 간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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